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요...

조회 수 605 추천 수 18 2011.12.04 03:55:27




초등학교 시절에 성령의 세례와 충만함을 받고 은사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3년 동안은 그 충만함을 그대로 간직하며

기도와 말씀에 늘 애쓰며 살았었습니다.


학교에 갈 때 교회에 들러서 기도하고 다시 하교하면서 들러서 기도하고,

새벽기도며 모든 예배와 집회 등에도 열심히 참여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평준화 이전의 나름 수재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공부에 시간을 쫓기면서부터 기도와 말씀의 삶에서 조금씩 멀어졌었습니다.

그래도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였지요.


제가 한 때 하나님과 교회를 등진 것은 대학시절 때였습니다.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보면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에 나름 의문이 생겼고, 가장 결정적인 지적 방황은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조명하심 속에서 스스로 모든 답을 얻었지만, 지금 여기서

그러한 누구에게나 한번은 찾아오는 신앙의 지적방황을 다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너무나 글이 길어질 테니까요.


어쨌거나 그러한 이유로 전 대학시절 한 때 몇 년간

하나님을 등지고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상에 속한 대학생들처럼 술 마시고 노래하고 그렇게 내 마음대로 살았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군대생활을 할 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고 경계의 말씀과 다시 저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비록 지적 방황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주님께로 다시 돌아와 신앙생활을 하였었지요.


어쨌든 저의 신앙생활에 한 때 주님을 등진 삶이 있었기에, 죄악에 빠진 시간이 있었기에,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고 두려운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다음의 본문이었습니다.


(히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과연 이 본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나처럼 성령세례로 받고 은사도 받고 잘 믿던 사람이

하나님과 교회를 등지고 살았으면 그렇다면

이 본문이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이미 사망에 빠진 몸이 아닌가?

그런 의문이 가끔 제 가슴 속에 있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주님을 만난 환상 가운데

이 구절에 대한 예수님의 직접 설명을 들은 부분이 있더군요.

그것을 보고서야 이 본문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게 되었고,

또 어떤 그리스도인도 그러한 죄에는 빠져서 다시는 사함이 없는

무서운 죄를 짓게 하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오늘에야 비로소 글을 쓰게 됩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의 다시는 결코 사함이 없는 사망, 곧 어떠한

속죄의 제사도 다시는 없고 죽어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마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분들이 알고 계시는 성령 훼방죄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12장과 마가복음 3장을 보면, 이와 관련된 죄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를 자유롭게 하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예수께서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말씀하신 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12:31-32)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성령 훼방죄와 거역죄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함을 얻지 못하는 죄가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기도하니 주님은 고의와 악의적으로 성령을 대적하여 거스려 행하고

성령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감동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향하여 형제라 부르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영이신 성삼위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전능하신 분이요, 절대자시며 지존자이십니다.

비록 하나님의 가장 많은 사랑을 덧입은 우리지만 결코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망령되이 일컫거나 대적하여서는 아니 될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 훼방죄와 거역죄를 짓지 않도록 진정으로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는 사함이 없다는 말씀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사함이 없는 죄는 앞에서 제가 늘 궁금해왔던 히브리서 말씀과 관련된 죄입니다.

그 죄에 관하여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주님 앞에서 받은 가르침을 다 기록할 수는 없고,

핵심과 요점만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주님은 환상 가운데 자신이 잘 아는 목사님의 사모님을 보여주시더랍니다.

그 사모님은 한 때 목사님과 함께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열심이셨던 그런 분이랍니다.


그런데 그만 마귀의 유혹과 올무에 빠져서 남편과 이혼하고

세상을 향하고 세상의 향락 속에서 살은 모양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그 환상 가운데 그 여인을 보여주신 것이고,

그 가운데 히브리서의 말씀의 의미를 함께 곁들여 설명을 해 주셨더군요.


환상 속에서 목사님은 그 사모님의 어깨에 올라앉아 그 사모님을 유혹하는

제 기억에는 원숭이 형상의 악한 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학을 오기 전 “스스로 자신이 없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루는 밤에 꿈을 꾸었는데, 주의 종(목사)으로 보이시는 분이 강물에서 뱀을 꺼내서 죽이고,

또 원숭이를 꺼내서 죽이고, 강둑의 염소의 혀를 뽑아버리더니,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라고 말을 해 주더군요.

그 꿈을 통해서 자신 없어 하는 제게 주님이 용기를 주신 적이 있지요.


그 때 뱀과 염소의 형상은 성경에 마귀의 상징으로 나오니 이해가 되었는데,

원숭이도 사단과 마귀의 상징일까?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영적 전쟁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니 원숭이, 개구리, 용 등의 형상들도

다 사단과 마귀의 상징이요, 모습들이더군요.


어쨌거나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가서 원수 사단은 그 사모님의 어깨에 앉아서

귀에다 소곤거리기를 “너는 아름다운 여자야.

너는 명성과 인기, 그리고 부를 가질 수도 있었지만,

네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따른다고 네 평생 속아온 거야” 속삭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가룟유다에게 사단이 생각을 집어넣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집어넣은 것이겠지요.


처음에는 그 사모님도 믿음이 있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만, 결국은 그 유혹에 넘어가

남편을 버리고 멋진 남자들을 찾아서 전전하는 타락한 삶을 살게 되더군요.


주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러나 그러한 타락한 삶이 다시는 사함이 없는 죄는 아니라고 합니다.

