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이들이 참 고맙다. 어려움을 정말 잘 견디어줬다. 때론 삼단요에 가로로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 할 때,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다며 어서 예수님 오셨으면 참 좋겠다던 아이들.. 그러다가도 내가 슬퍼하는 것 같으면 얼른 말의 방향을 돌리며 분명히 이 고달픈 현실이 그리워질 날이 있을 것이라며 나를 위로하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고맙기 짝이 없다.
작은딸은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일부러 청년들이 아주 많은 큰교회를 혼자 찾아가서 가족과 따로 떨어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사이 소그룹의 리더가 되어 소그룹원이 이제 너무 많아져서 고민을 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 보면 어찌나 성도들을 잘 섬기고 있는지 정말 기특하다. 가정이 어려운 청년, 고아원 출신의 청년, 그리고 너무도 많은 상처로 얼룩진 청년들의 이야기를 가슴 아파하며 나에게 곧잘 이야기해 준다. 들어보면 또 가슴 절절이 아픈 사연들 투성이이다.
그런 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절대로 시선을 예수님께 돌려주는 역할만 해야한다고 신신당부한다. 혹여 사람을 의지하도록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할 것을 많이 부탁한다. 참 어렵다고 아이는 대답을 한다. 그런 아이에게 요즘 특별히 기도해야할 것을 가르친다. 예수님을 이젠 인격적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길 부탁한다. 그것도 참 어렵다고 아이는 대답을 한다. 맞다. 참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나는 그런 기도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참으로 알아갈 수 있는 길은 그 길 밖엔 없음을 또 강조할 수 밖엔 없다. 그래서 엄마의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고 바로 너의 예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참 신자가 되길 부탁에 부탁을 하고 있다.
엉켜진 실타래처럼, 여인네의 엉클어진 머리마냥 어수선헀던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신앙생활에서 이젠 완전히 다른방향으로 몸을 돌려 투벅 투벅 걸어감을 느낄 때, 그럼 그 오랜시간 동안의 신앙생활은 무엇이였느냐는 생각이 참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다. 종교적 열심, 그 특심으로 교회에서 오래도록 봉사해 왔고 나름 자녀에게 버림받은 노인을 전도하여 병이 들어 죽는 날까지 곁에 있어 줬고 그렇게 엄마를 버린 아들과 며느리를 장레식장에서 만나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였고 또 장애인들을 사랑하되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겨왔던... 그런 수 많았던 열심들은 무엇이였나? 하는 그런 의문들이 참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의, 회심 전의 삶과 회심 후의 삶, 이렇게 구분하며 생각하니 좀 쉬워졌다. 그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아들을 죽이기까지 죄를 미워하셨던 그 아버지는 너무도 선하시고 너무도 아름다우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그 아버지는 지금도 신자의 머리위에 장막을 치시고 늘 함께 계셔 주신다. 그 믿음을 주시려고 행하신 신묘막측하신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였다. 그 일은 하나님은 무조건 옳으시기에 내가 만났던 모든 환난도 정말 필요했던 일들이였다.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 신앙의 행위와 내가 가진 인격으로 내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있었던 신앙의 행위를 구분지어 보니 좀 쉽게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