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을 때 일이다. 그 분 특유의 억센 표현으로 한국의 교회들에 대해 걱정스러워하는 내용이였다. 한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홍해만 건너놓고선 소고치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광야도 건너야하고 요단강도 건너야하는데 그저 홍해만 건너놓고선 다 이루었다고 신나한다는 것이다. 그 땐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나도 홍해를 건넜음은 분명한데, 그리고 사는 동안의 고달픔은 광야같은 삶인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었다. 요단강은 죽으며 넘는 곳일터인데..?? 이런 저런 의문들이 많이 생겼었다.
어느날엔가는 폴 워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또 갸우뚱한 적이 있었다. 정말 심각하고 진지한 그 목사님 특유의 표정으로 교회에 출석하여 입술로 예수를 영접하면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에 대해 화를 내는 듯 목청을 높이며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워온 것 때문에 큰일이라는 것이다. 회중석에서 성도들은 박수를 치며 맞다고 고개를 주억거렸을 때, 그 목사님은 그 회중들을 향해 여기에도 천국 못가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갑자기 손뼉치며 환호하던 회중석은 물 뿌린 듯 조~~용 해졌다. 나도 교회에 출석하여 내 입술로 예수를 주라 시인만 하면 천국가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폴 워셔 목사님 말씀이 맞다면 과연 천국엔 누가 갈 수가 있을까?? 정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요즘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선 '회심'이 화두이다. 설교마다 담임목사님께서 여러가지 말씀으로 지속 회심의 중요함을 가르쳐 주신다. 요한 웨슬리의 신학교수로서, 성실한 크리스찬으로서의 너무도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영혼의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기에 더더욱 갈급하여 애를 태우다가 비로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통해 삶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이야기를 아주 쉽게 잘 설명을 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바를 간곡히 부탁하셨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알을 깨야만 새로운 세상이 보여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알은 알 속의 힘없는 병아리가 미세하게나마 '톡톡' 거리는 입놀림이 있을 때 어미닭이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반응없이 가만히 있는 알을 어미닭은 도웁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속에서 알을 깨고 싶어하는 몸짓이 있을 때 어미닭이 바깥에서 '탁'하니 쪼아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알 속에서 진리를 향해 갈급해하며 몰부림도 쳐보며 병아리의 '톡톡'거림처럼 애를 쓰자는 것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탁'하며 건드려 주신다는 것이다.
알이 깨어지며 열려질 새로운 세상, 바로 천국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삶이라는 것이다. 비록 이 땅의 자신의 모양새는 어떠할지라도 전혀 상관없는 온전한 기쁨, 온전한 평강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기쁨의 나라에 우리 성도 모두가 들어가자는 것이다. 그 일은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우리의 삶속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말 아멘 아멘 소리가 절로 베어나왔다.
박영선 목사님의 외침, 폴워셔 목사님의 애끓음... 이 땅에서 천국의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먹고 마시도록 허락하신 이 은총, 그 열매를 한 입 싸악 배어물 때의 그 시원하고 향기롭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천국기쁨을 우리에게 선물하시려 그렇게 모진 고난을 당하시며 대속하여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조용히 찬미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