주님은 그 여자가 100명의 남자와 방탕한 삶을 살았다 하여도

돌아오면 용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사모님, 곧 그 여자 분은 그러한 삶에서 돌이키기 위해서 찾아온

교계 지도자를 향하여 분명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나는 더 이상 예수를 원하지 않아. 나를 내버려 둬!”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면으로 분명한 자의식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곁들여 주님께서 설명하시기를, “만약 그녀가 한계를 넘는 유혹과 압박을 겪어서

그런 짓을 했다면 나는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다시는 사함이 없고 그녀는 죽어서

영원한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서 제가 기도할까요?”라고 묻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물음에

“기도하지 마라. 그녀는 이미 사함을 얻지 못하는 죄를 짓고 말았다”라고 했다는군요.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지요.


다시금 그 죄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곁들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 이것은 하늘의 신령한 빛 가운데서 자신의 죄를 깨달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 여기서 하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씀한다고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성경을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여 영생을 맛본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 이것은 말씀 그대로 성령의 세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 이것은 필립스 번역본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의 유익한 음식물을 이미 알고 있는..”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뜻에 의하면 젖먹이 그리스도인은 결코 사망에 이르는

이러한 죄는 지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세의 능력을 결코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내세의 능력, 곧 단단한 고기의 맛을 본 그리스도인,

위의 사모였던 여자분과 같은 경우는 이의 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사망에 이르는 죄에 해당하려면 아래의 다섯 가지의 사항에 모두

해당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부인하면 다시는 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1. 빛을 받아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가 구원받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됨


2. 하늘의 은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맛 봄


3.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됨, 곧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


4. 갓난아기의 상태를 지나 충분히 자라서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 봄


5. 그들 삶 가운데 역사하고 있는 내세의 능력, 곧 성령의 은사들을 가짐


이 다섯 가지를 다 경험한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과 핍박 가운데서가

아닌 가운데서 자신의 분명한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부인하면 다시는 사함이 없는 무서운 죄가 된다고 합니다.


요즈음 제가 히브리서를 읽고 있는데 히브리서 10장에 이와 관련된 무서운 말씀이 나오지요.



(히10:26~31)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죄의 삯은 사망이요, 결코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하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대신하여 가축이 피 흘려 죽임을 당하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죄를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속죄 제사는 불완전하였고 대제사장도 연약한 인간이였기에

그 스스로를 위하여서도 그러한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 날에 아론의 반차를 쫓는 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땅에 속한 성전이 아닌 하늘에 속한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가축인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스스로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단번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러한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에 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언약의 피를 다시금 밟고

욕되게 하는 자가 받을 형벌이 어떠하겠느냐?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게 됨과 소멸하는 불의 진노

만 있을 것이라,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한편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라고 말씀하시며, 공의의 분노, 곧 소멸의 불길을 작심하고 계심을 또한 봅니다.


가령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두 부족 간에 오랜 다툼이 있었다고 합시다.

그러다가 한 부족장의 딸이 그러한 싸움을 하지 말라, 이러이러한 것을 지켜달라고 하면서

스스로 피를 흘려 죽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한 족장의 딸의 죽음으로 두 부족 간에 평화협정이 성립되고 이러저러한 것을

서로 지키며 지내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 편 부족에서 그 딸의 피흘림, 곧 죽음을 욕되게 하는

언약을 파기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딸을 잃은, 그 딸의 언약의 피를 욕되게 한 한편의 부족을 향한

이 부족장의 노여움과 화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랑을 주사..

” 그 큰 사랑과 그 전율스럽도록 고통스런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다시금 부정하게 하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결코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진노하심과 맹렬한 불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빌립보서 2장 12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의 받은 바

은혜와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십니다.

아니 이미 다 용서하셨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이웃의 허물을 용서해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끝없는 죄도 다 용서하여 주시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짓는 다양한 인간적인 실수와 죄에 대해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고백하면

무슨 죄에서든지 또한 용서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두 가지, 성령의 훼방죄와 거역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부종하게 하는, 성령의 빛과 내세의 능력과 말씀의 선함,

그 모든 것을 맛본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타락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죄에 대해서만은 속죄의 제사가 다시는 없고

영원한 지옥의 두려운 형벌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참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섬기다가 어떤 불행이나 죽음의 병에 걸리면,

“잘 믿었는데 왜 이런 불행이 오느냐!”라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저주하면서 죽어가는 분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 고통과 아픔을 한편 넉넉히 이해하기에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믿는바 소망이 이 땅이었던가요?

이 땅의 삶은 눈물과 한 숨 뿐이라 성경이 말하고 있고,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야곱과 요셉과 다니엘과 예수님의 열 두 제자 등 하나님 안에 살았던

그 누구도 이 땅에서 고난과 연단,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요?

많은 사람들은 순교하기까지 피 흘리지 않았던가요?

우리의 믿는바 소망이 이 땅이었던가요? 성경이 그렇게 전하고 있던가요?


그러므로 우리의 믿는바 소망이 무엇인지, 그 소망이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과

어떠한 희생의 언약의 피로 이루어진 것을 가슴 깊이 깨달아, 우리 모두 다시는

사함이 없는 영원한 형벌의 죄를 짓는 어리석은,

아니 너무도 어이없이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령이여, 우리를 도와 주소서! 아멘!!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히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출처: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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