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을 하다보면 불협화음이 날 때가 제일 힘이든다. 불협화음의 원인은 어느사람이 틀린음을 내기에 그러하다. 그 틀린음이 정확히 틀린음임이 보이면 괜찮다. 틀린 사람도 인정하기에 지휘자도 편히 지적하여 고쳐줄 수가 있다. 그러나 참 어려운 음이 있다. 같은 음을 살짝 낮게 내거나 살짝 높게내는 경우가 그러하다. 누가 틀렸는지는 모르나 전체의 화음에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린다. 지휘자조차도 딱히 누구의 틀린음인지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이다. 다만 전체적 화음이 여엉 이상하게 들리는 답답함이 있을 뿐이다.
신앙도 그러한 것 같다. 불신자인 경우는 확연히 전도의 대상자이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가며 관심을 가지고 기회가 닿는대로 예수님을 소개해줄 수가 있다. 마치 합창대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틀린음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온전히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자들은 사람의 눈으론 구분할 수가 없고 사실 본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또 신자이면서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옛자아로 인해 자주 그러하다. 합창대에서 같은음인데 살짝 낮은음을 내거나 살짝 높은음을 내면서도 본인은 정확한 음을 내고 있다라고 여기는 경우와 같다. 그렇지만 무언가 조화롭지 못함에 있어서 예리한 지휘자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이며 어느부분이 살짝낮거나 살짝 높음을 지적을 할 수가있다.
때문에 영적지도자들의 진리대로의 가르침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있다. 우리모두는 진리대로의 가르침을 원하면서도 특별히 나에게는 관대함을 원한다. 구원의 길을 제대로 소개받아 그 길대로 걷고 있음을 조심히 돌아보고 또 진단해보길 너무도 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는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이라는 대답만을 원한다. 합창대에서 자신이 내고 있는 소리가 정확한 음이라는 확인만 받고 싶어한다. 만약 살짝 낮다고 지적을 받은 경우는 지휘자가 틀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신은 너무도 정확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아니면 적어도 살짝 틀린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되냐고? 그렇게 코옥 짚어 지적을 하면 인정하기 싫으니깐 아주 보드라운 소리로 정말 사랑스런 말로만 지도해 주십사 부탁하고 싶다. 우린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기만을 바란다. 틀린음을 내고 있으면서도, 진리에서 벗어나 곁길로 가고 있음에도 잘못의 지적은 참 싫어한다.
다윗곁에 나단선지자가 있었음이 참 부러웠다. 오래도록 부러웠다. 하나님의 맘을 제대로 전해주는 그런 선지자를 곁에 둔 다윗은 정말 선택받은 인물 같았다. 다윗이 나단선지자의 죄의 지적앞에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분명 그러하리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착각이였다. 내가 만약 다윗이였다면 나단선지자를 당장에 참형에 처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란 것을 이제 조금 아주 조금 인정한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나단을 원하면서 나단을 싫어한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원하면서 이미 만났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곁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바른길로 잘 가고 있다는 칭찬만 듣고 싶어한다. 우리는 모두 살짝 낮은음, 살짝 높은음을 내면서도 정확한 음정을 낸다고 믿고 있다. 오히려 예리한 지휘자의 지적앞에서 당신의 귀에 문제가 있다고 화를 버럭내려한다. 사람은 모두 그러하다. 나는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