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5:15-21) 성화란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2)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15-21)

 

성화와 이웃 사랑

 

성화는 평생토록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면서 예수님이 살았던 모습대로 순교까지 각오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후 죄를 안 짓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종종 실패하는데 너무 과도한 목표를 제시한 것 같습니까?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지 도무지 난감하십니까? 

 

그런데 바로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 사실은 성화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많은 신자가 죄 안 짓고 착하게 사는 일과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했던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일을 서로 다른 차원이라고 이해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 둘이 같은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를 안 지으려면 이웃 사랑 같은 선에 집중하면 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모든 죄는 사실상 인간관계가 굽어지는 데서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가르쳤지만, 그런 경우도 특정 상대와 생각 속에서 부정적인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것과 모든 인간관계를 참사랑으로 올바르게 하는 것은 사실상 같은 의미가 됩니다. 결국 성화는 모든 이에게 아가페 사랑을 실천해나가는 씨름일 수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는 전반 3장까지는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고, 후반 4장부터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본문도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15절)라고 신자로서의 새 생활에 대해 가르치겠다고 시작해서, ‘피차 복종하라’(21절)고, 즉 이웃끼리 참사랑으로 섬기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웃 사랑이 성화의 본질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주의하여”라고 했으므로, 성화를 실천하는 일에 자칫 간과해버리는 아주 중요한 사항을 설명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 첫마디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그러면 과연 지혜와 성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아가 왜 지혜가 가장 주의해야 할 요소가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죄의 본질을 알라.

 

성화를 신학적으로 예수 믿은 직후부터 죽어서 천국 갈 때까지 ‘죄의 힘에서 자유롭게 되는’(free from the power of the sin) 싸움이라고 정의합니다. 악한 행동이 아니라 죄의 힘에서 자유롭게 되는 싸움입니다. 죄란 본질적으로 인간을 묶어서 계속 억압 통제하는 힘이며 악한 행동은 그 죄의 힘이 발동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자신의 악한 행동보다는 죄의 힘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유하자면 암에 걸리면 체중이 계속 줄면서 자꾸 피곤해지는데, 암인 줄 모르고 살만 찌워선 피곤한 증세가 절대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 원인인 암부터 치료해야만 피곤도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묶어서 노예로 부리려는 죄의 힘에서부터 풀려 나와야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되는데도, 많은 신자들이 지금껏 그랬듯이 그 힘은 그냥 둔 채 나쁜 짓만 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봐야 성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신자들을 묶고 있는 죄의 힘에 대해서 자기 체험에 비추어서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19-23)

 

바울은 분명히 마음으로 선을 행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그를 묶고 있는 죄의 힘이 세상 쾌락을 탐하고 욕심이 과도해져서 음란하고 사악한 종류의 악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범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탄의 영이 그의 속에 거하여서 그를 자꾸 시험과 유혹에 넘어가게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예수 믿을 때 성령의 전으로 바뀐 데다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에 사탄이 외부에서 방해는 해도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속에서부터 묶고 있는 죄의 힘은 무엇이며 또 그가 지었다는 죄의 종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의 본성 안에 아주 교묘하고도 끈질기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죄의 힘은 한 단어로 표현해서 자존심입니다. 그가 범한 죄의 종류도 남들 위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자기를 높이려 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특별히 신자가 성화에 실패하게 만드는 암 덩어리는 바로 자존심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부인 거역 대적하는 원죄의 발단부터 자기를 그분보다 높이려는 자존심이었습니다. 선악과 금령은 천하 만물의 주인이자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인간더러 당신의 품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모든 선한 것들을 아낌없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담은 그 약속대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가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주저 없이 하나님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아담은 자기를 최고로 높이려 했으나 그 결과는 정반대로 너무 비참해졌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적 양식이 끊기니까 자기 속에 불안 염려 허망 갈급 수치 분노 들로만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이 엄격히 다짐했던 대로 육신은 살았으나 더 괴로운 영적인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 체면이 깎이기 싫어서 이브에게 그 책임을 미뤘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이 장남에게까지 이어져서 가인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구겨진 자기 체면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서 애꿎은 동생 아벨에게 화풀이하며 죽여버렸습니다. 그 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기만 높이려는 자존심의 화신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범하는 모든 윤리적 종교적 죄들을 곰곰이 따져보면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자존심입니다. 인간은 경제적 현실적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으나 자존심이 상하면 자기 목숨까지 걸며 원상회복하려고 덤빕니다. 최근에 부정부패나 성추행 등의 죄가 드러난 한국의 고위층들이 줄줄이 자살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부끄러워서 더 이상 살아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졌기에 죽어서라도 그 책임을 혼자 짊어지려고 회개한 의인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뜻이나, 헛된 몸부림일 뿐입니다. 신자들마저 황혼 이혼을 감행하는 이유가 성격 차이, 남편의 독재, 자유로운 새 인생의 추구 등등 그럴듯한 구실을 대지만 그 뿌리를 파고들면 부부 사이에도 끝까지 자존심 다툼을 벌이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이 인간사회에서 가장 교묘하고 사악하며 피해 규모가 커서 재앙적인 죄악은 아주 머리가 좋은 사회의 지배 계층들이 저지른 것입니다. 많이 배웠을수록 자존심이 높아지며 그 높아진 자존심을 더더욱 높이려 들기 때문입니다. 죄송하지만 그 반대도 똑같은데 무식한 사람들도 남이 자기를 우습게 안다고 여겨지면 죽기 살기로 대듭니다. 

