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그랬다. 사랑을 하면 실없어 진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연애시절엔 그냥 사랑하기에 함께 있고 싶고 보고 있어도 또 보고싶었다. 마치 실없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은 짝사랑이시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도 못하였을 때 짝사랑하시어 부르셨다. 애타게 부르시며 너무도 가득 찬 자아의 수 많은 방들을 하나씩 하나씩 점령해 오신 사랑이다. 자존심의 방, 체면의 방, 이기심의 방, 추악의 방, 방 방...자아로 똘똘 뭉친 방을 뚫고 들어 오셨다. 십자가에서의 죽으시며 이 몹쓸 자아의 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렇게 고백하시는 사랑 앞에서 나는 어떠했나. 어떤 實이 있나 계산하기 바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무엇을 주시려나 싶어 늘 그 손의 선물 꾸러미만 바라보았다 . 나의 수 많은 방들에다가 어떠한 그림물감으로 예쁘게 색칠을 해 주시려나 싶어 궁금했었다. 말 잘듣는 어린아이가 되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듬뿍 주시 듯 그런 복을 주시려나 싶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었다. 이왕이면 좀 더 나은 것 좀 더 멋스런 것으로 주실 것이라 기대하면서.
기대에 넘치도록 부어주실 선물들을 설레이며 기다림이 사랑이라 착각하였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밤낮없이 기도하며 말씀봄이 사랑이라 착각했었다. 그것을 받기위해 몸과 시간을 드려 신앙행위에 열심을 내는 것이 사랑이라 착각했었다. 이런 자를 짝사랑하신 하나님은 정말 실없는 사랑을 하신 것 같다.
하나님은 나의 수 많은 방들을 보여주시며 가르쳐 주신다. 자존심의 방은 어떤 모양의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는지, 그 거미줄에다가 더 커다란 커미줄을 만들어 주십사 기도하고 있는 나를, 컴컴하고 음습한 체면의 방은 어찌나 더러워 쥐라도 들락거릴 것 같은지, 그런 곳을 얼마나 더 습하고 추한 방으로 만들어 주십사 기도하고 있는지를, 세상에서의 높음, 멋짐을 추구하던 행복의 방은 말라 곧 부숴져 버릴 것 같은 그곳에 성냥이라도 한번 쓰윽 그어 불을 지펴달라며 기도하고 있는 나임을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 사랑함에는 세상의 실(實)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신다. 진정한 사랑은 실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너무도 멋진 실( 實 )이 있다. 세상을 향해 목말라하고 세상의 것에 탐욕을 부렸던 내가 죄인임을 가르쳐 주신다. 이런 죄인을 짝사랑 하시는 하나님에게 자꾸만 내가 원하는 것들만 살며시 놓아두고 가시라고 기도하였던 나임을 보게하신다. 마귀의 최면에 걸려 꼼짝을 못하고 갇혀있던 방에 아침 햇살로 오시려고, 거미줄이 거둬지고 음습하였던 곳이 보송 보송해지며 칸칸이 막혀있던 모든 방들을 활짝 열어 놓으시려, 긴터널을 지나 이젠 밝고 환한 아름다운 곳, 그 곳으로 데려가시려 이 죄덩어리는 얼마나 커다란 덩어리의 죄인인지를 보게하신다. 이런 죄를 대신해 죽으신 사랑을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그 사랑은..
실없는 것 같으나
실(實)있는 것이요,
멋 없는 것 같으나
참 멋진 것이요,
빼앗아 가는 것 같으나
한량없이 채워주는 것이요,
불가능한 것 같으나
나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아름다운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