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에게서 멜이 한통 왔다. 여자들끼리 일박이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 온 것을 축하해 주고 싶어 계획을 세운 것이라며 직장에 미리 양해를 구하라는 내용의 멜이였다.

남편과 함께하지 않은 여행은 처음인지라 생경스럽긴 하지만 나름 한국의 아기자기한 산천초목이 너무 좋기에 선뜻 그러마고 약속을 하였다. 미국의 장엄한 풍경과는 사뭇 다른 한국만의 멋이 있는 우리나라의 풍경이 참 좋다. 나즈막한 산골짜기를 끼고 도는 졸졸거리는 여울물이 좋고, 아름드리로 울창하진 않지만 드문 드문 심기워진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산이 참 좋다.

선뜻 어렵고 불편한 시댁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 작정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간 그들을 대한 나의 태도에 죄송스럼이 너무 많기에 이 참에 그 미안스런 맘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나는 명절만 돌아오면 병이 났다. 명절 연휴동안 우리집은 그 많은 시댁식구들로 북적거렸다.  손님을 치르려면 몇일동안 꼼꼼하게 식단을 짜서 장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명절 음식과 더불어 연휴기간 동안 먹을 색다른 음식을 끼니대로 겹치지 않게 짜서 준비하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연휴기간 동안 주일이라도 끼여 있으면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또 연출되어야만 했다.  주일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에서 봉사하는 즐거움이 나름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였는데, 그 하루를 시댁식구들 때문에 눈치보며 잠시 예배만 드리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와서 또 손님 접대에 매달려야하는 것이 너무도 속이 상헀었다.

명절 증후군이란 며느리들만의 특유의 병을 매번 명절마다 앓아야했던 내가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만세를 외칠 수 밖엔 없었다.  명절로 부터의 해방,  시댁식구들로 부터의 해방을 속으로 외치며 명절만 돌아오면 다시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며 한 해, 두 해를 보냈었다.  어느날 부터인지 아이들이 한국의 명절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동그랑 땡이며 각종 전을 부칠 때 마다 곁에 앉아 뒤집어 주었던 딸들이였다.  송편을 빚을 때면 엉터리 모양으로 만들어 놓곤 자기가 만든 것이 제일 이쁘다며 서로 토닥거리며 곁에 앉아 싸우던 아이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어느사이 나도 추석만 돌아오면 솔잎 솔솔 뿌려 송편을 쪄내던 일이며,  너무 무거워 절절 매며 시장을 다녀오던 발걸음이 그리워 지더니 몇날이고 모여앉아 복새통을 이루던 가족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봉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일엔 종일 심술이 나 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길 얼마나 기도했던가.

종교적이 색채와 냄새를 풍기면서 전도해야하는 줄만 알았었다.  내 모습이 그리 비춰야만 참 신앙인인 줄만 알았었다.  시댁식구들과 서먹한 관계가 되더라도 주일엔 하루종일 교회에서 봉사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 생각에 오래도록 젖어 살며 저들을 대했던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제가 미국에 가서 철이 들었나 봅니다.  가족이 많이 그리웠고 특히 명절연휴가 많이 그리웠답니다"라고 졸졸 흐르는 냇가에 앉아 파란 하늘 올려다 보며 고백하고 싶다.

~~                                        ~~~                                          ~~~               ~~


토요일도 일을 하는 직장이기에 양해를 구하고 시누이 세명과 함께 산으로 떠났다.  등산복이 없는 것을 아는 직장동료들은 등산복에다가 양말 손수건 스카프까지 챙겨 빌려주었다.  그리고 참 좋은 시누이들을 뒀다며 모두들 부러워하였다.

청풍호수를 끼고 주욱 둘러진 산들,  금수산, 비봉산, 이름모를 산들을 이틀동안 헤집고 다녔다.  다리는 온통 얼얼하니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이 감각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한벽루에서 바라보는 청풍호수는 어느덧 황진이가 되어 시 한수 읊어보고픈 맘이 되어지고,  금수산 자락 자락 마다 펼쳐지는 다양한 아름다운 경관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들이 버섯모양의 집에서 뛰어다니며 까르르 까르르 웃어대는 것 같은 환상마져 보였다.  비봉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연초록빛을 머금은 거울같은 청풍호와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산들을 바라보며 경탄에 환호성에 꺼이 꺼이 울고싶은 심경이였다.

깊은 산속의 약초마을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뒷뜰에 모닥불을 피워두고 동그랗게 앉아 "저 별은 나의 별~~"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조용 조용 부르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았다.  그리고 십여년동안 모르고 지냈던 시누이들의 아픔들, 고통들도 들을 수 있었다.  기도부탁을 하는 그들이 정말 고마왔다.

주일 아침엔 저들이 더 걱정스러워했다.  교회를 가지 못해서 어찌하냐며 안타까와했다.  오래도록 종교적인 냄새를 짙게 풍겨왔던 나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하나님도 오늘은 하나님이 지어놓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맘껏 흠미하며 형제들과 또 오손도손 사랑을 나누는 것을 무척 기뻐하실 것이라고 대답했더니 좀 안심이 되는 듯한 표정이였다.

이제 우리형제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그 날을 그려본다.  어디를 가든 삼백육십오일을 하나님 품 속에 있음을 늘 느끼며 하나님과 화목하게된 복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임을 뼈저리게 감사하며 찬미의 제사를 드릴 날을 생각하니 맘이 풍선만큼이나 부풀어 오르는 듯 하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이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닥불 피워놓고 동그랗게 둘러 앉아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노래할 수 있게되는 그 날을 그리며...



정순태

2012.05.07 09:46:53
*.229.102.176

아니,
관할권자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남의 동네를 휘젓고 다녀도 되나요?!
청풍호수는 제 안방입니다!
금수산은 단골 나무 터(나무하러 다니던 곳, 송이버섯 많이 났음, 지금도)였고,
비봉산은 토끼몰이 장(초중학교 시절 수시로 토끼 잡으러 갔던 곳)이었습니다.
망월산성(현재 문화재 단지)에 옮겨진 한벽루 등은 초등학교 교실이었고요.
호수 밑바닥(수심 약 70-100미터 정도)에는 모든 추억들이 잠겨 있답니다.
당연히 제가 살던 촌집도...

닉네임 ‘맑은바람’의 한자가 바로 ‘청풍’(淸風)이지요.

자매님 말씀대로 참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가족 간의 아름답고 의미있는 교제의 시간 가지신 것을 축하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태어나서 초중고까지 살았으니 관할권을 주장할만하지 않나요?
늦게라도 허락 구하심이 옳을 듯합니다. ^0^ 

사라의 웃음

2012.05.07 22:49:03
*.109.85.156

ㅋㅋ 연대장님의 안방을 정말이지 허락도 없이 마구 헤집고 다녔군요.
둘러보며 고향이 사라져버리신 분들이 안스럽던데.. 울 연대장님도
고향을 잃으셨군요. ㅠㅠ
정말 아름답더라구요. 산과 들이 눈을 뜨는 새벽녁의 그 신선함도 어찌
말고 다 설명이 될런지요.
늦었지만 허락 구합니다. 글구 안방 휘젓고 다닌 것 죄송합니다. ^^

mskong

2012.05.08 11:19:46
*.226.142.23

안방마님께서 잘 다녀오신것 같네요... 부럼...부럼...
저도 방금 청풍호수를 인터넷으로 다녀 왔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곳 입니다.
이전에 회사에서 행사로 한번 갔던적도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서울서만 자란 저는 그런곳에서 어릴적을 보낸분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언젠가 한번 가기전에 반드시 연대장님께 허락을 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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