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예다 가족분들 반갑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가끔씩 들어와서 홈피를 보면 여전히 질문자님들의 질문에 상세하고 꼼꼼히 질문자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답변 해 주시는 친절한 목사님의 성품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제가 2013년도에 저의 묵상글을 여기에 올렸는데요.
제 묵상의 한계를 느끼고 묵상 글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 동안 틈틈히 묵상한 글을 다시 올리려 합니다.
이번 묵상 글도 다시 1년 정도하면 또 마무리 되겠지요.
의심과 의문은 다르다
(부제:생각없이 책을 읽는 것은 씹지 않고 삼기는 것과 같다)
도서관 계단에 써 있는 문구
순종을 강조하기 위한 대표적인 말씀이 예수님께서 의심많은 도마를 꾸짖은 얘기이다
예수님께서도 의심많은 도마를 꾸짓으며 보지않고 믿는 무조건 믿는 믿음이 좋은 믿음이라고 했으니 감히 성경 말씀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을해도 덮어 놓고 내가 예수님의 손과 발을 직접 만져보기전에는 절대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도마의 부정적인 믿음 상태를 꾸짓은 것이다
부정하기 위해 의심하는 것은 분명히 믿음의 적이다.
그러나 더 잘 알기 위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의심을 가지는 것과 180도 다르다
부정을 위한 의심은 믿음의 적이지만 더 잘 알기 위한 의문은 신앙생활에 꼭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질문을 할 때는 잘 설명 해 주었다
의문은 곧 의심이라는 생각 때문에, 교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감히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의문을 가지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의문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의문없이 무조건 읽다보니 무뇌같은 행동을 하게된다
분석력이 좋고 이해력이 좋은 교수님들과 지식인조차도 성경을 대할 때 의문을 품고 읽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 할 수 없다
그러니 학문을 할 때의 접근방법과 성경을 읽을 때의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믿음 생활에 이것만큼 왜곡이 많이 된 것이 없다
의문을 하지 않으니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없고, 믿음이 자라나지 않는다
이제는 의심과 의문을 혼돈하지 말고 반드시 의문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고민을 하게 되고 고민을 하다 보면 해답이 나온다
이것이 진정한 묵상이다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자연원리에서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고민을 가지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해답을 찾는가
또한 법학자들은 법조문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꼼꼼히 읽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법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아는만큼 질문을 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신앙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한다
그런데 의문은 곧 불신앙이고, 교만이라는 여러 메세지들을 들어 왔기에 할 수만 있으면 의문을 지우며 믿음생활을 하려고 애쓴다
지금 현재 발행된 큐티책은 예외없이 신앙인의 생활의 적용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잇다.
순종, 희생, 헌신, 겸손 등 이런 것에는 아주 오랫동안 큐티를 하여 왔기 때문에 아주 익숙하다.
이것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할 존재들이다
다만 얘기하고픈 것은 순종에 대해서는 너무나 충분히 얘기해왔다는 것이다
소위말해 두날개 믿음이라고 보았을 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은 모두 목사님에게 맡기고(일부 목사님은 신학자에게 맡기고)
우리는 적용 중심의 큐티를 이제까지 해 왔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았다면 좀더 다른 차원의 순종도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진 묵상을 하여 왔기에 반대급부적으로 얘기를 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반드시 의문을 가지고 성경을 묵상하자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동적인 교육에 익숙 해 있다보니 스스로 말씀을 깨우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큐티조차 수동적으로 묵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큐티책에서 한정된, 제시하는 주제외에는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문을 품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방법은 익숙치가 않아 처음에 시작할 때 힘들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읽고 묵상하는 방법이 익숙할 수록 이 방법으로 묵상하는 것에 푹 빠져 들 것이다.
난 이 방법으로 묵상할 때에 지혜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너무나 자주 느낀다.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깨달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문을 가진다고, 고민한다고 과연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의심하지 말자
의문은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신도들도 얼마든지 의문을 통해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가 배워온 보수적교리 기반하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가지는 의문에 대해서 고민을 통해, 묵상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믿음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정말 의문이 풀리지 안을 때는 목사님들에게 물어 보자
그러나 의문 자체를 하지 않거나
의문하는 것마다 무조건 목사님을 찾아 물어보는 것도 올바른 묵상법은 아니다
10년, 15년, 20년이라도 한 번 가진 의문에 대해서는 이해가 될 때까지 결코 의문을 내려놓지 말자
사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가끔 의문이 들기는 하는데 우리는 목사님들처럼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니고,
다양한 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아 한 번 가진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감히 더 깊이 생각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한 번만 더 생각 해 보면 이해할 수 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렇더라도 분명 성경은 함부로 해석을 하면 안된다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신앙 안에서도 성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교단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평신도가 의문을 품으면 얼마나 품겠으며, 또 빗나간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평신도들은 그것을 스스로 삼갈 줄 안다.
오히려 건강한 의문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또 그것에 대해 답도 주지 못하고, 또 그것을 터부시하는 신앙적 관습 때문에 은밀하게 궁금한 것을 해결하려다보니 더욱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 해 볼 수 있다.
오히려 교회가 성경에 건강한 의문을 가지게 하고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준다면 교회는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 아니할까 생각 해 보았다.
이렇게 반드시 의문을 가지고 성경을 읽자고 하는 것을 다양한 관점으로 긴 글을 썻다.
이것이 반드시 신앙의 깊은 길로 인도 해 줄 것을 확신한다.
배승형님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건강하게 영적으로도 충만히 계심을 보니 반갑고 또 귀한 의견 나눠주시니 감사합니다. 성경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일차적으로 그분이 누구인지를 깊이 알아나가야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선 영적으로 무지한 인간이 온전히 쉽게 명확하게 알 수 없고, 또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 당신에 대해서 계시해 놓았기에 의문이 안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믿으라거나, 단순하게 믿고 신자로서 도덕적 종교적 의무만 다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성경을 깎아내리는 잘못입니다. 성경은 온전한 정신으로 읽으면 의심나는 것 투성이입니다. 제가 그래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모든 신자는 만인제사장직을 넘어서 만인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샬롬!
저도 에전에는 전자였는데, 믿고 순종하고, 의문은 덮고(나의 교만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지금은 목사님의 이 싸이트를 통해서 궁금증을 풀어가고 있고, 감사하며 좀더 하나님께 솔직하게 그리고 힘들더라도 내 맘을 숨기지 않고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경도 하나님께 나에 대한 잘못이나 회개조차도 항상 솔직하지 못했던것을 인정하며, 주님을 좀더 가까이서 만나고, 가까이서 대하는 것 같아서 진심 행복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지금까지 공의와 사랑만이 있고, 공의에 대해선 주님이시니까 라는 것으로 덮었던 나의 마음을 조금 더 주님의 시선에서 주님의 가지신 마음에서 볼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글을 써주시고, 공감해서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