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나 날카롭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지금도 선악과를 따먹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과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소위 죄라는 것을 전혀 짓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에 다른 죄는 다 지어도 죽음에 이르는 벌을 내리지 않겠지만 선악과를 따 먹는 죄만큼은 죽음에 이르는 벌을 내리겠다.
하나님의 그 용서를 가벼이 여기고 아담과 하와가 자꾸만 죄를 짓다가
결국 그 다른 죄들이 싸여 선악과를 따 먹는 죄에 까지 이르지 않았나.
왜냐하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여호와께서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다는 말씀에서 이미 간교한 여러 들짐승들이 있었다.
이미 죄가 에덴동산에 들어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뱀을 비롯한 간교한 들짐승들이 선악과의 죄를 전염시키듯
죄를 인간에게 이미 전염시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죄와는 상극이므로 범죄한 자와는 절대 같이 있을 수 없지만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도 하나님과 대면한 것을 보면 이미 예외가 존재한 것같이 보여 집니다.
둘째 정녕 죽으리라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약600년 후에 약속을 지켰듯이 선악과를 따 먹은 오랜 후에 그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벌거벗고도 아무 제약없이 살 수 있었지만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는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가죽옷을 입어야 살아갈 수 있는 약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가죽옷이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더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도 내포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진솔한 말씀의 나눔이 있어 더 반갑구요~
아담할아버진 왜 선악과 따드셔서는~~하며 원망 많이 했더랬습니다. 제가 하와여도 먹었을 터였고 지금도 먹고 있음이 인정되기까지 참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근데 여전히 선악과 따먹고 있는 우리임을 저도 고백해 봅니다.
하나님 품을 떠난 순간 아담과 하와는 죽음보다 더 죽음스런 공포를 경험했을 것 같습니다.
육체적 죽음은 나중에 왔지만, 당장의 두려움이 죽음임을 맘 속 깊이 고백되어졌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영적으로 죽은자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찿아오셔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보며 또 얼마나 죄송스러웠을 그들이였겠는지요.
저 또한 자주 선악과를 따먹고 살아갑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으면 괜찮은 율법이 오히려 더 편했을 터인데....맘속의 교만, 겸손을 가장한 여러 가증스럼, 괜찮아 보이고픈 욕심....참 여러죄악들이 많은 연약한 저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렇게나 연약한 저를 위해 십자가 지심의 사랑(그 사랑의 모양을 아주 조금씩밖엔 깨달아 가지 못하지만)그 사랑 때문에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게 되는 귀한 말씀들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