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뺨까지 대야 하나요?(간디와 예수의 비교)

 

[질문]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39)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는 뜻은 폭력에 놓인 상황에도 저항하지도 말고 경찰에도 신고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답변]

 

당연히 그런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뜻은 폭력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노아홍수 심판의 원인이 바로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6:13) 온 땅에 가득한 ‘포악’(히브리어 ‘하마쓰’)은 영어로 violence로 번역되었듯이 잔인한 폭력을 뜻합니다.

 

이렇게 타락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라멕에 이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4:23,24) 라멕의 포악은 자신의 고백대로 최초의 살인자, 그것도 친형제를 죽인 가인에게서 기인합니다.

 

놀랍게도 인류최초의 폭행이 친형제 살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또 그 원인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그분의 뜻을 거역한 탓입니다. 살인은 인류 최초의 폭행이자 폭력의 종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타인과의 인간관계에서 제일 먼저 지켜야 할 계명으로 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부모공경이 앞서긴 했지만 부모는 엄격히 말해 타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의 뜻

 

예수님의 의도도 신자가 아무 잘못 없이 타인에게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는 폭력에 대해서 무조건 끝까지 참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뜻을 정확히 알려면 본 구절이 속한 문맥에서 뜻과 그렇게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를 반드시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 문맥은 짧은 ‘본문’(text)과 앞뒤의 큰 ‘문맥’(context)으로 나뉩니다.

 

산상수훈(마5-7장)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시면 주님이 “또 ~~ 너희가 들었으나” 그보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권면하는 형식을 반복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말한 것은 제자들과 유대대중이 지금까지 율법이나 장로의 유전으로 듣고 배워온 계명을 말합니다. 그 후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 계명에 대해 예수님이 새롭게 해석하여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선지자(선지서)를-구약성경 전체를 말함-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전제한 후에(마5:17-20) 그런 형식의 설명을 이어간 것입니다.

 

본 구절이 속한 본문은 38에서 42절까지인데 첫 구절은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8절)라고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새롭게 풀어서 정확하게 가르치려는 내용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규정(출21;24, 레24:20)이 됩니다. 이어지는 39-42절의 의미는 전부 다 그 율법과 연결되는 맥락에서 살펴야 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도 폭력을 조장하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상호간의 거래나 인간관계에서 어떤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권력과 신분이 높으면 피해당한 액수보다 몇 배의 보상을 힘으로 강요하는 것을 막으려는 뜻으로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라고 불립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피해본 만큼만 정확히 청구하여 보상받으라는 율법에 규정된 이스라엘 사회의 소송법입니다. 그러니까 40절에는 “송사하여”라는 부연설명이 나오고. 또 그래서 법정소송이 진행되고 있거나 율법을 지키는 과정이라는 상황을 감안하여 본문 구절들을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 뺨을 맞는 것은 아무 잘못 없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에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진정성을 갖고 백배 사죄하며 용서를 빌고 또 피해 보상도 정당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도 피해자인 상대가 원래 성질이 악해서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보상 사죄하라는 것입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라는 표현을 피해 받은 만큼 똑같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지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선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뺨을 맞는 것도 상대에 입힌 피해를 실감나게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해도 폭력이 뺨 때리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설령 문자적으로 뺨을 맞는 경우라 해도 동해보복법에 대한 설명이므로 지금 뺨을 맞은 자가 먼저 상대에게 뺨을 때린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도 그래서 똑같이 뺨을 때림으로 되갚았는데 분에 안 풀려 한 대 더 때리더라도 참고 맞아주라는 것입니다. 잘잘못의 원인이 어디에 있던 먼저 때렸다면 원인제공을 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기 잘못을 피해자가 용납할 때까지 완전하게 보상 사죄하라는 것이지 폭력에 무조건 저항하지 말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큰 문맥에서의 뜻

 

이 구절이 포함된 전후의 전체 문맥은 산상수훈인데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사회에 통횽하는 윤리를 심오하게 풀어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첫 시작을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차지한다고 전제를 한 후에(마5:3), 율법(하나님의 법)의 규정들을 이처럼 정확히 풀어가며 말씀을 이어나갔습니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밝히고 천국 시민이 된 신자가 살아가야 할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래서 산상수훈의 끝(마 7:7-27)도 천국에 들어가는 길에 대한 가르침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산상수훈 전체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해야 할 천국시민의 규범이라는 차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구절이 포함된 본문의 39-42절 모두가 의미하는 바도 법에서 정한 것 이상을 이웃에게 베풀라는 뜻입니다. 송사해서 속옷만 줘야한다고 판결을 받았더라도 상대가 가난하다면 법의 판결(당시로선 율법 규정)과 상관없이, 겉옷까지 주어야 할 의무가 전혀 없고 그런다고 윤리적으로 악한 것도 아니지만, 자기 가진 소유를 나눠서라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40절)

