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에 불일치가 많습니다.
[질문]
신약성경 사복음서중에 일치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정과 십자가 처형과 부활 후 복음서들마다 다른 증언이 있습니다. 또 복음서와 고린도전서의 예수님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증언으로 생각되어지는 15장의 신조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구약에도 수많은 구절들에 상호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질문은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사실과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요?
[답변]
이미 한 번 다룬 주제인지라(아래 링크 참조) 간단하게 답변 드리겠습니다. 성경무오설을 이해하기 위해선 성경의 저작과정부터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약 40여명의 인간 저자들이 1500년 이상의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번도 서로 만나 편집회의를 하지 않고서 각 저자가 각자의 책을 개별적으로 저작했습니다.
물론 인간 저자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저작하긴 했습니다만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육성이 직통계시로 들리고 그것을 한 단어씩 받아 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계시를 주시되 인간 저자가 가진 고유의 경험과 사상과 믿음은 그대로 두고 그것들이 저작에 활용되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해 저자 고유의 문체나 강조하는 내용과 진리를 서술하는 방식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인간 저자들이 모여 편집회의를 하면서 주제와 저술 방향 등을 정했더라면 상호 검토 보완 수정을 거침으로써 불일치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기계적으로 받아쓰기를 했다면 마찬가지로 오류가 생길 리가 없습니다. 고대에 기록된 성경에서 단 하나의 오류나 불일치가 없다면 오히려 인간의 저작 아니 조작이지 하나님의 계시일 수 없습니다. 자기들 경전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어떤 이단종교가 있지만 더 신빙성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성경은 저자가 저작했던 원본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쓰인 원본은 다 낡아서 없어졌습니다. 고대의 모든 책들은 전부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筆寫本)입니다. 필사를 아무리 정교하게 하려 해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수 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만든 이후에 비로소 그런 오류들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인쇄하려는 성경원본이 이미 최초원본이 아닌 오류를 가진 필사본이었기에 현대인들이 보는 성경에도 그와 동일한 불일치와 오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불일치와 오류의 성격을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신구약성경을 필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 오류가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는 인식이 철저했습니다. 정말로 경건하게 한 자씩 옮겨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피곤하여 주의력이 흐려지거나 졸릴 수도 있었기에 철자, 토씨, 숫자, 단어, 같은 경미한 오류들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린스턴에서 가르쳤던 신약학자 Bruce Metzger에 의하면 신약성경 약 20,000 구절 중에 겨우 40개만 그런 오류를 지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절들이 본문의 주제는 물론 뜻을 바꿀만한 오류가, 특별히 영적 신학적 진리에는 하등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아닙니다. (*)
사복음서의 경우에 서로 다른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자들의 특성이 살아있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같은 강화를 들었어도 각 저자가 강조하려는 초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체험에 의존해 기록하기에 구체적인 부분에선 조금씩 기억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드는 비유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약 30년 전에 어떤 마을에 큰 홍수가 났고 그 홍수를 목격한 노인이 네 명만 생존해 있다고 칩시다. 두 노인은 다섯 명이, 다른 두 노인은 열 명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두 배의 차이가 나지만 이 둘이 전혀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자는 시신이 발견된 경우만 기억하고 있었고 후자는 실종된 자도 포함해서 말했다면 말입니다. 어쨌든 큰 홍수가 그 때에 마을을 덮쳤고 마을 인구에 비하면 엄청난 인명 손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자 진리입니다. ,
네 복음서들의 불일치도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네 명의 저자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최하 20년 후에 각자 따로 저작했습니다. 주지해야 할 사항은 예수님이 비슷한 가르침을 여러 곳에서 다른 청중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적들도 여러 사람들에게 비슷한 모습으로 베풀었습니다. 구체적인 측면에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에 관한 기록이 네 복음서가 완전히 일치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사후에 입을 맞추었다는 것이며 그럼 조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복음서의 이런 불일치들을 비교하여 연구하는데 아주 좋은 책이 있는데 제 홈페이지에 이미 소개했습니다.(아래 링크 참조) 그런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네 복음서의 불일치를 따져보면 내용상의 오류는 전혀 없으며 얼마든지 합리적인 변증이 가능합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6-8)
예수님 부활을 일시에 오백 명이나 볼 수 없었다고 의심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도 120명밖에 모이지 않았는데 부활체로 계셨던 그 이전에 그런 대규모의 목격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은 유월절 절기 중에 일어났고 예루살렘에는 절기를 지키러 온 수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많은 이에게 일시에 보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라는 진술이 그 기록의 사실성을 확증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서신이 기록될 때에 오백 명 목격 사건기록은 거짓으로 판명되어 서신 자체가 폐기되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그 사실을 침묵하고 있는 것은 저자가 직접 그 현장에 없었거나 자신이 강조하려는 주제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네 복음서를 비교 연구해보면 각 저자가 강조하는 주제에 따라 내용이 선별되어 기록되어 있고 진술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러나 전체 내용과 주제와 영적 원리에서 불일치는 전혀 없습니다.
10/29/2018
http://whyjesusonly.com/8049 (성경의 오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요?)
http://whyjesusonly.com/24918 (추천: 신자, 특별히 목회자가 꼭 구입해야 할 책)
(*): “The Bible Embracing God’s Truth”(Max Anders, Thomas Nelson, Inc. 1995, page 26)
상기의 글이 자칫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복음서의 불일치의 이유와 배경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쓰다보니 축자영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축자영감을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성령이 직통계시로 문장 전체를 다 하나하나 읽어주고 즉,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받아쓰기 하듯이 영감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 전부가 그렇게 되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쉬운 예로 역사적 자료, 불신자들의 행위 말, 객관적 사건의 기록, 전승된 자료 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것들이 보존 되고 저자들이 수집 편집 기록 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간섭 역사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성경독자들에게 반드시 밝히고자 하는 절대적인 영적 진리는 저자에게 가장 적합한 단어 문구 표현법 구조는 물론 전체 문장까지도, 저자 고유의 방식은 살아 있게 하되, 성령이 다 영감해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당연히 저도 축자적 영감설을 지지합니다. (마치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대로 두고도 그것과 전혀 상충되지 않게 택한 자의 구원을 이루듯이 말입니다.) 샬롬!
목사님께서는 축자영감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신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