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뿐인 구원관
- 신자가 자기 믿음이 바른지 판단하는 방안은 쉽다. 예수 모르는 이웃의 형통이 괜히 부러워지는지 오히려 불쌍히 여겨지는지 보면 된다. 현재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지 판단하는 기준도 쉬운데 교회 활동보다 이웃 사랑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 (10/9/2023)
- 세상과 사람이 두려우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이 두려우면 세상과 사람이 멀어진다. 세상과 사람과 떨어져 살 수 없기에 이 간단한 믿음의 원리를 지키기 힘들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만 따라서 거룩하게 승리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붙들어야 한다. (10/6/2023)
- 신자가 이왕이면 하나님도 잘 믿고 세상에서도 형통하려는 시도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을 따라가야 하는 여정이 신자의 삶이다. 예수님이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따르면서 세상에서도 형통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않았는가? (10/5/2023)
-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그분이 창조한 자연을 오염시키거나 시간을 허비하면, 성령님을 사랑한다면서 기도에 게으르거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거나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그 모든 사랑은 사실 거짓이다. (10/4/2023)
- 신자의 믿음이 순전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고난이 닥칠 때만 기도하지 않고 평소에도 쉬지 말고 기도하는지 보면 된다. 더 좋은 기준은 부족함 없이 형통할 때만 감사하지 않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 진심으로 감사하는지 보면 된다. (10/3/2023)
-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하는 자는 많으나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믿는 복을 주지 않는다고 거부 대적한다.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이 면제되었고 도무지 가질 수 없는 영생까지 받았음을 믿기에 평생토록 감사한다. (10/2/2023)
- 마음이 좁으면 물질 욕심이 크고 마음이 넓으면 물질 욕심이 적다. 신자가 자기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많이 채울수록 자기 형통에 대한 욕심은 점점 줄고 이웃 사랑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진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갈수록 죄인을 향한 자비도 계속 늘어난다. (9/27/2023)
- 자기 삶이 못마땅해 불평하는 것만큼 불행이 없고, 풍요하지 않아도 자족하는 것만큼 행복이 없다. 신자는 더 나아가 극심한 고난이 닥쳐 출구가 전혀 안 보일 때도 인생 전체를 거룩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선하심을 알기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9/26/2023)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죗값을 갚지 않았다면 영원한 심판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은혜를 믿는 자는 죄를 이길 권세를 얻고, 믿지 않는 자는 평생 죄의 노예가 된다. 신자에겐 사후의 심판 걱정 없이 평생 죄와 싸워서 이기는 일만 남았다. (9/25/2023)
- 종교에는 두 가지 구원관 뿐이다. 인간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으니 평생 노력하여 구원을 쟁취하라는 것과, 최고 초급도덕도 평생 지킬 수 없으니 하나님의 조건 없는 용서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전자를 따르던 자들이 죽기 직전 후자로 바꾸나 이미 늦었다. (9/22/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