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3:4-7) 끝까지 참는 사랑의 비결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9)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1-7)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

 

예수님은 이웃을 하나님처럼 또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성화의 본질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바울 사도도 같은 맥락에서 믿음과 소망보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데 그 사랑은 반드시 또 사실상 모든 것을 참아내는 데서 시작하여 참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참아야 한다는 것은 남이 자기에게 분명히 잘못했거나, 최소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상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 기준이 과연 정당했는지 여부는 둘째 치고, 어쨌든 자기는 옳고 상대가 틀렸기에 분노하거나 짜증이 나는 상황입니다. 

 

바울은 본문 마지막에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네 번이나 사용했고 또 오래 참으라고 했으니 어떤 경우에도 평생토록 참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형제의 잘못을 일흔 번씩 일곱 번, 말하자면 끝까지 용서해주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한두 번 정도는 참을 수 있으나 같은 잘못을 여러 번 반복하면 자기도 모르게 분노를 터트리게 됩니다. 

 

실제로 평생 살을 맞대고 살기에 가장 뜨겁게 사랑해야 할 부부 사이가 오히려 가장 참기 어렵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황혼 이혼이나 졸혼이 유행이다시피 되었는데 그중에 신자도 많을 것입니다. 생판 남들끼리 만난 부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내 몸에서 난 자식도 제대로 참아주지 못합니다. 교회에서조차 마주치기 싫은 성도들이 있는 판국이라, 핍박하는 자를 위한 기도나 원수 사랑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합니다. 신자들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성도에 대한 사랑마저 수시로 실패하니까 이웃에 대해선 표피적인 교제에 그칩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내 쪽에서 해를 끼치지 않음으로써 서로 얼굴 붉힐 일만 안 만들면 된다는 식입니다. 

 

혹시라도 본문을 액자에 걸어놓고 매일 아침 읽으면서 실천하기에 완전하지는 않아도 이웃사랑을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러면 지금 평소에 가장 가깝게 지내는 이웃 한 명을 떠올려서 본문의 15가지 지침을 그에게 온전히 실행하고 있는지 한 번 진지하게 따져보십시요. 

 

“나는 (누구누구)에게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내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장담컨대 이 테스트에 하자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심각하고 어려운 내용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말이 쉽지 막상 실현하려면 너무 어렵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는 잘 지킨다고 해서 온전한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 조금이라도 불순물이나 부정적인 요소가 섞이면 참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은 비록 부패했어도 영적인 존재인지라 참사랑인지 거짓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네가 분명히 잘못해서 내가 지금 무지 화가 나지만 이번만은 억지로 참아주겠다는 식이라면 그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져 사이가 더 틀어질 수 있습니다. 상대로선 어떤 부정적인 느낌도 안 들고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화하게 대해주고 있다고 분명히 느낄 수 있어야 온전히 참는 것입니다. 

 

아가페적인 사랑

 

그 열다섯 가지 행동의 주체에 예수님을 한 번 대입해보십시오. 단 하나도 완벽하게 달성되지 않는 요소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부터 거역 대적한 유대교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주님을 만난 모든 이가 그 따뜻한 사랑에 자기들 마음도 따뜻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이유도 신자들로 당신처럼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라고 또 할 수 있다고 직접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당신의 영을 신자에게 내주케 해서 신자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 마음을 나날이 당신의 마음과 닮아가게 바꾸어주십니다. 만약 신자가 아무리 신실해도 아가페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이성, 가족, 친구, 동료로서의 사랑을 조금 더 열심히 행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굳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는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 의로운 사람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죽고 완전히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인간적 사랑만 할 줄 아는 자아입니다. 반면에 새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차별이 없는 무조건적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지 절감하고 체험하게 되어서 그 사랑을 주변에 나눠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 자아입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성화는 평생토록 아가페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길고도 지루하면서 매우 고달프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피 흘리기까지 모든 것을 참아야 하는 법입니다.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고 해서 인내력과 의지력이 강한 자가 사랑을 잘 할 수 있다는 법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높이려는 의지력은 무쇠처럼 강력하나, 남의 잘못에 대한 인내력은 유리처럼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끝까지 잘 참아서 이웃사랑을 제대로 잘할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원인을 정확히 알면 정확한 대책도 자연히 도출되므로 남에 대해 잘 참지 못하는 이유를 먼저 찾아서 거꾸로 따져보면 됩니다.

