예수를 따르려면(눅 9:57-62)

조회 수 1079 추천 수 43 2008.11.25 21:04:08
※너무 긴 글이라 죄송합니다. 읽다가 지겨우시면 패스하세요~



오늘 본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점검 해야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한지 십년이든 이십년이든 아니면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이든지 말입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 직분에서도 그렇습니다. 목회경력이 얼마든간에 신학박사나 교수나 학자들이라해도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라고 한다면 언제나 새롭게 이부분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았고 빛나는 일들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처음의 마음과 소명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매우 심각하게 상황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분들이야 열심히 주님께 헌신하시고 은혜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걱정할바 아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워낙 불성실하기 때문에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저에게 하는 질책임을 분명히 밝히오니 혹여라도 오해 없으시기를 부탁 합니다. 계시록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시아의 일곱교회 가운데 처음 수신자이기도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신약시대에도 자주 언급이 되는 곳이며 바울사도의 관심과 정성이 듬쁙담긴 곳이기도 하지요. 편지 내용을 잠간만 살펴 봅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낙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계2:2~5)-표준 새번역



주님의 준엄한 책망은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처음 마음을 다시 찾으라 하십니다. 분명 에베소 교회는 객관적으로나 주님께서 보기에도 엄청난 믿음으로 승리하던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위한 열심과 믿음은 다른교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내와 헌신과 거짓영들을 분별하며 고난에서도 주의 이름을 굳게 잡고서 당당하게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정말 부러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모두들 닮고 싶은 모델 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교회가 참 많습니다. 경이로움에 세계가 한국교회를 부러워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받았다고 흠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믿음으로 훌륭하게 성공한 신앙인들역시 참으로 많은게 사실입니다. 365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간증세미나나 집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같은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과 경험들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믿음의 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수 많은 신앙인들이 닮고 싶어하고 오히려 그들을 뛰어넘고자 열심으로 기도하고 헌신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정말 부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나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어쩌면 신자 개개인에게도 하시는 말씀은 아닐런지요. 저는 언제나 실수하고 넘어지고 무력하게 기어다니는지라 언제 믿음으로 승리했었는지조차 기억에도 없습니다. 소년 다윗처럼 믿음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승리하지도 못했고 그저 주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으로 아직까지 견디고 버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만도 저는 감사하다 여깁니다. 이렇게라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저의 기도입니다. 그나마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기에 다른 때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경이롭게 보고 놀라워 하면서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십니다." (눅9:18~20)표준 새번역.



모두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관심을 집중할 때에 어디를 가던지 많은 사람들이 붐빌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아마도 결심했을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칭 제자로 생각하고 말없이 따라가는 이들도 있을것입니다만 오늘 예수님께서 어느 마을에 들어 가셨을 때 누군가 그 길을 막고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기를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였다.



예수님에 대하여 소문을 들었던지 아니면 제자들에게 들었던지 아니면 병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사람은 상당한 결심과 결단을 하고서 주님앞에 나아와와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공적인 고백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개종을 하겠다는 선언이지요. 그 말의 의미는 유대교에서 출회를 당하는것까지 감수하겠다는 결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사회에서 출교를 당하게 되면 모든 사회적인 보장이나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관원이나 랍비들이 예수님을 믿고 싶어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가장 큰 것입니다.



사실상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고 따르는 자들은 이미 유대 사회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 계층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세리들과 죄인들과 병자들과 창기들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도 들어내놓고 믿은사람들이 아니었지요.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생 실패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퇴출당하거나 말거나 이미 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누가가 말한 어떤 사람도 그렇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마태의 기록에는 이사람이 누구인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기를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였다.(마8:19)표준 새번역.



놀랍게도 그는 율법학자라고 합니다. 과연 진심으로 그런 고백을 한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앞에서 결단하고 결심하지 않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당시 율법학자라면 엄청난 사회적인 신분과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신분입니다.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거나 파문을 당할 각오까지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신분으로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사람이 과연 즉흥적으로 혹은 감성적으로 그랬을까요? 우리의 생각으로는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하실것 같은데 누가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아서 놀랍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8)

