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먹은 체증

조회 수 1336 추천 수 125 2006.03.18 21:01:46
십년 먹은 체증



오늘은 뒷마당의 사과 나무의 가지 치기를 했습니다. 열매가 잘 맺도록 가지를 칠 정도의 실력은 못됩니다. 나무 패티오 위에 처진 가지에서 사과 열매나 낙엽이 떨어져 쌓여 지저분해졌고 심지어 패티오가 썩을 수 있기 때문에 늘어진 가지만 쳐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것이 벌써 5년째 접어드는데 그 동안 마음만 먹다가 오늘 드디어 해치운 것입니다. 제 힘으로는 부대껴 한국서 군대 제대하고 영어 연수를 온 조카들 둘의 힘을 빌어서 했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그네 세트 부서진 것을 잘라내어 버렸습니다. 이것도 5년 동안 벼르던 일이었습니다.

깨끗이 정리하고 나니 흔히 하는 말로 십년 먹은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았습니다. 젊은 주부 혼자서 산 전 주인도 틀림 없이 손을 보지 못했을 것이니 그야말로 십년도 더 묵은 일거리였습니다.  뒷마당 뿐 아니라 제 속마음까지 깨끗해진 것 같았습니다.

뒷마당이 깨끗해지니까 죄악에 차 있던 더러운 내 마음도 영향을 받아 깨끗해졌다(clean)는 뜻은 아닙니다. 방안에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물건들을 버릴 것은 버리면서 차곡차곡 정리(clear)한 후처럼 마음에 항상 짐으로 남아 있던 것을 싹 해치우고 난 후의 시원함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읽은 책의 문구 가운데 마침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우선적인 것을 먼저 하고 부차적인 것을 나중에 하라. 부차적인 것을 먼저 하면 당신은 우선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둘 다 잃어 버릴 것이다.”(C. S. 루이스).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인 것은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을 포함해 그 외의 것은 모두가 부차적인 것입니다. 신자는 평생을 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의 온전하심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지금껏 경험했듯이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온갖  현실적 문제들이 그분 앞으로 나가는 길을 막고 우리의 관심을 자꾸 다른 곳으로 유도합니다. 그 분께로 나아가는 싸움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말씀 본다고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장 눈 앞에 있는 세상적인 것들부터 치워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체증들을 없애 나가다 보면 그분을 향한 대로가 활짝 열릴 것입니다.

불신자는 루이스의 말대로 우선적인 것 부차적인 것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칩니다. 신자는 우선적인 것을 잡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부차적인 것을 그대로 둔 채 우선적인 것을 잡으려 드니까 부차적인 것에 휘말려 우선적인 것을 못 잡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자꾸만 도덕적 성결(Clean)로 이루려 듭니다. 그것보다는 내 속에 정리 안 된 세상에 대한 잡다한 미련과 관심부터 제거(Clear)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에게 부차적인 것이 되며 하나님에 대해 우선적인 것은 세상에 대해 부차적인 것이 됩니다. 우리 속에 혹시라도 이 순서를 뒤바꾸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신자의 체증입니다. 그 뒤바뀐 순서가 오랫동안 고착된 것부터, 그 사안이 크든 작든 불문하고 무조건 없애지 않으면 아무리 종교적 도덕적 생활에 열심을 내고 좋은 결과를 맺어도 여전히 우리 속에는 십년 먹은 체증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의 의만 구하고 싶습니까? 직접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섣불리 흉내내다 괜히 위선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오히려 세상을 닮은 것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없애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그분과 닮아져 있고 또 그분의 의도 자연스레 드러날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3/18/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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