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라가 잘못했네.

조회 수 785 추천 수 13 2012.10.27 06:51:30



티아라가 잘못했네.



0.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었다. 소년이 호두나무의 호두를 따서 왜 소녀를 주는지 별표를 그렸다. 그리고 왜 나는 소녀가 소년에게 ‘바보’라고 하고 도망가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잔망스런’ 기집애는 소년을 두고 죽었고 분홍스웨터를 소년에게 남긴다. 그나저나 왜 소년이 바보라는거야? 뭐야 얘는. 기집애가 잘못했네. 자기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말을 해야 알 거 아녀.


1.        나는 여중생이다. 남녀공학을 나오긴 했지만 이름만 남녀공학인 여중생이다. 한국에선 구경해보기도 힘든 세일러복을 교복으로 입은 여중생이다. 네모난 카라를 뒤집어 가끔 백설공주를 잡으러 다니는 계모 엄마나 드라큐라백작을 흉내내고 노는 여중생이다. 고민이 있긴 하지만 별 시덥잖은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교장선생님의 지시로 교내의 잡초를 농민포즈로 잘도 뜯는 별거아닌 여중생이다. 학교와 집이 살고 있는 동네의 끝과 끝이라는게 마음에 안들어 아침마다 입이 튀어나오는 여중생이다. 나의 가난을 약간 벗어난 기초체력은 그나마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는 여중생이다.


2.        적당히 친한 수많은 n명중 1명이 나에게 밥 한숟가락만 달라고 한다. 그래서 정말로 딱 한 숟가락만 주었다. 한숟가락만 달라고 해서. 왜 밥을 안싸오냐고 물어보니 그냥 웃기만한다. 아 그러니까 왜 밥을 안싸주냐구요. 가끔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길래 과자를 사준다. 물론 돈이 있을때만. 다리를 건너면서 부모님이 서로 떨어져 살고 계신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애는 운동을 하는 여자애였다. 뭔가 신기했지만 그 아이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 아이가 대단해보였던것 같다. 그리고 그 애는 전학을 갔고 엄마와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3.        날 보고 늘 재수가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아이가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듣도보도 못한 1급인지 2급 전염병에 걸려서 몇 주간 나오지 못할거란다. 오지랖이 지구 성층권을 벗어날 기세인지라 옆사람까지 피곤하게 하는 나의 절친은 그 애를 위해서 노트필기를 해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 친구의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칠판에 그 아이의 욕을 마구 써내려갔다. 스스로를 마녀라고 부르고 마녀같은 웃음을 날리던 그 애는 잊을만하니 돌아왔다. 그리고 나와 나의 절친은 그 마녀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나중에 알고보니 절친이라 쓰고 오지라퍼라 읽는 녀석이 ‘쌀로별이가 너 많이 걱정해’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야. 왜 거기다 나를 집어넣냐. 그러니까 제발 나 좀 엉뚱한데 끼워넣고 팔지 좀 말라고. 자식이. 그냥 난 재수없는 엑스로 남아도 된다니까. 사실관계를 바로 잡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냥 좀 내버려뒀으면. 나는 관심 없다는데 혼자 싫어하고 말고가 무슨 소용이냐구요. 쉬는시간에 여자애들이 화장실 손 붙잡고 가는 것만큼이나 바보같다. 그리고 난 그 마녀와 노래방도 가는 사이가 되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


4.        잠은 집에서. 숙제는 학교에서. 예습은 안하는 걸로(학원에서 하는 걸로 충분하지 뭘 또 집에가서 그걸 하고 있냐!). 복습은 마음 내키면 하고 시험때 되면 해주는 걸로.


5.        내가 방학숙제로 일기쓰기를 싫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주저리 주저리 뭐 그렇게 할 얘기가 많아야 되나? 나는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노는 것도 다 똑같은데. 그리고 왜 내 사생활을 선생님에게 일일이 보고를 해야하느냐구요. 에휴 그냥 오늘도 낙서로 채워야겠다.


6.        똑같이 안경을 썼는데 나보다 좀 더 많이 예쁘게 생긴 친구가 책을 선물로 주었다. 읽고 감동받아서 너도 읽어보니라 하고 줬는데-사실은 이별선물이었다-다 읽고 다 읽었느니라하고 자랑하고 다니기엔 정말 매우 많이 무리’데스네…’ 한 책이었다. 개츠비는 정말 바보같았고 하나같이 다 짜증 그 이상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데이지는 정말로 욕을 그 머리위에다 끼얹어 주고 싶은 여자였다. 난 그렇게 (가로안에 이런 저런 말들이 생각났다 아주 많이) 살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너네 둘 다 이상하다고. 개츠비 그러니까 니가 잘못한거네. 미국산 남자호구. 데이지 너는… 말을 말자.


7.        일어날 때는 일어나고 잘때는 잔다. 생각한대로 몸이 따라와준다는 건 참 편리하다. 별이야 학교 가야지라는 말이 들리기 무섭게 일어난다. 50분동안 깨어있다면 10분동안 빡세게 잘도 잔다. 그 10분동안 전혀 다른 우주에 마실도 다녀온다. n명의 친구들이 점심모이를 맛나게 쪼고 병든닭처럼 졸고 있을 때 나는 날아다녔다. 그러니까… 점심시간에는 놀 친구가 없다. 나도 그냥 10분동안 놀걸 그랬다. 고민은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사람이(또는 사랑이) 변하니?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다(물리적인변화 말고 삶을 견지하는 마음의 태도라든지 그런 내면적인 것들). 그런데 십년만에 연락이 닿은 너는, 예수믿는다고 하는 나보다 더 신자처럼 살던 너는 내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냐. 좋다는 얘긴지 안좋다는 얘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친구는 삶을 좀 더 영리하게 꾸려나가기 위해 오지랖의 범위를 줄이고 있다고 했다.


