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승천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주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행1:6-11)


사도행전 1장 1-5 절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모든 신 구약 성경의 공통적인 특징은 "약속"이다.

쉽게 말해서 구약은 '오래된 약속' 또는 오래된 계약 문서로 봐도 무리가 없다.

신약 성경은 "새로운 약속"이다. 이것을 '새 언약' 이라 한다.

구약이 옛 계약문서라 한다면 신약은 새로운 계약문서라 한다.

지금 당장 효력을 발할수 있는 계약서라는 뜻이다.


세상 법정에서도 계약서는 아주 중요하다.

모든 분쟁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계약서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낡은 계약서로 새로운 계약서를 이기려고 하는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있을까?

말하자면 구약을 고집하고 구약의 율법으로 자기의 모든 기득권들을 정당화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새로운 계약서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라는걸 알아야한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하여서 충분하게 이스라엘과 "새 언약" 을 세우시겠다고 공포하셨다.

그러나 당황스러운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전혀 새 언약에 대하여 알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려고 하는 것은 고사하고 처음부터 새 언약에 대하여 거부한 것이다.

새 언약의 당사자인 예수께서 오셔서 친절하게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 비유를 듣고 깨달아 회개하기는 커녕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까지 자기들의 악함을 스스로가 들어내기에 빨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원칙적으로 하나의 약속이지만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함이 들어난다.

구원이 하나의 약속의 핵심인데 구원의 방식이나 적용의 범위에서의 다양한 시대와 방식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복음서 안에서도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병고침이 구원으로 적용이 되며

다른 방식으로는 죄 사함이 때로는 구원으로 적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하여 신학자들은 열변을 토하며 반론을 재기할 것이다.

행전 1장 1-5절에서의 약속은 '성령 세례' 에 대한 것이다.

성령 세례라는 부분에 대하여도 아마도 신학자들은 열띤 논쟁으로 시간들을 보낼것이다.

그러나 누가의 보도는 단순명료하다. 성령 세례는 일회적인 사건이었다.

사도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능력이다. 계속 살펴 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령 세례는 곧 성령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이라함은 성령자신이 사도들에게

각각 임하심이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큰 일을 행함에 대하여 증인으로서 말하게 하신 사건이다.

2장에서 증거 되겠지만 성령의 말하게 하심이 곧 방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행전에서 사도들이 말한것은 물론 방언으로 볼 수 있지만 새 방언이며 외국어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각국의 언어로 말하도록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것을 오늘날 무슨 이상한 하늘의 언어라는둥 이상한 소리를

집단적으로 하는 집회들과 동영상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할 노릇이다.

나보고 방언 무시자라거나 중지론자라는 이상한 타이틀로 몰아 부치지 말기를 바란다.

주님과의 신비로운 교제 가운데 하는 방언을 무시하는게 아니다.

그러한 골방에서 주님과 속삭이는 언어가 얼마나 소중한가?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방언 행함을 마치 구원의 결과라거나

성령받음의 표로서 강조하고 행하는 집단적인 집회나 모임이 성경적이지 않다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을 약속하신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성령은 예수께서 승천하셔야만 오신다는 것이 약속의 한 내용이다.

이미 요한복음16장7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이렇게 알려 주셨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주님이 승천하셔야 하며 그 약속을 행하시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 가시기전에...

올리우시기전에 사도들에게 당부를 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도들은 주님의 말씀하심이 정확하게 무슨 의도인가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승천하시지 않았고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인간적인 생각을 넘어설 수가 없으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짐작도 못하는 사도들이 모였을 때 한다는 생각이 이런것이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의 주권을 회복하는것, 독립하는것만이 구원인것이다.

빼앗긴 영토를 찾고 로마를 몰아내서 다시한번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 구원의 전부였던 것이다.

십자가에 죽고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보니 사도들의 열망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오늘 예수 믿어 구언얻음이, 예수 믿어 성령받음이

신자들의 소원을 이루는 축복의 조건으로만 인식이되는 기복주의 신앙이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설교자들의 태반이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번영과 성공의 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의 열매들을 보라!

거기 어디에 사도들의 순교적인 걸음이 묻어 있는가?

거기 어디에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보이는가?

거기 어디에 주님의 핏 자국이 흐르고 있는가?

입으로는 아골 골짜기라도 주님이 가라시면 가겠다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이것 저것을 계산하기 바쁜 모습이 나닌가?


다른 집사나 장로의 아들이 오지 선교를 가는것은 주님의 부름이고

자기 자녀들이 오지 선교를 간다고 하면 기를 쓰고 말리는 것은?


이 말을 오해하진 마시라. 그렇다고 지금 현대 교회에서 하는 해외 선교가 정당하며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하지 마라가 아니라 그런 방식은 인간의 발상일 뿐이다.

이미 교회론이 성경과 다른데 당연히 선교나 전도에 대한 인식도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오직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욕망에 포로된 우리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언제 회복이 될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 너희가 신경쓸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권한이다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 교회가 더 많이 성장하고 교인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교단 교회가 일년에 몃백개가 개척되고 교인숫자가 배가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교단이 회외 선교에 몇등인가도 너희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너희가 진정으로 성령을 받게 되면...

그 날이 이르면 너희가 할 일이 있는데...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부분이다.

예수 믿어 성령 받아 능력 받아서 교회 건축하고 교인들 숫자 최고로 많이 배가하는 일들이 아니라

너의 인생 자체가 오직 성령으로 온전히 예수와 하나가 되어서 너의 삶을 나누는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증인이 될것이라는 주님의 기대이다.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하다.

학문적인 배움만으로도 불가하다.

성령이 함께 하셔서 성령으로 보고 성령으로 행하는 자라야만 가능하다.

성령의 사람이라면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고 좁은 문으로 좁은 길로 가기를 힘쓰는 자들일 것이다.

거기에 무슨 업적이나 자기 공로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거기에 무슨 타이틀이나 명예는 더더욱 그들의 관심이 될수 없다.

초대 교회의 공동체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고 배워야 한다.


부족하지만 이번에 사도행전을 일개 무식한 이사람이 묵상하면서...

진정으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드러낼 수 있도록 성령의 감동을 간절히 원한다.

말씀속에 충분히 계시하신 것을 쉽게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보여 주옵소서.

2009/07/12.ⓒ사랑그리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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