 

모든 것에서 끝까지 참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드린 대로 자기를 높이려는 강한 의지력 때문입니다. 상대의 행동, 말, 태도가 내가 정해놓은 기준이나 기대하는 수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참는다는 뜻은 상대를 고치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부터 절제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모범도 예수님이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7,8) 예수님의 자기 절제는 최고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신 완전한 자기 부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신분부터 세상 모든 이의 조롱과 멸시와 증오와 분노를 몽땅 그대로 받아 내어야만 하는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더 비참해질 곳이 없는 최악의 수치스러운 자리입니다. 자기 아래로는 아무도 없으며 모두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더러 “너희 안에 (예수님의) 이 마음을 품어라”(5절)고 했으니 신자들도 그런 위치까지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자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절대로 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언제 누구에게 그렇게 행하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빌2:1)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이나 ‘무슨’이라고 표현했듯이 신자가 갖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라고, 즉 다른 모든 이를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두라고 명한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경우에 참아내려면 모든 이를 항상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다고 여겨지면 끝까지 참아낼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항상 최고로 낮아져야만 남을 항상 낫게 여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참으려면?

 

그런데 원죄 하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에겐 엄청난 힘을 가진 자존심이라는 괴물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인정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고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특정한 여건에서 개별적인 사안에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자기를 겸손히 낮추면서 의롭게 절제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다. 육체적 본능이나 세속적 탐욕이나 자신의 고집이나 선악 간의 기준 등은 자기 내면의 마음과 생각을 구성하는 일부이지 자기 전체가 아닙니다. 주님이 본으로 보이신 자기 절제도 존재론적인 완전한 전환이었지 않습니까?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라는 인격체 전부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매일매일 옛 자아를 철저하게 완전히 깨부수어서 이전의 자아가 단 하나도 남아있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간섭으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십자가에 실현된 아가페 사랑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자존심이라는 그 괴물이 깨어집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 괴물이 지금껏 내 뜻과 의지와는 반대로 제멋대로 나를 노예로 부려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전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서 죄를 지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신자는 바울처럼 천하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는 철저한 자기 부인의 체험을 겪게 됩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세계 70억 명 중에 내가 최고 극악한 죄인이라서 나 아래에 아무도 없고 모든 이가 나 위에 있다고 절감합니다. 생전 처음으로 기꺼이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는 상태의 사람, 새로운 자아로 바뀐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 본성이 남을 끝까지 참아주지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고서 앞으로 남을 사랑하기 앞서서 자기부터 부인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신자입니다.

 

바꿔 말해서 신자가 되어서도 자존심이라는 괴물 자체는 깨어지지 않고 그대로 떡하니 속에 버티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여전히 죄인들과 사탄이 설치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주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자기를 최고로 낮추었으나, 점점 자기에게 남들보다 우월한 측면이 있다고 여기는 옛 본성이 되살아나고 그래서 끝까지 참아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도덕적 종교적 훈련은 아무리 한들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습니다. 옛날 부모님들이 딸이 시집갈 때 시댁의 일과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대해서 완전히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로 지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말하자면 상대가 어떤 잘못을 범해도 끝까지 참아주려면 그 모든 잘못에 대해 눈을 완전히 감는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상대를 끝까지 참으려면 내 안의 자기를 부인하는 것처럼, 내 안에 품고 있는 상대도 완전히 부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대가 내 안에 생생히 살아있어선 내 안에 남아있는 여러 기준에서, 심지어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싫다는 감정에서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링컨 대통령에게 앙숙인 정적이 한 사람 있었는데 사사건건 링컨을 물고 늘어지며 온갖 중상모략을 퍼트렸습니다. 그런데도 링컨은 전혀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고 나아가 그 사람에게 화내거나 싫어하는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감정변화 없이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했는데 주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링컨은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보다 낫거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나도 괴로웠겠지만, 아예 상대할 가치가 없기에 그 사람 때문에 화를 내면 나도 그 사람과 같은 수준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링컨도 상대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지워버렸기에 끝까지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치면 상대만 부인한 것입니다. 링컨이 신자였어도 신적 사랑의 첫 단계만 성공했습니다. 상대를 자기보다 낫게 여겨야만 하고, 나아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 같은 사랑까지 해야 합니다. 아가페 사랑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상대를 정말로 나보다 낫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더디더라도 그 미움부터 죽여야 하니까 최소한 나와 똑같게는 여겨야 합니다. 

