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워낙 먹성이 좋던 나는 입덧도 별반없이 참 골고루 잘 먹었다.  병원에서도 태아가 아주 건강하다며 축하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에 불이났다.  집앞 상가를 건축하던 중인지라 상가 전기기술자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몇만볼트의 전기가 우리집으로 흘러들어왔다.  천정에서 퍽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번개불처럼 번쩍거리는 불꽃들,  뱀의 혀처럼 널름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불길들을 앞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믿음이 자라나고 있던 때문이였을까?  베란다로 나가서 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마치 내가 집밖으로 나가면 온통 동네가 불바다가 될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릎에서 피가날 정도로 급하게 꿇어 앉아 기도를 하였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던 것인지, 미련스러웠던 것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한참 여기저기를 태우더니 정말 기적처럼 불길이 잠잠해졌다.  이곳 저곳 그스름이며 파편들,  천장은 거의 새까맣게 타버리고 전선들은 녹아내려 매퀘한 냄새며,  뭉게 뭉게 올라오는 연기들을 보며 건축중인 상가로 나가 보았다.  전봇대에 있던 전기기사는 눈의 망막이 다 데어서 병원엘 실려갔다.  불이 났음을 그 때서야 알게된 사람들은 우르르 우리집으로 몰려왔다.  그리곤 나는 기절을 하였다.  임신 사개월의 몸으로...

불룩하던 배는 다 꺼져버리고 양수는 터져버렸다.  병원 산부인과로 실려가 겨우 정신을 챠렸을 때는 이미 태아는 위험지경이였다.  분만실에 눕혀놓고는 언제 사산이 될지 모른다며 많은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그 조치의 하나로 태아를 올려붙이는 링겔 주사를 놓아 주었다.  그 주사를 맞음과 동시에 약물쇼크가 일어서 또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나서 보니 모든 주사바늘이 거뒤진 상태였다.  이젠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는 수 밖엔 없다며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이상하게 믿음이 생겨났다.  인간의 생각을 다 거둬버리고 하나님께서 어찌 일을 하시는가를 보라심인 것 같았다.  마침 금요일이기에 출석하는 교회에 기도부탁을 해 두었다.  그리고 금요철야시간이 되었다.  나름 하나님의 손길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떨리 듯 기대하던 철야기도시간이되자 신기하게 조금씩 조금씩 태아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서서히 배가 아주 조금씩 불러오는 것이였다.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다음날 아침 담당의사는 출근하자 마자 초음파로 태아를 체크해 보았다.  의사도 얼마나 놀라던지..  아이가 많이 기특하다며..어떻게 주사도 맞지 않고 올라갔는지, 기적이다, 기적이야~~하며 많이 놀라와했다.  하나님은 그런 체험을 주시려 또 역사하시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주 오래도록 병원신세를 지며 많은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 과정 과정이야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주변의 나를 아끼는 많은사람들은 유산을 권유했었다.  산모가 놀란 경우는 거의가 기형아로 태어난다며 그렇게 권하였다.  그럴 때 마다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  처음 입원하여 분만실에서의 사건이 그러했다.  약물조차도 거부하던 내 몸이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로 아이가 사산되지 않았던 그 때의 기억이 떨궈지지 않았다.  분명하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입원해 있는 동안 무척이나 많이 체험했다.  수시로 수술실로 오르락 내리락하며 많은 위기를 거쳤지만 결국은 태아를 살려놓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많이 체험을 하였다.  그러기에 주변 사람들의 유산 권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자라나 어느사이 시집갈 나이가 되어버린 큰딸을 볼 때 마다 그 때의 일이 곧잘 생각이 난다.  태어나자 마자 혹시 기형아일까 싶어 남편도 나도 꼼꼼하게 아이를 살피며 조바심 나던 그 때,   또 자라나면서 너무 연약하여 병원신세를 자주질 때 마다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었다.   혹여 태아때의 일의 후유증 아닌가 싶어 겁을 잔뜩 먹으며 키워야했던 시간들...

늘 이랬다가 저랬다가 환경과 형편에 따라 변할 수 밖엔 없는 여리고 미련한 인생임을 본다.  믿음으로만 굳게 일관되어지는,  전혀 요동치지 않는 그런 신앙인이면 참 좋으련만 큰 아이의 태아적 사건만 보아도 난,  병원에서 수 많은 사건을 치르면서 흔들거렸던 시간도 있었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꾿꾿한 믿음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유산의 권유에도 전혀 요동치지 않을 만한 믿음의 체험들도 있었다.   그 모진 병원의 시간 동안 수시로 수술대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며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보낸 시간들이였지만 결국은 이렇게 장성한 자녀로 자라나게 하신 우리 아버지께 온전히 영광을 올려 드릴 수 밖엔 없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돌아보게된다.  참 여리디 여린 것이 인간임을,  상황과 여건에 따라  복잡한 생각이 생길 수도 있는 연약한 인간임을 본다.  그러나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즈막한 골고다 언덕위에 십자가를 세워놓고 죽게하신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음은 하나님의 생명,  영적으로 죽어있는 우리에게 그 놀라운 생명을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밖엔 올려 드릴 것이 없다.  생명이 탄생되는 동안의 여러 우여곡절도 있지만 결국은 이미 이루어 놓으신 부활의 승리로 확정되어진 사실이기에 아무리 연약하고 여려도,  흔들릴 수 밖엔 없는 상황들이 연속된다고 해도 생명을 주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안에서 택하신 자녀들에겐 생명을 부어주심을 믿고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릴 수 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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