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왜 포도나무에 접붙임이 안 되었는가?

조회 수 1211 추천 수 21 2011.12.23 16:15:43
한국교회가 왜 포도나무에 접붙임이 안 되었는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를 방불케하는 사라에게 이삭을 잉태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나, 마른 뼈를 일으키심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이나 또는 죽은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대니 살아나는 의미는, 모두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새 생명(롬6:1-9)을 주시겠다는 해석과 직결 되기도 합니다.

이 의미는 겔36:26절의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새 영'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렘31:33절의 새 언약인 '하나님의 법(생명의 성령의 법)'을 우리 속에 주시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참 포도나무에 접붙이려면, 들 포도나무에서 필히 베임을 당해야 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죽었음이 계시로 (마11:27,눅10:22,갈3:23,엡1:17,벧전1:12) 믿어져 실제가 되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면 부활의 영이 임하여 주와 연합하여 한 영이(고전6:17) 되는 체험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위로부터 거듭남"이라 하며 "중생"이라 하고 "성령세례" "오순절체험"(앤드류 머레이,챔버스) 또는 "새 생명"이 임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찰스 프라이스'는 현재 교회에서 "믿음"이라는 단어와 "영접"이란 단어가 한참 왜곡되어 쓰여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는 '좋은 크리스찬의 잘못된 믿음'이란 책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믿음"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그리스도가 내안에 사시는 것이 계시로 믿어지는 것이, 참 "믿음"으로 자아가 죽어 자기가 부인된 삶을 말합니다.
"영접" 역시 내가 나의 주인 된 삶이 아니라, 주권이 주인 되신 예수님께 모두 이양되어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 것이 "영접"의 참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위로부터 계시가 임해야 실제가 됩니다.

또한 오스왈드 챔버스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다 믿는 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휘걸은 "십자가와 나"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나의 현재 신분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프랑스인이 되려면 프랑스 사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신분이 죽고 프랑스에서 다시 출생해야 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죽지 않고 새 생명 없이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휘걸"은 새 생명 없이 순종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죽은 개구리에게 전기 자극을 주면, 잠깐 움직이는 것으로, 결코 그리스도의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스왈드 챔버스는 우리가 십자가에 죽어야 예수님의 DNA로 우리의 성향이 예수님의 성향으로 교체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렇게 될 때 죄와 사망에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롬8:2)으로 교체되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가능합니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중력의 법칙처럼 일정한 법칙으로 그리스도의 성향이 반복되어 흘러나옵니다.

(거듭남이란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안에 형성된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사셨던 그리스도와 정확하게 동일하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애가운데 보이셨던 초월적 특징들이 그리스도인들 안에 나타나야 한다 -구속의 심리학26쪽)

저 역시 30년을 교회생활하면서 많은 기도 응답과 병치유와 환상을 경험하며, 신앙생활 했으며 구원의 확신가운데 신학(아세아 연합신학, 백석 신대원)을 5년하고 목회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즉 그동안의 신앙생활은 새 생명이 없이 내 힘(자아)으로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였으며, 화를 안내려고 참았고, 죄를 안 지으려고 애썼으며, 또한 주일예배, 새벽기도, 수요, 금요예배 안 빠지면서 행위로 '새 생명'에 이르려 하였습니다.
이것은 새 생명으로 다시 출생한(거듭난)것이 아니라, 성령의 외주로 마태복음7장의 불법을 행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작년 8월에야 이것이 성령의 내주가 아니라, 성령의 외주로 "연합된 새 생명"이 내 속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성령으로 충분한 삶16쪽)

새 생명이 임하여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교체된 새 생명 즉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즉 나란 존재는 아담의 부패한 본성(옛생명)으로 죽어서 처리되어야 '새 생명'으로 교체가 되는 것입니다.
즉 식물의 씨앗이 죽어야 새 생명으로 자라나듯이, 죄의 본성인 나의 '옛 생명'이 십자가에서 계시로 주님과 함께 죽음에 동참해야 '새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옵니다.
즉 죄가 우리가 출생할 때 따라왔듯이 우리가 죽어야 해결되는 것처럼 말입니다.(죄의 삯은 사망)
그렇지 않고 예수님만 십자가에서 내 죄 때문에 죽었음을 믿는 다면(한국교회가 거의 이것만 믿음), 이 "십자가"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내가 율법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오신 것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갈2:21)