아냐. 나 변했어. 나 이제는 그 여자애가 왜 소년한테 ‘이 바보야’라고 했는지 알아. 꼭 한 입만 달라던 그 애의 마음을 이제는 알아. 왜 내가 재수없다고 그 마녀가 그랬는지도 알 거 같아. 왜 내가 엄마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에게 말로 얻어맞지 않을만큼만 딱 그 만큼만 ‘적당히’ 학교를 다녔는지도 알 것 같아. 그리고 개츠비가 왜 데이지에게 그렇게 목을 매야했는지도 이젠 알아. 뭐라고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데, 알아. 그냥 알아.


좀 더 ‘잘 듣기 위해서’, 잘 안들리고, 잘 모르겠더라도 잘 들리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어서라도 나는 나를 바꾸기로 했었어. 그랬고. 근데, 이게 생각외로 잘 안먹힌다. 사람들에게. 내가… 그냥 사회적인 인간으로 좀 더 나를 갈고 닦는 그런 과정으로 밖에는 안 보였나봐.


심지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사과를 할 마음도 생겼어. 나의 개인적인 히스토리와 전혀 연관이 없는 일들인데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처럼 연좌제니 뭐니 그런게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저지른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해서. 나는 인디언을 죽인일이 없어. 하지만 나는 그 일로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점잖게 묻든지 화를 내면서 묻는지) 나는 그냥 사과를 하기로 했어. ‘유감이에요’라는 말은 참 비겁하고 애매하다고 생각해. 그냥 사과를 하는게 맞아. 너도 나도 아는 일이지만, 난 인디언을 죽인 일이 없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말 많이 죽였지. 좀비처럼 살아나려고 하면 죽이고 또 죽이고. 인디언이랑 네 안의 좀비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면… 말을 말자. 아무튼 나는 사과를 하는게 ‘맞다’는 생각을 했어. 어떤 논리적인 연관도 없지만…


나는 많이 나약해진것 같아. 응, 많이 찌질해졌어. 솔직히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진 않아. 편리했다고 생각은 하니까.


나는 정말이지 이 좀비 사냥을 끝내고 싶어. 그리고… 내가 사회적인 가면을 쓰는 과정중에 그것이 못내 역겨웠던 사람들에게도 더 잘해보고 싶고. 더 잘한다는 의미는… 50을 주면 50을 받아야만 되는게 아니라 49로라도 만족하자는 얘기였어. 덜 먹고 덜 입더라도 그렇게 살아야한다라는. 이것도 참 많이 내려놓았다고 내려놓은건데…


나의 이 소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솔직히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왜냐면 난 아직도 개츠비처럼 살고 싶지 않거든. 물론 내가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타인이 원하는 그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나의 최선이 그 사람에겐 최선이 아니고 나에겐 기본인 것들이 그 사람들에게는 기본이 아닌 것들인거고.


난 내가 미워. 미웠고 그리고 지금도. 지금 여기를 너무나 벗어나고 싶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좀비들을 마음속에서 살려놓지 않으면 어딜 가도 난 그냥 좀비사냥만 하다가 내 인생이 끝날것 같거든.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좀비들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으면 안돼. 그래야만 언제 어딜가도 난 살 수 있을 것 같거든.


언제 어딜가도 살아갈 수 있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좀비들을 내려놓을 거야. 나는 변해보려고 이렇게나 발버둥치는데 왜 너희는 아무런 응답이 없느냐고 화내는 것을 관두고 싶어.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더라도 ‘이 바보야’라고 소나기의 그 여자애처럼 돌을 던지지 않게 되기를 바래.





+ 티아라는 한국에서 '집단 따돌림'으로 이슈가 된 연예인 그룹 가수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그룹의 거의 모든 신문 기사 댓글에는 '티아라가 잘못했네'라는 글이 따라다니구요.
심지어 전혀 관련이 없는 기사의 댓글창에도 이 말을 심심찮게 보곤 합니다.
이 글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뭐라 딱부러지게 설명하기 힘이 드네요. ^_^;




사라의 웃음

2012.10.28 23:01:30
*.109.85.156

자매님은 글을 참 맛나게 쓰시는 것 같습니다.
무슨의미인지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하는, 이 세대차이가 좀 슬프긴 하지만요...^^
덕분에 '티아라'가 누구인지 딸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끼~~야" 티아라를 어떻게 아느냐며 고개를 갸우뚱이는 아이의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쌀로별

2012.10.28 23:43:51
*.220.228.246

안녕하세요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원래 말을 돌리고 돌려서 하는 아이도 아니고 아메바같이… 단순한 아이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저렇게 글을 써내려가고 있더라구요. 전 초중고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글짓기 특히 독후감 숙제를 제일 싫어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요새 애들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이런일을 하고 있다는게 저도 제 자신이 참 신기해요… 제 글을 접하는 또래들도 ‘그래서 뭐?’ 라든지 ‘아리송하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곤 해요. ㅋㅋㅋ 굳이 세대차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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