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이 하는 일을 보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목숨을 걸고 진리를 전한다고 외치는 자들은 많지만
외치는 자들끼리도 교회의 한 머리이신 주님 안에서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아픕니다. (엡1:22-23, 골1:18, 계1:5)
수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지적하는 기준으로 말씀을 이해하기 때문에
자신이 성경을 아는 지식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단이라 여기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봅니다.
성경을 보는 가치관이 조금만 달라도 판단부터 하는...
진리는 하나인데 성경보는 각도가 다른 기독교계의 수많은 눈들!
그래서 이미 주님의 사랑이 식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를 보아 참으로 주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때가 가까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24:11-13)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가 되게 하신 교회가 하나로 온전해질 수 있을런지요!
언제쯤이면 온전케 된 복음 안에 들어가 하나로 모아질지!
한숨만이 메아리를 치며 돌아옵니다.
아픈 마음을 억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성경의 짧은 지식을 가지고
판단부터 하는 자들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셔드리지 않고 지식으로만 알게 되니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실려고
때에 따라 원치 않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십니다.(약1:2,12)
그런데 안타깝게 주님께서 시험하고 계시다는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다가와 말씀을 전하면 판단부터 합니다.(약5:9)
주님은 사랑만 하라고 하시는데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나 높아져 있어 상석에 앉아 상대방을 지적할 소재를 찾으려고 귀를 쫑긋거립니다.
주님께서 화목하라고 주신 소금(막9:50), 곧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많은 사람이 그 말씀으로 서로 견제하고 지적만 하고 있습니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요!
분열시키는 정체가 '사단'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사단에 조종 받음으로 서로가 판단과 정죄를 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영혼들을 본다면
어찌 가슴이 무너지듯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말씀이 홍수인 시대라서
"내가 전하는 이 말씀이 진리야!"라고 하며
여기저기서 외치는 말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소금,
곧 말씀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능력을 공급받아
이웃의 허다한 죄를 덮으려고 낮아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근원지인 주님의 교회가
사랑이 식어진 것이 그대로 드러남을 봅니다. (마24:12)
이 흑암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진을 치고 있으니,
어디서 주님의 사랑을 찾아 볼 수 있단 말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어둠에 의해 사랑을 잃었기에
화목하라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서로 지적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왜 보아야 하는 지의 그 목적을 상실한 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 안에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단을 사수하겠다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주님의 사랑 안에 들어 오지 못한 영혼들!
그래서 사랑해야 할 형제 자매를
그 말씀으로 찌르며 고통을 줍니다.
저들의 영혼들을 누가 붙들고 있나요?
그 영혼들을 붙들고 있는 정체가 사랑의 주님이실까요?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우면 사랑이 식어진 시대가 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괜찮을까? 하면
그 사람 역시 오직 성경을 통해
이 말이 옳은지를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지식으로 판단부터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참된 복음
즉,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의 참된 사랑을 목말라 하고
그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사는 사람들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요. (고전13:1-8)
주님은 천국에 갈 영혼과 지옥에 갈 영혼인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을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의 관계 속에서 심판하시며 또 정하십니다.
주님은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25:40)
그런데 이 시대는 주님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이 말씀의 의미가 상실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의 능력이 없이도
자신이 구원받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구원을 이미 얻은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주님은 말씀 곧 계명을 지키는 자가
영원히 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8:51, 고전7:19)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8:51)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7:19)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항상 주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자신을 지켜 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 때문에
아무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마7:1-5,롬2:1-3)
주님의 사람, 즉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구원받을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영혼 한 영혼이 너무나 소중해서 이웃을 감히 판단하거나 미워할 수 없습니다.
이는 주님은 말씀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요12:48)
이 시대에 주님을 부르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상황을 있게 하시고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지를 보시기 위해
지극히 작은 자를 보내셔서 주께 대하듯 하는 지를
주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엡6:5-7, 골22-2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엡 6:5-7)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골22-25)
만일 기독교인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께 대하듯 한다면
결코 사단이 주는 미움은 기독인의 마음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내려온 사랑이 내면에 있다면
기독교 안에는 미움과 다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많은 사람들은
사단이 주는 두려움에 취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공급받아 작은 소자를 사랑할려고 하는 것보다
"자신을 해친다"는 사단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온 작은 소자들을 판단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요일4:17,18)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자신을 해친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판단과 지적하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살리시려고 주신 말씀이 왜 있는지
그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가 고갈되어 탈진된 상태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호6:3,6,요17:3)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을 자세히 볼 수 있다면,
그런 오류 속에 빠져 말씀의 기근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요?
이는 온 세상이 어둠에게 휩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이신 주님을 따르지 않고
어떤 환경과 상황에만 집착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멀리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심으면 운동력이 있으므로 사랑이 흐릅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데 목적을 두기 때문에
머리에만 지식으로 남아 있어 말씀의 근본인 사랑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의미를 잃었기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인류를 말씀으로 죄에서 해방시키시려고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마1:21, 요12:46)
그런데 오히려 말씀으로 죄 가운데 갇혀버린 사람들이
말씀으로 남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견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서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17:21-23)
깨어 있는 자는 탄식하며 주님과 함께 울 수 밖에 없습니다..(겔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