 

지혜 있는 자가 되어라.

 

예수님은 신자가 평생토록 신앙생활로 이룰 일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 몸을 사랑하기에 바쁘면 절대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이 완전히 없어져야 비로소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즉 자기를 묶고 있는 자존심부터 완전히 깨트리라고 명한 것입니다. 

 

그 자존심을 바울은 어떻게 죽일 수 있었다고 합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4,25)고 실토합니다. 예수님이 바울이 자존심을 세우려 할 때마다 초자연적으로 간섭해서 막아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옛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면서 죄의 본질이 바로 자존심이라고 정확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성적으로 자기를 높이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자기 자존심을 죽여나갔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기를 묶고 있는 죄의 힘을 원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범사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추어서 영적으로 분별 판단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진리를 본문에선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간단히 말해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행할지 현명하게 선택 실행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고 선언합니다. 하나님만이 절대적 선이라 모든 선의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그 전에 세상만사를 당신의 뜻에 따라 통치하고 계시기에 그분을 알아야만 삶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모든 차원에서 자존심을 죽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 되고 그 반대로 하면 가장 어리석어집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의 기준으로 따지면 최고의 지성인이자 모든 것을 다 가진 상위 1%에 해당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여호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잔인하게 박해했습니다. 특별히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최고로 평안한 얼굴로 기쁨에 넘치는 모습을 목격한 후로는 예수 믿는 신자들이 훨씬 더 경건하고 인간을 묶고 있는 죄의 힘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율법에 하자가 없다고 자부했던 그로선 자신의 종교적 프라이드가 크게 훼손되는 것을 느꼈기에 도무지 참고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어떤 고백을 합니까?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7-9)

 

이전에 세상에서 한껏 자랑하며 자신을 높였던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정도를 넘어서 자신에게 오히려 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종교적 의로움을 세우려고 스데반 처형을 주도했고, 단지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구실로 동족을 박해하는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오히려 천하 죄인의 괴수였음을 생전 처음 깨닫고 나자 이전에 자기를 높이는데 필요했던 모든 기준들을 배설물처럼 취급했습니다. 말 그대로 곁에 두어선 더럽고 추악해서 한 시도 견딜 수 없으니 다 버린 것입니다. 대신에 오직 예수님의 구원 받은 은혜 안에서 그분만 따라가는 삶을, 즉 자신은 완전히 죽이고 주님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새 인생을 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 사회에선 사람의 가치를 무엇으로 평가합니까? 사회적 신분, 특별히 경제적인 능력 하나입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해 세계적인 기업에 취업해서 많은 연봉을 받거나 벤처 기업을 창업해서 큰돈을 벌어야 합니다. 호화스러운 집을 사고 럭셔리한 차를 몰면서 여가만 생기면 세계 여행을 다니며 미쉐린 별점을 받은 최고 맛집을 탐방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한국은 모든 면에서 협소한데다 모두가 소셜 미디어에 능숙해서 친구나 이웃이 어떻게 잘나가는지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적 사고에 젖어서 모두가 최고 일류가 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삽니다. 그러나 경쟁이 너무 격심하니까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자존심을 절대 채우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거꾸로 최고 부끄러운 처지에 빠졌습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미국과 한국은 현재 기독교 교세가 가장 번성한 두 나라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제대로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많은 신자들이 지혜 없는 자가 되어서 이전에 돈을 주인으로 모시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도 거의 비슷해졌지만, 잘 믿으면 걱정 없이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번영 신학을 열렬히 가르쳐서 교인들이 벌 떼처럼 몰려드는 대형교회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신자들이 바울의 새롭게 바뀐 그런 인생관과는 전혀 반대로 살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시고 얼마나 한탄하겠습니까? 

 

세월을 아껴라.

