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오물통에 빠져 온갖 오물로 더렵혀진 자를 건져놓으시곤 당신의 자녀라고 흐믓해 하신다. 만약 나의 자녀가 그러하면 당장에 목욕탕에 가서 씻고 나오라며 화를 버럭 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냄새며 그 더러움에 머리를 흔들며 창문이란 창문을 다 열어제쳐놓고 갖은 인상을 쓰며 아이들을 나무랐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참 희한하신 아버지이다. 이렇게나 더러운 오물단지에서 나뒹굴던 자를, 혼자서는 그 곳에서 도무지 나오고자 생각치도 못한 자들, 그 곳이 제 곳인지 알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자를, 송아지 우상 만들어놓고선 이것이 하나님이시다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어깨 으쓱거리며 거룩한 척하는 자를, 하나님을 자신이 최고로 잘 알고 있는 듯 교만하여 목이며 머리까지 뻣뻣해져버린 자... 이런 자를 당신 손으로 오물을 묻혀가며 끌어 올려 놓으시곤 당신의 자녀라며 흐믓해하신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도 이상하신 분이시다. 그 이상함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너무도 이상한, 너무도 기이한, 너무나도 감사한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의 사랑이시다.
오물이 가득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을 때, 구원해 놓으시곤 그렇게나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난 얼마나 또 교만했던가? 더러움 그대로, 악취 그대로의 옷을 입고선 구원받았다고, 이젠 깨끗해졌다고 또 얼마나 요란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예배드렸던, 그래서 내가 만들어 놓았던 금송아지 우상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서는 그 금송아지를 더 빛나게 해달라며 오히려 떼를 쓰고 있었다. 물로 씻어야하며 불로 태워야할 것들 투성이였음에도 그걸 자랑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면 부끄러움 투성이인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악된 자리에서 구원 받은 후, 구원 그 이후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불로 태워야할 옛 본성, 물로 씻어야할 옛 자아를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목욕탕에서 말씀을 통하여 부지런히 예수님의 보혈로 옷을 빨고 예수님의 보혈로 몸을 씻고 또 씻어야만 한다. 그 보혈의 강에서 나오는 순간 또 더려워지는 자신을 보며 깊은 한숨과 슬픔을 느끼도록 성령님은 늘 도와주신다. 때론, 그런 지적들 앞에서 슬픔과 한숨대신 화도 나고, 난 이제 깨끗하여졌건만 왜 지속 씻음만 강조하시는지 자존심이 상하여 가르치는 자에게 서운할 때가 너무도 많았다. 호랭이보다 더 무서운 지도자라고 화를 벌컥내며 도망가고 싶을 때도 정말 무척이나 많았다. 왜 사람을 그리도 미워하냐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진적으로 미워하느냐며 따지기 일쑤였다. 그만큼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력이, 능력이 없는 상태인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천국가는 그 날까지 씻음 받아야하고 태움 받아야할 나의 옛 본성을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물 잔뜩 묻은 나를 당신의 손으로 구원하여 놓으시곤 이렇게 말씀의 목욕탕에 데려다 놓으셨다. 구원받은 것으로 다 이룬 듯, 어깨 으쓱거리며 가슴엔 금송아지 우상을 품고선 요란스레 자랑하던 나를 사랑의 하난님께선 지속 씻김 받아야한다고, 수시로 올라오는 죄는 지속 태움 받아야한다며 이렇게 말씀의 목욕탕으로 인도하여 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