 

사랑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끝까지 참으신 것은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을 구원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차원까지는 미처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랑이라기보다는 자비를 실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생각은 전혀 없고 오히려 원수가 되어서 대적하던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준 것입니다. 도무지 구원받을 자격이 안 되고 오히려 정반대인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용서해주었습니다. 인간사회의 기준과 개념으로는 최고로 옳지 않고 최고로 악했는데도 그 모든 점을 무시했습니다.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죽음으로 치닫는 그 사람이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이웃을 사랑하려면 좋다고 봐줄 여지가 단 하나도 없고 오히려 정반대라도 일단은 그 모두를 외면 무시해야 합니다. 자기 속에서 자연히 솟아오르는 싫은 감정도 완전히 죽여야 합니다. 처음부터 사랑하려고 덤비지 말고 대신에 예수님처럼 상대가 먼저 정말로 불쌍해져야만, 최소한 나와 똑같이 불쌍한 존재라고 인식 되어져야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 유대감이 가장 끈적한 것은 전우애(戰友愛)입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최일선의 전투 현장에 함께 배치되어서 동료가 옆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자기 목숨도 전혀 아깝지 않게 여겨진다고 합니다. 동료가 순간적으로 죽음을 맞고 자기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존심 욕심 체면 선악 기준을 따지는 바보는 없습니다. 사형수끼리 모인 감방에서도 아웅다웅 서로 다툴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언제 처형장으로 끌려갈지 모르는 똑같은 처지라 자기도 불쌍하고 다른 이 모두가 불쌍하게만 여겨질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든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 같은 존재라고 절감하게 되면 우리도 일상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를 부인하되 그의 가치와 장점까지 완전히 죽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던 없던 그 또한 십자가 앞으로 데리고 와서 십자가로 부인해야만 합니다. 그도 나와 똑같이 십자가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천하 죄인 중의 괴수라고 실감해야 합니다. 교도소에 갇힌 부패한 정치인이나 흉악범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대학 교수도, 큰 교회 목사도 당장 저부터도 십자가 앞에선 죄인 중의 괴수일 뿐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수시로 자존심이라는 괴물이 되살아나고 자기가 정했거나 사회에 통용되는 의의 기준부터 따지게 되므로 끝까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없습니다. 나부터 극악무도한 최악의 죄인이요 상대도 그와 똑같은 죄인이라는 관점이 아니고는 상대를 참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참으신 것은 모든 인간을 당장 죽어야 할 사형수로 보신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무슨 분노나 꾸중을 터트릴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 자기가 그런 운명인 줄 알고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으니 얼마나 어리석고도 불쌍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죽어가면서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자들을 향해 저들이 자기 하는 짓을 모르니 용서해달라고 성부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바로 그런 마음을 품어야만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길 수 있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신자라면 그래서 북한의 흉악한 독재자 김정은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똑같이 불쌍하다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스위스에 혼자 외롭게 유학했고 그 젊은 나이에 나라 전체를 다스려야 하니까 술 담배 없이 혼자서 어떻게 그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고조되어서 폭풍 일보 전이라 매 순간 암살당할까 전전긍긍합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그도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반드시 당장에 무너져야 할 공산 독재 정권이지만 최소의 희생으로 개혁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왕이면 김정은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진정으로 회심하여,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스스로 개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김정은 같은 원수까지 불쌍하게 여겨질 수 있다면 이웃은 더더욱 아주 쉽게 불쌍해지고 또 주님 같은 사랑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이 모든 것에서 참는 사랑을 가르치면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라는 권면을 덧붙인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연히 성경을 같이 배우면서 성도들끼리만 사랑하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진리는 바로 십자가 복음이자 예수님 그분입니다. 십자가 긍휼에 실현된 구원 진리를 정확히 알면 상대를 기뻐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똑같은 사형수였던 이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아 죽음에서 구원받으면, 내가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똑같은 사형수 처지에서 너무나 기쁠 것입니다. 그가 언제 예수를 믿게 될지 가능성이 안 보여도, 성령이 역사해주실 것을 기대 소망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그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 스스로 모르니까 너무 불쌍해져서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두에게 온유하라는 뜻도 같은 차원입니다. 단순히 성품이 온화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온유란 내면에 확신하는 진리를 품고 있고 그 진리에 따라서 다른 이를 일관되게 인자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 속에 자존심이라는 괴물이 남아있으나, 그것을 압도하여 통제가 가능한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서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확신의 바탕에서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면서 자연히 다른 이에게 온유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사람을, 특별히 어떤 흉악범이라도 그분이 창조하시고 그분이 사랑하는 영혼이므로 신자도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정확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영혼인데도 왜 아직도 저 모양인가, 사랑할만한 구석을 아무리 눈 닦고 봐도 없는데 하나님은 왜 사랑하라고 하는지 의구심과 반발이 생깁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사악한 죄수보다 내가 더 악하다는, 최소한 똑같다는 인식부터 생겨야만 참을 수 있고, 또 그렇게 참아야만 다음 단계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아 다른 이를 참아낼 수 없을 때는 예수님이 바로 그런 자를 위해서도 끝까지 십자가에서 참았고 기도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 같은 천하의 죄인을 위해서 죽기까지 참으셨다는 그 은혜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컨대 매일 매 순간 상대가 아니라 나부터 십자가에서 다시 죽어야만 합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신자는 날이 갈수록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적 실상은 더 악해지지 않고 이전과 같거나 사실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단지 자기 내면을 모든 차원에서 더 세밀하고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으므로 스스로 부끄러워서라도 감히 자기를 남보다 높이 세울 수 없게 됩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자비가 없으면 저는 한시도 제대로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주님도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고백이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이 없으면 단 한시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영적인 시체로 세상에서 제가 가장 불쌍한 존재이므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러지 않으면 저에겐 아무 능력 가능성 소망 위로가 남지 않는다는 고백과 간구가 입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의 덩어리인지라 저에게서 나오는 것은 전부 악이며 선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다시 저로 자기를 완전히 부인케 하고서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만 따라가게 해달라고 더 많이 더 자주 매달리는 것이 믿음이 자랐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건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라.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아주 간단합니다. 불신자는 자기는 최고로 의롭고 똑똑하고 자랑스럽다고 여기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그렇게 인정받으려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인 자입니다. 최소한 열등하게 대우받지 않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지성, 재물, 권력 등 부분적으로는 남이 더 우월하다고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사람 전체 한 인격체가 나보다 낫다고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는 딱 하나가 달라졌는데 그 반대로 한 인격체라는 전체 차원에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기도 불쌍하고 남들도 다 불쌍하다는 그 사실 하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자를 죄인이었을 때부터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해주십니다. 죄에 오염된 본성은 그대로 둔 채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었습니다. 하나님과 이미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었으므로 비록 죄를 지어도 그 관계를 평생을 두고 절대 변화 수정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동, 말, 생각, 상태, 조건, 하나씩 뜯어보지 않고 인격체 존재 전부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적인 사랑으로 참아내는 사랑, 즉 자비입니다. 