주님의 대답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요? 한마디로 거절의 뜻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집도 없고 돈도없고 쉴곳도 없는데 따라올수 있겠는가 혹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 다닐것인데 그래도 따르겠느냐는 이해를 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직접 부르실 때 어떤 조건을 제시하거나 설득하거나 이해를 시키시지 않았습니다. 세관에서 일 잘하고 있던 마태를 부르실 때 단지"나를 따르라" 하셨고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하여 일어나서 따랐던 것입니다. 마태가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집에가서 가족과 상의하거나 직장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 주를 쫓았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주님의 부르심은 계속적입니다. 전부가 마태나 베드로와 요한처럼 즉시 좇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금은 많은 기도와 고민과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결론적으로 주님의 부르심으로 인정하고 제자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하고 결심할 시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중생이나 회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것을 버릴 각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그저 세상살이에서 이도저도 아니고 되는 일도 없고 해서 예수나 한번 믿어볼까 해서 오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나 가서 공부해서 목사가 될까 선교사가 될까 하고 인생의 도피처로 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런일들이 없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의 동기야 그렇다해도 나중에 진심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으로 이어져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이야 우리가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누가의 증언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것은 그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라면 주님처럼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라는 의미를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삶은 한마디로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입니다. 좀더 직접적인 표현과 예를 들어 볼까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들과 예수님께서 치유사역을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회복시켰을 때 혹은 말씀을 강론하였을 때 사례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았는데 요즘은 많이 양상이 다릅니다. 부흥회나 집회를 하면 본의 아니게 많은 액수의 헌금이 들어 옵니다. 그걸 시비하자는게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물질이 필요 합니다. 강사료도 넉넉하게 챙겨드려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솔직하게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에서 유명 부흥사를 모실생각은 아예 접어야 할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이 원한것이 아니지만 이미 현실적으로 관행과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대형교회들만의 잔치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처럼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바울사도처럼 하나님께서 가라시는 곳에 가야할 것입니다. 왜 도심에서 도심으로만 가는 것입니까? 복음들고 가는 자들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가야하는 것입니다. 거기 한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고 가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꼭 방송으로 중계해야 하고 선전해야 하고 그러느라 바빠야 되는 것일까요? 만약에 말입니다. 그렇게 열심으로 부흥회를 했는데 사례비는 교통비와 식사정도이며 나머지 헌금은 전액 구제와 미개척 교회 미자립 교회를 위해서 사용된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열심으로 다니시는 강사님들 얼마나 계실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못된 생각이죠.



이것은 기본적으로 주님을 따르려면 마음에 담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소유하거나 원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곧 떨어져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성적으로 원하는 육신의 안락함과 평안함과 보상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주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느냐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할 때 아무런 원함도 없었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여서 내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리 고백하며 결단하며 왔습니다. 아골골짝 빈들이라도 거기 주님이 계시다면 함께 하겠노라 울며 불며 고백하며 왔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룩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와 씨름해야 합니다. 세상 유혹과 육신의 본성과도 싸워야 합니다. 이미 신분은 하늘의 백성이지만 이 땅에서 육신의 장막에 같혀 있기 때문에 옛사람의 삶을 완전히 털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즉시 하는나라로 올라가서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하겠지요.



오늘 우리가 확인하고 결단해야할 것은 그런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실에 안주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두 동일한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이는 예수 믿어도 가난하고 곤고하며 질병에 허덕이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주의 은혜 가운데 삶이 넉넉하며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비교적 잘 이루어져서 언제나 희락과 평강에서 살고 있는 복된이들도 있습니다. 모두들 부러워 할만한 선한 일을 이루면서 할렐루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엄청난 성공과 부흥을 만끽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모든것이 주의 놀라우신 은혜라고 감사해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사랑을 혹시 잃어버렸는지 점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나의 모습과 나의 상황이 영원하거나 완전한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실패했든 성공했던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지금 주님과의 관계에서 처음의 사랑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가 입니다. 내가 아무리 은혜 가운데 있더라도 말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나의 원함과는 지금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살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종종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결과나에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저 자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잡고 있는 것이 아무리 달콤하고 멋지고 포기할 수 없다해도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놓아야만 새것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새것이 우리의 생각처럼 현실적인 성공과 번영이 아닐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십자가와 고난과 가시밭길입니다. 찾는이가 적은 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기 비하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싸움 입니다. 그것이 분명 성경이 말하는 죄일지라도 우리는 그 죄를 청산하지 못해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죄마져도 깨끗하게 털어버리지 못하고 끼고 살고 있는데 하물며 현실적인 성공과 번영과 부흥을 쉽사리 내려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쌓아온 것이라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주님께서 내려가신 그 길을 따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주님께서 내게 보상으로 주신 기업인데 그것을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하나님의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내가 처음 사랑을 찾았다면 우리는 새로운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다시확인 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상 저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나누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원래 쓸모없는 글이 길기만 하답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이 자판 앞에만 앉으면 제 의지로는 통제가 되지 않는군요. 샬롬.



2008-11-26.  ⓒ  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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