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 그릇

조회 수 723 추천 수 27 2012.01.18 04:37:40
1985년 봄.

당시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나역시 방황과 혼돈의 시기였다.
그 해 4월 난생 처음으로 나 혼자만의 긴 여행을 떠났다.
내가 사는 J 시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청량리 역에서 황지...그리고 하사미리
하룻밤을 새고 새벽에 도착한 태백역은 어둡고 칙칙해 보였다.
다시 되돌아 가고 싶었지만 너무도 먼 길을 왔으므로 목적지까지
갈수 밖에..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 하사미리에 내려 산비탈을 올라 도착한
예수원은 마치 홍길동 전에 나오는 산채 같았다.
다짜고짜로 아침식사는 다 했으므로 작업하다가 기다리란다.
노동은 기도요 기도는 노동이다라고 써있는 것을 보고
작업대신 기도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피곤한 김에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낡은 나무 탁자에 준비해준 점심은 하얀 양념없는 국수였다.
배고팠던 차에 국수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그리고,이 칙칙하고 굴속같은 공간에서 어서 떠나고 싶었는데 손님담당인 형제님이
신부님과 면담 신청을 해주셨다.
여기까지 온 김에 뵙고가자 생각하며 다락방 기도실에서 잠시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문앞에 걸린 그림에 시선이 꽂혔다.
십자가에 못박혀 얼굴이 이글어진 예수님의 얼굴.. 제인 사모님의 그림이었다.
그날 오후 많은 손님중에 왜 내가 토레이 신부님을 만날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장작이 타고 있는 패치카 옆에서 낡은 슬리퍼를 신고 그린색군복같은 상의에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계셨다. 토레이 신부님은 허름한 성경책을 펴고 밝게 웃으시며
성경 말씀을 전해주셨고 내 얘기를 들을시며 눈시울이 붉어 지셨다.
며칠 기도하며 머물러 있다 가라고 권유하셨고 잔잔하게 미소띤
제인 사모님의 따뜻한 차 한잔의 같은 사랑의 눈빛이 내 마음을 돌이켰다.

거기에서 머물며 신부님의 책 출판을 돕는 일을 했다..
신부님의 유명한 강의와 설교는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어려운 공동체에서
형제 자매들에게 매일 매일 내 자아가 죽고 새롭게 부활하는 기쁨을 누리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그곳에 있으면서 두분이 얼마나 고생하시며 외롭게 중보기도하며
청빈한 생활을 하는 지가 느껴졌다. 
호롱불 아래 양말을 깁던 제인 사모님.
몸소 지게를 지고 산위까지 짐을 나르며 장작을 패던 신부님.
별별 사람이 다오는 그곳에서 언제나 누가 오더라도 하나님이 보내신 거라고 생각하며
인내하며 공평하게 대해 주셨다. 늘 복음은 가난한 자를 위해서 전하라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시며 거리에서나 기차안에서 거지를 보면 옆에 앉히시고
빵과 우유를 사주셨다
그후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예전 처럼
친구들과 떠들며 쇼핑하고 영화나 보던 일을 하지 못했다. 

제인 사모님의 고통스러운 예수님 그림이 떠올라서..
토레이 신부님을 마지막으로 본것은 8여년전 방문했을때 였다.
제인 사모님을 15여년만에 만난 나를 알아보시고  예배시간 특별 기도를 해주었다.
나중에 버니 (토레이 신부님 딸)의 얘기를 들어보니 지도를 펴시며
팔라우를 찾아 보시고 기도 하셨다고 한다.
다음날 신부님과 같이 기차를 타고 청량리 역에 내려 지하철을 탔다.
신부님은 허리가 아프시고 연세가 많으신데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하철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신부님 옷에 단 노란색 삼베리본을 왜 달고 다니냐고 물었다.
신부님은 낙태한 아기들을 위해서 라고 했다. 그 날 나에게 수고 했다고 하시면서 헤어졌다.
그 모습이 생전 마지막 뵌 모습이다.

1985년 4월은 봄인데도 강원도엔 함박눈이 내렸다.
눈 내린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들이 부활하고 있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부활을 가르쳐주고 있었고 십자가 죽음이후
부활하신 예수님의 큰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새로운 소망의 봄이었다.

팔라우에 파송되어 망설였을 때 토레이  신부님은
어서 가서 순종하라고 기도해주셨고 늘 속사람이 변해야 하며
늘 하나님의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길 수 없으며
오직 한길로 가라..
십자가의 길로."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내 마음이 세상속에서 갈등을 느낄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먹었던 그때 그 하얀 국수를 생각한다.
미국에서 치료중인 제인 사모님의 쾌유를 빕니다.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성경귀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우리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도다." (롬 18:8).

쌀로별

2012.01.19 04:00:01
*.220.228.246

기억속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네요 ^^
음식이 주내용이 아니지만 작은 기억 한 조각이 아 못하겠다 그냥 주저앉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를 밀고 나가게끔 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요

홍성림

2012.01.24 07:42:34
*.124.226.80

신앙인으로써 초심과 가치관이 흔들릴때마다 가난한 이를 생각하면서 먹었던 멀건 국수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무디어지지 않고 세속에 흐르지 않게 붙잡아 주었던 영적인 의미를
새기면서 마음을 붙잡곤 하지요.
섬세하신 것 같아요..그리고 쌀로별의 아이디 뜻도 궁금했습니다.
새해 모두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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