저는 작년 8월에 비로소"나는이미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 참예되었고, 현재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가 내안에 사시는 것(갈2:20)"이 계시로 실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이상하게 죄가 나를 주장하지 않으며, 내가 아닌 다른 인격으로 사로 잡힘되어 어떤 고난과 힘든 상황에도, 완전한 평강과 기쁨과 거룩함으로 배에서 생수가 흐름(요7:38)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허드슨 테일러"가 목회 말년에 체험한 '성령세례'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기뻐한
'새 생명'이며, 스티븐 맥베이(은혜의 영성파워 저자)가 17년 목회하다가 체험된 은혜의 체험으로 죄(롬6:18)와 율법(롬7:6)과 세상(갈6:14)과 자아(롬6:11)에서의 해방으로 이제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새 생명(롬6:4,고후4:10,요1:1-3)'으로 사시게 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나에게 산상수훈이나 고전 13장이 실제가 되어 딜레마가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가서 사랑하라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으로 살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내가하는 것이 아니요,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하시니 가능함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새 생명인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며, 이것이 실제가 되는 것이 "그 나라와 그의"가 내안에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의"가 내안에 이루어지면  마6:19-34가 딜레마가 안 되며, 내일이 실제로 염려가 되지 않고, 이세상의 것을 더 이상 구하지 않게 되며, 나의 소원을 위해 기도가 안 되어 집니다. 할렐루야!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하라 명한 모든 율법(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나의 자아 즉 아담의 생명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비로소 내속에 그리스도의 영을 주시어 새 생명으로  그가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사랑인 예수님이 내안에 계셔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주님이 하시므로 놀랍게 모두 가능함을 봅니다. 오~ 할렐루야 !!!
챔버스는 이 새 성향을 예수님의 DNA라고 하며, 오순절을 체험한 이후 나타난 제자들의 삶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구속의 심리학, 죄의 철학 등에서 강조)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순절의 성령세례체험을 한자가 진정한 세례받은 자로, 그 이후로는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순종이 가능해 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순절체험의 120명과 제자들과 나는 같아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휘걸 역시 "십자가와 나 79쪽"에서 중생이란 - 새 생명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하여 자아생명에 대하여 죽은 자를 말함 - 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장21절은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심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즉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자기 백성이라는 뜻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형제자매들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현재 죄에 대하여 죽었고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한 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계시가 임해야 주님과 연합되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생명으로 사는 사람이, 예수님만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믿으며, 또한 방언하고 성령의 많은 외적체험을 하며 오랫동안 교회 생활한다고 해서 연합된 것이 아님)

이 계시는 순간임하여 내가 죽었음이 실제가 되며 새 생명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오스왈드 챔버스는 복음서에서 이 체험을 회심, 중생, 성화의 순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임한다고 강조합니다.(구속의 심리학 34쪽)
이것이 내가 죽고 부활생명인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세례'의 의미입니다.
이때부터 갈5:22절의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언제나 이 열매가 나타납니다.
즉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은 이것과 직결 됩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닌데도 잎만 무성하여 저주를 한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새 생명으로 연합된 자가 맺을 수 있는 이 성령의 열매는 -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오래참음 인데 오직 예수님의 성향이 흘러나와야만 맺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되면 요한 일서의 말씀이 딜레마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못한다.'는 말씀 등이 실제가 됩니다.
이것은 갈5:16-17절의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가 경험되어 성령이 생수같이 흐르는" 새 생명"으로 교체되었기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창6:3절에서 사람을 만들고 육체가 되어 후회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홍수로 모두 멸하고 8명밖에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에도  오스왈드 챔버스, 앤드류 머레이, 휘걸, 스티븐 맥베이, 제시펜 루이스, 찰스프라이스 등은 이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가 극히 소수라고들 합니다.
즉 복음서에서 많은 무리가 오병이어 기적과 많은 이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결국은 오순절체험에 120명밖에 남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나자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종국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들어가려 힘쓰고 애써도 들어가는 수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에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 의미를 "현재의 많은 조직교회가 여기서 탈락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 합니다. 참으로 마지막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계시가 임하므로' 모두 부활생명으로 성령의 생수가 날마다 샘솟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12/24/2011


운영자

2011.12.23 16:30:13
*.104.239.214

며칠 전 모든 회원분들께 운영자로서 공통적으로 간단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다녔던 여자 회원 한분께서 답글로 보내온 글입니다.
본인의 양해를 구해서 운영자가 대신 올립니다.

