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그 보다 제일로 쓰러지기 쉬운 것이 낙심임을 배운다. 육신을 위해 육신으로 심는다면 당연히 낙심만 기다릴 수 밖엔 없음도, 그러나 성도는 성령을 위해 성령으로 심는 자이다. 성령으로 심기에 그 결과는 영생으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성령으로 근심하고, 성령으로 애통하며,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여러가지 현실들 앞에서의 아픔들은 결국 회개에 이르게하는 일임을, 그 회개는 영생이라는 세상 최고의 선물을 받게되는 지름길임을 배운다.
오랜 신앙생활 동안 교회에서 배워온 기술이 참 많은 것 같다. 낙심을 이기는 방법도 그 중 하나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다른 이웃들을 자세히 살펴 보라는 가르침이였다. 나 보다 더 힘든 이웃들, 더 아파하는 이웃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낙심이 어느덧 사라진다는 방법 하나, 또 하나는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충성 봉사하라는 가르침이였다. 몸이 아파도 복음 전파할 이웃을 찾아 다니며, 현실이 고달파도 또 교회에 나아가 열심히 봉사하고.. 등등의 방법들을 배워왔다.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맘의 위로와 함께 분명히 여러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실 것 같은 기대감 속에서 더더욱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게 되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변 교회에서 제시하는 여러가지 방법들로 육신의 일을 위해 성령으로 심으며 살았던 것 같다. 현실의 형통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한다라는 생각에 어떤 자부심 마저 가지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 못하고 오히려 이웃들에게도 그렇게 전하며 살아왔다. 예수 믿으면 대박난다고, 에수 믿으면 불치병도 말끔히 사라진다고, 예수 믿으면 어려운 인간관계도 좌르륵 해결된다며...도깨비 방망이가 되어진 교회, 알라딘램프가 무색해진 교회로 어느사이 채곡히 물들여진 신앙이였다.
신자가 되도록, 정말 예수님의 보혈로 거듭나서 새 사람을 입고, 새 생명 받은자 답게 살아감은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우리도 온전해지길 너무도 원하시는 까닭에 우리 속에 거주하신 성령님은 지속 우리를 다듬어 주시려, 우리를 자라게 하시려,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 일 하시고 계심을 가르쳐 주는 그런 교회로 이젠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십자가에서 흉물스런 우리의 죄악, 수치, 괴악함을 예수님 홀로 다 치르신 일이 고작 이 땅에서 만사형통하여 조금 멋스럽게, 조금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게 하시려 그리하신 것처럼 가르치는 교회들, 그래서 난 종교적 열심냄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 죄송스런 맘을 조금 덜어내 보려 애썼고, 그 죄송스런 맘 어여삐 보실터이니 어쩌면 이 땅에서 내가 원하는대로 편안한 삶, 좀 더 고급스런 삶을 주실 것이란 기대도 살그머니 가져 보았었다. 자신을 속이며 하나님을 속이며 육신을 위해 육신으로 심으면서도 성령으로 심는다는 착각 속에 오래도록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왔다.
성령을 위해 성령으로 심음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들이 주렁 주렁 아름답게 매어 달리는 그 일을 바라보며 낙심치 않을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열매로 애타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배운다. 우리의 이웃들이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 일이 일어나길 기도하며 걷는 길에 비록 피곤한 일들이 참 많이 생길 수 는 있으나 낙심까지 이르게 할 수는 없는 것은 바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시기에 맘 터억하니 놓고 기도하는 일과 또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해 지길 위해서 자신을 부지런히 살피며 수시로 솟아나는 죄악들, 아직도 얼룩이 진 죄악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부지런히 씻어 주시길 매일 매일 기도하는 자로 살아가야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