 

끝까지 참는다는 말의 뜻 자체가 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을 끝까지 용납 수용해준다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행동과 말에 시선이 쏠리면 어떤 성자도 남을 끝까지 참아주지 못합니다. 죄송하지만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처 박사를 바로 곁에서 도왔던 자들은 한결같이 두 사람 다 아주 냉정했다고 평가합니다. 모든 이가 죄인으로 죄 중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끝까지 참아내어서 더 이상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정도로 그치면 일반 도덕과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명했으나 자기 노력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신자들더러 매일 자기부터 부인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불쌍한지 재확인하면 그 원수도 불쌍해진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진리와 함께 상대를 기뻐하는 자리에서 예수님 같은 아가페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너도 나와 똑같은 죄인이며 더 나아가 반드시 함께 천국까지 동행해야 할 너무나 불쌍한 죄인이라는 인식이 철저히 들어야만 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천국 여정의 동반자라는 사실 하나 외에는 다른 것 일절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 자체를 받아주는 관계를 먼저 맺고서 그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오직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려는 심정으로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의 조건, 행동, 상태 하나씩 뜯어보지 않았으며 일대일 개인적 인격적으로 먼저 찾아와 만나주셔서 새 사람으로 바꿔주었습니다. 한 죄인이라는 사람 전체에게 긍휼을 베푼 것이며 그 이후로 당신께서 평생 그에게 십자가와 똑같은 아가페 사랑을 베풀어서 그 사람도 당신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십니다. 

