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고통

조회 수 594 추천 수 13 2012.05.20 22:39:45
사도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예수님을 핍박하였었을까?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핍박의 자리에 대한 그 간극이 현대에선 어떻게 적용되어야할까?  오히려 그 시절엔 눈에 보이게 예수님 기준으로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데 요즘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정확히 이단이나 사이비라 판정된 것들은 구분할 수 있지만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주라 고백하면서도 회심하기전의 사도바울의 모습과 닮은 성도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참 오래도록 나를 궁금케했다.

분명 회심하기전의 나의 모습은 사울의 모습일터인데, 나름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늘 고백하며 살아왔던 나이건만 내가 왜 사도바울되기 전 사울의 모습인 종교인으로 살아왔다고 구분 지어져야하며 딱히 어느부분이 그러했을까? 라는 나에 대한 여러 질문들, 내가 나를 어찌 설명할 수가 없는, 그래서 잘 알 수가 없는 것들이  이제 조금씩  정리가 되어지는 것 같다.  그건 그동안 나의 의로움의 보자기로 예수님의 의로움을 덮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였음을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간다.

난 내면의 고통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모질게 힘든 것인지 몰랐었다.  현실의 여러가지 모양의 고난들을 통과하며 견디어내는 아픔보다 사실 더더욱 쓰리고 아픈 것이 내면의 아픔이였다고 고백하고 싶다. 신기하게도 거짓말처럼 돈 걱정은 어느 때부터인가는 사려져 버렸다.  물론 다른 여러 현실의 고난들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은 내면의 고통만큼 시리고 아픈 것은 아니였다. 그만큼 하나님께선 현실의 고난속에서 붙잡아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고통은 어찌나 아프고 어찌나 시리던지...

회심전의 나는 의기양양했었다.  나의 믿음은 내가 인정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도 참 떳떳하였었다.  왜냐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지를 하나님만은 아실터이고 그 사랑만큼은 하나님도 인정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러했다.  때문에 어떤일을 만나도 하나님께 조잘거리며 다 아뢸 수 있었고 그렇게 아뢸 때 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 되어주시는 것 같았고 늘 내 머리만 쓰다듬어 주시면서 조금만 참으라시며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다.  항상 내가 맞다라고 응원해 주셨고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자는 반드시 혼내켜 주시겠다고 늘 약속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나에게 상을 베푸시고 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며 나를 얼마나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그 원수에게 반드시 보여주실 것을 믿으며 매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쏟아 놓으며 고자질 하듯 이웃들의 잘못을 일러대고 이웃들의 악함을 자세히 말씀드리곤 했었다. 그러했기에 내면의 고통은 전혀 없었다.  다만 현실의 고통, 여러 환경의 어려움과 인간관계의 아픔들만 아뢰면 되었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기도의 대부분이였다. 하나님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시는 것처럼 그리고 정말 나만을 사랑하시는 것 같기에 내면의 고통에 대한 그런 아픈 경험이 없었다.

큐티시간에 가끔 찔림이 오는 말씀,  예를 들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시는 말씀앞에선 이렇게 변명하였었다.  " 그런 자를 사랑하라구요?  아니요,  차라리 제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 천사가 되라하셔요.  천사가 되어 하늘에 올라가는 편이 저런 자를 사랑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를거예요."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말씀드렸고  하나님은 나만을 이해해 주시길 바랬었다. 교회를 개척할 당시는 더더욱 그러했다.  곪아 터질 듯한 교회에서 지도자를 뒤에서 수근거리고 욕하면서 이렇게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참된 교회를 개척하고 싶다고 시작한 일에 정말 너무도 억울한 이야기들로 너무도 많은 상처와 아픔들을 입힌 그런 자들에 대해 더더욱 그러했다.

회심후 난, 말씀 말씀마다 찔림이 있었다.  그 찔림은 너무 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을 어떻게 해소해야하는지 잘 몰랐다.  그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고 죄책감과 분노와 억울함으로 범벅되어져 지금까지 대부분이 이웃의 잘못이였던 것처럼 해석을 하며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 또 일러대고 다리 퍼덕거리며 징징 울러대는 아이처럼 그렇게 울어버리기 일수였다.  말씀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그런 지도자들을 하나님께 그렇게 일러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틀린 것도 같고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도 같고...

말씀은 들려오는데 나를 고쳐 나가는 것엔 전혀 낯설은 까닭이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떳떳하고 의기양양했던 나를 하나 하나 부숴가시기 시작하셨다.  신앙좋다고 자부했던 나는, 실은 예수님의 말씀에 전혀 순종치 못했고 나만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했던 사울보다 더더욱 악한 그런 자였다.  나의 의로 충만함이 하늘을 찌를 듯한 그런 나의 의... 그곳에서 돌이켜야했다.  지금껏 걸어오던 방향을 하나님께서는완전 반대방향으로 틀어놓으셨던 것이다.

사울보다 더더욱 악한 이런 자를 속 깊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이 곳으로 손잡아 이끌어 놓으신 것이다.  아프고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고쳐야만 하기에... 영적으로 완전 장님인 나에게 이제 눈을 조금씩 떠 가라시며, 그래서 이젠 제발 좀 구원 받은 자 답게 새 사람이 되라시며 이곳으로 데려다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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