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국에 온지 육개월이 되어간다. 처음 이곳에 도착하여 우리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불편함을 호소한 일이 하나 있었다.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때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전혀 없는 미국생활이 습성이 되어진 까닭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사람들의 표정, 시선 등이였다. 미국 사람들은 시선이 마추치면 대부분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런데 버스나 전철에서 마주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도 화가 나 있는 듯 하였다. 아래위로 주르룩 훓어 보는 사람 앞에 서면 왠지 범죄자가 된 듯 몸 둘바를 몰라 절절 매었고 곁눈질로 흘끗 쳐다보는 사람 앞에 서면 공연히 주눅이 들어 시선을 천정에다 올려 보고 바닥에다가 떨궈 보곤 했다. 버스를 올라 타기전 우리가족들은 심호흠을 크게 한번 하며 마치 전쟁을 치르는 군사처럼 오르곤 했다.
이제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버스에서나 전절에서 그 잠간 사이 잠이 들어 있는 나를 발견하곤 웃는다. 그큼이나 편안해졌고 익숙해진 것이다. 휘둘러 보면 사람들의 표정은 똑같은데 내가 변해버린 것이다. 역시 감정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나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무뚜뚝하던지... 얼마되지 않는 자그마한 교회임에도 마치 못올 곳을 온 듯한 느낌, 오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다는 시큰둥한 성도들의 표정을 보며 처음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느껴지는 훈훈한 정은 어찌 표현해야할지, 마치 오래도록 울궈낸 사골국같은, 뚝배기의 된장찌게같은 그런 구수하고 진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훈훈한 정이 발견된다. 미국에선 주일에 성도들이 만나면 서로서로 안아주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대부분 웃음을 잃지않는 너무도 친절함이 몸에 배여있다. 그런 분위기의 교회에서 습관되어졌던 나는 처음 한국교회에서 받은 느낌은 무뚜뚝 그 자체였다. 이제 맘 속의 따뜻함은 상냥한 미소와 말이 아님을 알아간다. 맘 속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 말은 없어도, 표정은 없어도 그 맘에서 솟아나는 것이 따뜻하면 그 온기는 전달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역시 우리 성도님들은 처음 내가 만나고 느꼈던 그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그들이 변함없이 똑같은 분들이다. 다만 내가 저들을 바라보는 감정이 변헀을 뿐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웁다고 생각되어진다. 사귀면 사귈 수록 그 진한 사랑은 전달되어진다. 만나면 만날 수록 전엔 발견치 못했던 구수한 맘이 느껴진다. 이런 이웃들을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하실까? 그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기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하나님과 화목케되길 얼마나 바라실까? 그런 맘으로 우리 직장의 동료들을 바라보니 정말 볼수록 진하게 울궈진 사골국 같고, 뚝배기 된장국 같은 이웃들이 오늘은 왜이리도 꽃보다 아름다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