 

예수를 믿은 후로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매일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재확인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귀한 은혜입니다. 전심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어 보십시오, 오늘 하루도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 가신 길을 주님과 같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겠다고 순전한 소망을 기도로 아뢰어 보십시오. 

 

신자의 심령에 위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기에 성삼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분과 교제 동행하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비록 세상 사람과 죄악과 사탄의 훼방이 수시로 나를 넘어트리고 죄의 본성이 다시 발동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자라고 싶다는 소원은 날로 커집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고 동일하게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그런 사랑을 받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이 우시는 곳에서 내가 같이 울 수 있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보고 똑같이 나도 안타까워할 수 있습니다. 주님처럼 완벽하게 전혀 흔들림 없이 사랑을 실천하지는 못해도 그렇게 바뀐 인생의 행로에 방향 전환은 절대 없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로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다시 자신을 점검해보십시오. 나에게 세상적 기준으로는 여전히 내세울 것이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선 나만큼 불쌍한 자도 없다고 실감하십니까? 나도 사형수, 너도 사형수라 나에게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인식이 흔들리지 않아야 이웃을 나처럼 사랑할 수, 최소한 끝까지 참아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화의 출발이자 거의 전부입니다. 최근의 고달픈 세태에선 인생의 연륜이 조금씩 늘어나면 이런 영적인 차원까지 따질 필요 없이 단순히 현실적 관점으로만 봐도 주변에 불쌍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8/2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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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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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4-9) 이스라엘과 하마스, 누구를 편들어야 하나. -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7)

(빌3:4-9) 이스라엘과 하마스, 누구를 편들어야 하나?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7)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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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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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2:1-8) 불의한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6)

(요12:1-8) 불의한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6)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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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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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2:29-36) 슈퍼 파워 미국이 하나님의 공의다. -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5)

(출12:29-36) 슈퍼 파워 미국이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5)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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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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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28-32)하나님 때문에 세상이 더 나빠진다.-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4)

(롬1:28-32) 하나님 때문에 세상이 더 나빠진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4)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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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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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3:9-18)예수 재림의 신호를 포착한 과학자들-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3)

(롬3:9-18) 예수 재림의 신호를 포착한 과학자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3)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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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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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8-23)술과 담배도 하나님의 공의다.-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2) [1]

(롬1:18-23) 술과 담배도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2)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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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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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42:1-6) 위선자만 환난을 이겨낼 수 있다.-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1)

(욥 42:1-6) 위선자만 환난을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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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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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43-48)원수까지 사랑하려면?-새롭게 읽는 신약성경(1) [9]

(마5:43-48) 원수까지 사랑하려면?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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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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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5)인생 첫째 질문의 해답을 얻었는가?-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 [1]

(창1:1-5) 인생 첫째 질문의 해답을 얻었는가?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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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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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1-3)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16/완)

(엡4:1-3)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6/완)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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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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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6:5-9)상사는 부하를 위협하지 말라.-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15)

(엡6:5-9) 상사는 부하를 위협하지 말라.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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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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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6:1-4)부모가 자녀에게 복종하라.-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14)

(엡 6:1-4) 부모가 자녀에게 복종하라.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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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01
  • 조회 수 173

(엡5:22-33)부부는 성화의 최고 동반자이다.-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13) [1]

(엡 5:22-33) 부부는 성화의 최고 동반자이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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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4
  • 조회 수 280

(엡5:15-21)성화란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12)

(엡 5:15-21) 성화란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2)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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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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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3-7)성화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11)

(빌1:3-7) 성화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1)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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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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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4:11-16)성화의 목적도 모르는 신자-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10)

(엡4:11-16) 성화의 목적도 모르는 신자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0)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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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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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3:4-7)끝까지 참는 사랑의 비결-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9)

(고전13:4-7) 끝까지 참는 사랑의 비결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9)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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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7
  • 조회 수 238

(고전13:1-7)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8)

(고전 13:1-7)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8)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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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0
  • 조회 수 249

(마22:34-40)이웃 사랑 없으면 성화도 없다.-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7)

(마22:34-40) 이웃 사랑 없으면 성화도 없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7)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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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3
  • 조회 수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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