이 자매님께서는 신학교에서마저 복음과 상관없는, 때로는 거역하는 신학을 가르친다고 절감하고
학교를 중퇴하는 용단을 내리고 지금은 개인적으로 뜻이 맞는 목사님과 함께
오직 복음을 바로 전하는데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성화의 가능성에 대한 이견(異見)의 여지는 조금 있지만
우리 모두와 한국 교회를 향해 뼈를 깍는 각성을 촉구하며
온전한 십자가 복음으로만 돌아가게끔 회개시키는
내용임에는 틀림 없기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샬롬!

김승겸

2011.12.23 20:07:38
*.227.210.21

진정한 회개와 순종이 없어서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써 있는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가 안갑니다 ㅠㅠ

회개하고 믿는 것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고 예수님과 다시 사는 것이고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려는 즉 회개하려는 마음은 부족한데 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만 누리려고 하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김승겸

2011.12.23 20:18:03
*.227.210.21

그리고 회개에 대해서도 자신의 여러가지 범죄에 대한 회개가 아니고 아담때부터 시작된 불순종에대한 회개 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심한 후 순종할때 조금씩이나마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게 된다 생각합니다..그리고 그 이후 성령님의 도움으로 순종이 열매를 맺게 되는 거구요...

사라의 웃음

2011.12.23 23:03:23
*.120.3.94

자매님이 우리 회원이시라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들로 인해 애통해 하시는 자매님의 안타까움에 저희 모두 동참하면 참 좋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교제 나누며 복음의 아름다운 외침 소리를 많이 들려 주시고 예수님 사랑으로 한 형제 자매됨의 기쁨을 함께 누리길 기대해 봅니다.

정순태

2011.12.24 02:38:16
*.75.152.182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도록 하는 글입니다! 전반적으로 많이 공감합니다.

다만, 오스왈드 챔버스라는 분의 "회심, 중생, 성화의 순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임한다.'는 견해에 약간의 이견이 있습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보면 분명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넓게 보면 이 또한 제한된 이해임을 알게 됩니다.

비단 성도들뿐 아니라 불교도들도 이러한 논리(신학)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수양과의 관계를 아주 조심스럽게 규정합니다.
점진적 수양을 통한 깨우침인 점오(漸悟)와 수양이 필요없이 순간적으로 깨우친다는 돈오(頓悟)가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사상을 여러가지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깨달음도 수양도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 개념도 있습니다.

돈오돈수는 유명한 성철 스님의 철학이라 알려지기도 했습니다만, 오스왈드 챔버스의 견해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에 돈오돈수적 개념이 분명 존재하지만 모든 말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점수점오(漸修漸悟=점진적으로 수양이 이루어짐에 따라 깨우침도 이루어진다)로 해석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너무 경직되거나 제한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면도 있다는 생각에, 개인적인 이견을 표해 봤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1.12.24 06:27:10
*.120.3.94

저는 신학적으론 무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순태님의 의견처럼
회심, 중생, 성화가 한꺼번에 임한다는 의견에는 조금 의아함이 있습니다.

소경이 눈을 떴을 때, 돼지인지 소인지를 어찌 단번에 알아 볼 수 있겠는지요.
그 소리도 들어보고 이론으로 배웠던 생김새도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아, 돼지
구나, 소로구나 하며 하나 하나씩 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경험 속에는 각자에게 여러 모양의
상황들, 그리고 시간들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는 추억의 앨범들이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구원은 육신의 죽음을 맞는 그 날까지 또 꾸준히 구원을 이루어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세상에 속한 우리이기에 늘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갈 구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자매님처럼 단번에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믿음의 그런 천재적인 부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함께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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