 

어려운 일이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운반할 때에는 오리까지 동행해주면 되는데도 십리까지 가라는 것입니다.(꼭 두 배가 아니라 도와줄 수 있는 최대한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 주고 꾸고자 하는 자 거절하지 말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세상 윤리로는 안 도와줘도 죄가 아닌 일인데도 외면하지 말며, 또 법으로 정해진 한도 이상으로 보상하거나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형제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알고 끝까지 가진 것 다 동원해서라도 도와주라는 것이 본문(38-42절)의 뜻입니다.

 

이런 천국시민의 규범이라는 관점에서 질문하신 구절 39절을 다시 살펴봅시다.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상대의 오른 뺨을 때리려면 왼손으로 때려야 합니다. 상대의 뺨을 때릴 정도로 분노에 찬 사람이 왼손으로 때릴 리는 없습니다.

 

오른뺨을 맞았다는 것은 오른 손으로 때리되 손등으로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친 것입니다. 상대에게 심한 모욕을 주는 행위입니다. 이미 상대에게 응분의 보상을 했는데도 상대가 자신을 모욕을 주더라도, 또 더 심한 비방 멸시 박해를 하더라도 끝까지 참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쪽에서 뭔가 잘못했거나 원인제공을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런 잘못이나 원인 제공이 전혀 없이 즉, 38절의 전제를 빼고 39절만 해석한다고 하면 폭력에 대한 무저항주의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질문하신 것처럼 폭력에 무조건 당해야 한다고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는 모든 나라에 법체계와 질서가 잡혀있기에 폭행은 당한 사람의 용서 사죄와 상관없이, 심지어 원인제공이 어디에 있던, 무조건 형사범으로 당국의 처벌을 받습니다.

 

쉽게 말해 신자가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 적용하든 상관없이 주위 사람이 경찰에 당장 신고해서 폭행자에게 벌을 줍니다. 어차지 혼자 있을 때는 약한 자가 끝까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그대로 두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으니 당연히 고발해서 법의 처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악한 이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그런 사소한 신체적인 폭력에 적용될 차원이 아닙니다.

 

간디와 예수의 무저항주의

 

성경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전쟁을 필두로, 구약시대의 가나안정복성전과 정당방어차원의 전쟁을 빼고는, 모든 폭력은 악한 것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고 또 실제로 십자가 죽음에서 당신의 몸으로 실현해 보인 비폭력무저항주의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폭력을 같은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고 사랑으로 이기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예수님만의 특별한 뜻이 따로 있는데 정확히 알려면 간디의 그것과 비교해 봐야 합니다. 간디도 인도 독립운동 하면서 영국의 군대나 경찰에 일절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선한 일로 모든 이의 칭송을 받아 마땅한 귀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는 찬양일색으로만 봐선 안 되는 냉정한 현실적 요소들도 있습니다.

 

우선 인도가 저항할수록 인도국민의 희생만 늘어납니다. 당시 세계 최고 강대국 영국과 전쟁을 벌일 처지는 도무지 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최고로 현명한 저항수단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나아가 인도 독립이라는 분명한 목표 즉, 비폭력주의로 취득할 수 있는 인도 쪽 입장에서 아주 큰 현실적 유익이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오해는 마십시오. 인도독립과 간디의 무저항주의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둘 다 하나님 뜻 안에서도 아주 선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저항은 이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는 뜻일 뿐입니다.

 

주님의 무저항은 당신께 돌아오는 현실적 유익이 전혀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무저항 순교하여 이 땅에선 아무 유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실현하고 가르치는 무저항은 한 알의 밀알로서 땅에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현실적으로도 얼마든지 상대를 제압할 능력이 있는데도 그 수단 즉, 일종의 폭력적 방안을 아예 채택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사악한 자들마저 당신의 보혈로 용서하고 하나님 사랑 앞에 항복하도록, 요컨대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끝까지 폭력에 일체 대항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 구절의 본문에서의 뜻은 물론 율법을 주신 의미도 그러합니다. 상대에게 왼뺨까지 대는 것은 오직 상대로 하여금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율법의 정신대로 살도록 하려는 목적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윤리나 법에 정해진 이상으로 보상하고 용서하고 사죄하고 베풀라는 것이 본 구절의 뜻입니다. 신자가 그런 손해를 기꺼이 감수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이 죽더라도 상대를 살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자 기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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