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 한결 같이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일 것이다.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며,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
또 기도도 곧잘 하고 선교사업도 잘한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거듭난 좋은 교인들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사님들의 가르침이나 설교를 들어 보면, 예수님을 처음 받아들였을 때 이미 구원을 받았고 거듭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염려할 것 없다고 하시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평안히 지내는 것 같다.
그러나 양심적이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만나는 생애의 시험과 유혹들에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또 참된 거듭남의 경험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마음속에 깊은 좌절과 낙심을 맛본다.
그들은 “과연 나는 거듭났는가?”, 혹은 “나는 거듭났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이렇게 느끼며,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나는 과연 구원을 얻은 것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며 혼자 갈등한다.
답답하여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을 찾아가지만, 대답은 뻔하다.
“택함을 받아 한번 구원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 받은 것인데 웬 걱정이냐?” 는...
그것이 정말 맞는 말일까? 한번 구원 받으면, 어떤 행동을 하든지 상관 없이 구원을 받으며, 예수를 믿을 때 한번 거듭났으면, 다시 거듭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한번 거듭난 사람은 다시는 죄된 생각이나 생활로 빠질 수 없는 것일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된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영적 성장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거쳐야할 단계는 무엇인가?
십자가를 쳐다보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2)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은 영적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이 없다면, 엄밀히 따져서 그 사람은 진정한 영적생애를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은 주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적이 없고, 주님과 산 관계를 맺은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주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기조점이 된다.
그러면 거듭나는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일까?
거듭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이다.
거듭나려면 먼저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악함과 부정함을 깨닫지 않고서는 변화의 필요성, 즉 자신이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죗됨과 어쩔수 없는 처참한 형편을 깨닫게 될 때만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느끼는 것 조차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지 않으시면 그 일은 불가능하다. 매일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께서는 바람처럼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시다.
그분은 우리의 시선을 갈바리의 십자가로 향하게 하신다.
왜 십자가인가?
그 이유는 십자가를 쳐다볼 때 만이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과 고난을 우리가 쳐다볼 때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악한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도록 사랑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깨달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지 않고서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없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모습과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리고 참혹한 십자가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어 타락하였을 때 인류 전체가 죄 가운데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창세부터 세우신 구속의 경륜, 즉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르고 인간을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한 구원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신께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당하실 것을 아셨지만, 인간을 너무 사랑하시는 예수께서는 인류가 잃어버린바 된 동안에는 하늘을 있을 만한 곳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친히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자원하여 죽으시러 오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죄인들을 위해 죽도록 내어주셨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십자가를 쳐다볼 때 일어나는 변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
사람이 십자가를 볼때에 그는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 자신의 죄라는 것을 깨닫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배은 망덕과 반역으로 일관된 생애를 살아 왔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가장 좋은 친구를 버리고 가장 귀중한 하늘의 선물을 모독해 온 것을 느끼게 된다.
계속해서, 그것도 직접,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상처를 받아 피가 흐르는 그분의 심장을 찔러 온 것이다.
그는 어둡고 깊은 죄의 심연(深淵)에 의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자신과 자신의 죄를 보고, 그 죄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낀다.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독생자 아들을 죄인을 위해 죽게 내어주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더 이상 쏟아 부을 수 없는 귀중한 하늘의 보화와 선물을 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다.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그의 사랑은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준다.
우리가 십자가로 점점 가까이 가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신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 대신 영영한 형벌의 고통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녹아져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을 못박은 우리의 죄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통하는 주님의 신음소리는 우리의 죄를 통회하고 버리게 할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상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느끼지 못하고, 자기가 꽤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짐을 지신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의 고통을 알고, 십자가를 쳐다 보고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이며, 얼마나 결점 투성이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 소망도 없이 잃어버린 바 된 자들임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는 구주가 필요하고, 거듭나야함이 필요하다는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