 

지혜 없는 자처럼 되지 말라는 뜻은 이전에 예수님을 몰라서 세상의 기준대로 살았던, 즉 자기 자존심만 세우려 했던 모습을 계속 유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지혜 있는 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바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온전히 알고서 자존심을 세우려는 시도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령 안에서 피차 복종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차 복종하려면 상대가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혹은 자기 쪽에서 상대에 대한 의무감 죄책감으로 행해선 안 됩니다. 서로가 상대를 자기보다 더 높일 때, 최소한 자기보다 더 낮다고 멸시하지 않을 때만 가능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인간인 종의 형체를 입고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죄인들을 살리려 했던 그 마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면서 성령 안에서 교제하라고 했는데(빌2:4-8), 그것만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첫걸음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지혜 있는 자가 되는 일을 때가 악하니까 세월을 아끼는 것과, 술에 취하여 방탕해지지 않는 것 두 가지에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때가 악하다는 것은 바울 당시의 로마제국의 모든 세태가 사악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 원죄로 에덴 밖으로 쫓겨난 이후로 가인과 라멕의 살인죄로 이어진 인류의 모든 역사는 항상 다 악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세상에 악하지 않았던 세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 사악함이 더욱 심해지고 있고 갈수록 더 그럴 것이며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몰라 지혜 없는 세상 사람들은 사악한 세태만 따릅니다.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최소한 중간은 되려고 합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존심만 세우려고 다투지만, 승리자는 극소수입니다. 최고 승리자도 모든 선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과 등을 지고 있어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과 허무함에 빠집니다. 미국에서도 최고 상류층에서 오히려 마약과 자살이 번집니다. 그 다툼에서 패한 일반 대중들도 막상 정상에 올라가 봐도 오히려 더 허망해질 줄은 모르고 어리석게도 발버둥만 치다가 일생을 마칩니다. 

 

그래서 때가 악하니까 세월을 허비하지 말라고 권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등진 상태에선 무슨 일을 해도 헛되다고 세 번이나, 최고 강한 세기로 한탄한 까닭입니다. 신자들도 자칫 하나님을 잠시 외면하거나 잊어버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전처럼 다시 죄의 힘에 묶여서 남들 앞에 자기 자존심을 세우려 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어떤 거룩한 의미와 가치도 생기지 않으니까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술 대신 성령에 취하라.

 

지혜 없는 자의 두 번째 비유인 술에 취하지 말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선 취하지 말라고 했다고 신자도 취하지 않을 정도라면 술을 마셔도 되고, 또 방탕하지 말라고 했으니 술을 마시되 방탕한 죄만 안 지으면 된다고 문자적으로 적용해선 안 됩니다. 

 

혹시라도 지혜 없는 세상 사람이 술을 찾고 즐기는 방식으로 술을 마심으로써 시간을 낭비했는지 잘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술을 함께 마신 사람과 더욱 친밀한 사랑의 교제로 이어졌고, 또 그래서 각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신자는 술을 포함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거나 이웃끼리 서로 자존심을 세우는 결과를 낳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바로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 됩니다. 

 

본문은 윤리적으로 방탕했는지 여부로 지혜가 있는지 없는지 즉,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지 아닌지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술 마시고서 고성방가를 지르고 온갖 추악하고 음란한 행위를 했는지 따지는 대신에 허랑방탕하게 시간을 허비했는지만 문제 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지금 신자의 음주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성령에 취하는 상태를 더 실감 나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로 제시한 것입니다.

 

술이나 성령이나 취하게 되면 신자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관하는 주체가 술과 성령이 됩니다. 우선 술은 인간의 자발적 동의 없이도 강제력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술을 통제할 자신이 있다고 해도 술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말하듯이 끝에 가서는 자신이 술에게 먹히어 버립니다. 조금이라도 마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실현하는 일에 분명히 장애가 생기며 그러면 자칫 때를 허비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되면 다른 이를 아가페 사랑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이므로 신자 쪽에서 자발적으로 기꺼이 순종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절대로 강제적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위급해서 비상한 방법으로 역사해야 할 때만 신자의 동의 없이 그 인생과 삶에 간섭해주십니다. 또 신자가 지혜 없는 자처럼 되어서 죄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영혼에 자꾸 찔림을 주십니다. 나아가 현실 삶이 너무 고달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사방이 완전히 막혔을 때는 대신 기도해주셔서 기어이 하늘의 빛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를 보여주십니다. 

 

이처럼 성령과 신자는 기계적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이므로 신자 쪽에선 매사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항상 성령에 취할 정도로 평소 마음을 완전히 열고서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진리의 말씀을 읽고 지혜롭게 분별해서 그 진리를 자기 삶에 실천해야 합니다. 연약한 자신의 모든 약점을 성령님이 아시니까 나의 모든 사정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꿔주시리라 확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은 신자로 세월을 아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십니다. 

