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먹은 후 벌거벗음을 깨닫곤 나무 뒤로 숨어버린 아담의 맘을 한번 생각해 본다. 불순종하였음의 죄송스럼과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에 떨며 나무 뒤에 숨었을 것이라고만 늘 이해를 했었다. 그런데 그는 수치스럼을 느끼고 나무 뒤에 숨어버렸다고 한다. 눈이 뜨여서 벌거벗은 모습일지라도 이미 자신을 그 손으로 빚어주신 하나님을 부모 이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을터인데 벌거벗은 모습이 새삼 부끄러울 이유가 무엇이였을까 궁금하기만 했었다.
그는 죄송스럼과 두려움조차도 변명과 핑계로 대처하려 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수치스러웠을 것 같다. 마치 나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께 화를 내며 벌어지는 상황마다 이상하게 연출하시는 그 의도에 대해 좀 너무 심하신 것 아니냐며 항의할 때, 사실 그것은 자신의 어떠함에 대해 굳이 눈을 감아 버리고서, 아니면 정말 깨닫지도 못하면서 나무뒤에 숨어버린 내 모습은 마치 아담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불순종하였음의 상황은 알지만 그 되어진 과정 과정엔 자신의 잘못이 없는 것 같아 굳이 변명하고 싶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생각되어지고 그래서 너무도 억울하고 그런데 상황은 불순종이라는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을 때 얼마나 하와가 원망이 되었을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책임을 추궁하시고 자신의 무고함은 참작해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을 것 같다.
사람의 존재는 너무도 복잡한 구조인 까닭에 두려움, 죄송스럼, 그리고 남의 탓, 억울함... 너무도 여러가지 감정이 범벅되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범죄한 후 아담의 숨어버린 행동은 상황마다 남의 탓이기에 변명하고 싶어 억울해 하고 싶은 그 맘까지도 하나님이 다 아시고 계심에 대한 수치스럼이였을 것 같다.
수치감을 느꼈을 때, 그 맘 이미 다 헤아리시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아 죽이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얼마나 고마왔을까? 자신은 변명과 남의 탓 밖엔 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그 수치의 맘을 아시곤 옷을 입혀주셨을 때, 그의 맘은 어떠했을까? 나에게도 이미 이천년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만들어 놓으시고 입혀 주신다. 이 추악하고 복잡한 죄악을 바라보며 어찌할 줄을 모를 때, 그간 그래도 내가 잘난 줄 알고 온갖 변명과 핑계로만 지내운 나날들을 바라볼 때, 앞으로도 또 많은 시간들을 또 변명하고 핑계만 할 나의 이 모진 죄성을 바라 볼 때,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에 가슴칠 수 밖엔 없을 때, 그런 나에게 옷을 입혀 주시는 아버지 앞에 그저 눈물 밖엔... 감사 밖엔... 그 포대기같이 커다란 옷으로 포근히 덮어주시는 그 사랑 앞에 그저 가슴만 먹먹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