 

결국 성화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월을 아끼는 지혜 있는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세월을 아껴야만 합니까?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까? 지금껏 사실상 그 이유를 거의 다 설명해드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선정한 버킷 리스트를 성취하는 재미로만 살아갑니다. 정말로 시간을 아껴가며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습니다. 실제로 조기에 은퇴해서 세계 일주 여행을 다니며 나름의 의미와 행복을 만끽하는 자도 많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뜻 안에선 세월을 허랑방탕하게 허비하는 헛된 몸부림일 뿐이며, 엄격히 말해서 죄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계명들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도덕적 종교적 이유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서로 도와야만 인간답게 살아가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선한 것을 하나님께만 공급받으며 그분과 참사랑의 관계를 이어가야만 인간끼리도 순전한 참사랑의 관계를 이어가며 죄를 안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타락하기 전까지는 이브에게 부끄럽고 악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아서 감출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정말로 이브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자기 몸처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주신 생명에 드러나길 소망했던 가치와 의미가 실현되어서 참 기쁨 만족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 자존심을 세우려고 그분을 등지자 곧바로 수치 공포 죄책 걱정 허무 갈증 등이 저절로 따라왔습니다. 시간을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시간의 주인인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시간을 거룩하게 아끼는 지혜가 생기고, 외면하면 할수록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하는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의 비결

 

바울은 성령의 충만을 입어서 때를 아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고 말합니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19-21절)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되면서 자연히 성도의 교제와 이웃 간의 사랑의 관계도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한 번뿐인 인생을 절대 허비하지 않고 온전히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 직전 혹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믿음과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가장 크게 후회하는 사항이 뭔지 아십니까? 이구동성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 배우자, 자식조차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꼽습니다. 세상 사람들조차도 인간은 서로 참사랑을 해야만 그 인생이 의미가 있고 참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모든 이가 그런 고백을 했다면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그렇게 되도록 지으셨다는 사실을, 종교적으로 고백한 것은 아니나 시인한 셈입니다.

 

요한 사도는 지혜 있는 자와 지혜 없는 자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인데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분을 알지 못하기에 지혜 없는 자가 됩니다. 

 

요한은 이어서 사랑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며, 만약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할 수는 없다고 선언합니다. 또 그렇게 하라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이 땅에서부터 두려움 없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요일4:9-21) 죽기 직전에 신자는 사랑하지 못한 일로 후회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아는 자는 그 사랑을 주변에 부득이 함으로 아니라, 전하지 않으면 가슴이 오히려 답답해지기에 세월을 아껴가면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자기부터 바울이나 어거스틴처럼 온갖 방탕하게 세월을 허비했던 실패를 통해서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피차 복종하는 한 가지뿐이라고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끼리도 서로 순전하게 사랑하도록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 확신이 바로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그 고귀한 자존심을 자기만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듦으로써 완전히 거꾸로 전도 오염시켜버렸는데 그것이 원죄입니다. 예수님은 그 올바른 자존심이자, 고귀한 인간의 정체성을 되찾으라고 하나님과 이웃을 전심으로 사랑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비록 한 번뿐이고 그마저 아주 짧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존재이므로 이 땅의 인생도 너무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정말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신나게 살아갈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 없이 방탕하게 허비하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그들에게 큰 불행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영원한 심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리석게도 이 땅에서 삶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밑 빠진 독처럼 절대로 참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아서 고달프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혜롭게 된 신자들이 그들의 텅텅 비워진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예수 십자가 은혜를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신자들마저 이전보다 나쁜 짓 조금 덜하고 선을 더 많이 행하는 차원으로 신앙생활을 스스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그마저 종종 실패하니까 자기 심령의 갈급함을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처럼 열렬한 종교 활동으로 대신 채우려 듭니다. 신자들부터 어리석게도 세월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같은 바보가 다른 바보를 깨우쳐줄 방도는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꾸중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성화에서 가장 자세히 주의할 사항은 한 번뿐인 인생을 정말로 참 생명력과 기쁨이 넘치게 살려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려면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해주는 기준을 전부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쉽게 말해 자기 자존심부터 죽여야만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천국의 모형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 정말로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계속해서 믿음을 도덕적 종교적 자기 수양의 차원으로만 접근해서 지금까지처럼 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날마다 자존심 덩어리인 자신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완전히 죽이고 그분이 살아가셨던 길대로 기꺼이 따라가시겠습니까? 쉽게 말해 지금까지처럼 세월을 허비하겠습니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아끼며 살아가겠습니까? 

 

(9/1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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