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부흥의 너무나 손쉬운 방안

창세기 강해 (20)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니라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2:24,25)

 

 

사전계약 결혼

 

미국은 주마다 조금 법이 다르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이혼하면 재산을 반으로 나눈다. 위자료가 엄청나다. 그래서 억만장자나 유명배우들 사이에 Print-up 결혼이 성행한다. 만약 배우자가 부정을 저지르거나 결정적 흠결이 발견되어 이혼할 때에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라고 사전에 서류로 계약하는 것이다.

 

이혼의 가능성을 미리 알고 결혼하므로 당연히 비성경적이다. 그럼에도 잘못을 범하면 곧바로 시인할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사전에 결혼의 모든 과정을 솔직히 서로 털어놓고 논의한 측면은 사줄만 하다. 결혼 중에 끝까지 배우자를 속이는 것보다는 덜 치사하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서로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라는 것이다. 각자가 자신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0.5의 존재임을 철저히 자각하여 배우자의 부족한 0.5에 자기 0.5를 보태어서 완전한 하나(1)가 되어져가는 과정이다.

 

그 결과는 25절대로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0.5+0.5=1 결합이 아니라면 그런 온전한 사랑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모자라는 0.5끼리 연합하려면 자기 0.5가 무엇인지 숨기지 않고 완전히 내보여야만 가능하지 않는가?

 

지금 한국에선 유수한 재벌의 장남과 차남이 후계자 다툼으로 막장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조직에는 최고 강자는 한 명뿐이어야 한다. 비슷한 실력자들끼리 모이면 다툼은 불가피하다. 만약 장남은 회사경영에 소질이 있고 차남은 예술가로 돈에 관심이 없다면 싸움이 날 리가 없다.

 

부부관계는 서로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각기 절반의 다름이다. 상대의 절반의 다름이 없으면 온전한 구실을 못하기에 그 절반이 절실히 필요하다. 모든 면에서 터놓고 의논할 수밖에 없다. 또 그러는데 부끄럼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예컨대 최근에는 남편이 사회적으로 무능해 가장의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내가 혼자 가사를 책임지는데 일일이 의논하지 않는다. 심지어 딴 마음을 품을 가능성과 기회도 다분해진다.

 

우연히 한국 TV의 토론 프로에서 백세 시대가 되었으므로 한 배우자와만 6,70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너무 지겹기에 황혼이혼을 비난할 수 없고 각자가 따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었다. 놀랍게도 출연자들이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 심정적으로 찬동하는 것 같았다. 결혼을 1+1=2 혹은 1+1=1의 공식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각자가 부족하다면 나이 들수록 더 연약해지기에 더욱 상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서로 채워가며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기에 나이 들수록 더욱 사랑하게 된다. 참 사랑에 지겹다, 쇠퇴한다는 단어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랑하면 할수록 새롭고 더 풍성해지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신자 부부가 솔직하게 물어볼 질문

 

신자 부부가 솔직히 답변해야 할 질문이 있다. 내 SNS, E-mail, 신용카드, 은행구좌, 심지어 메모장이나 일기장을 언제든 배우자에게 공개하고 있거나 할 수 있는가? 너무 과한 것 같은가? 아니다. 본문의 뜻이 바로 그것이지 않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 진리임을 믿는 자가 신자다. 신자는 또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제 개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저만의 어카운트는 따로 없고 전부 공유한다. 카카오 톡은 전화기를 각자 갖고 있어 어쩔 수 없지만 언제든 서로 보여준다. 미국 생활이 단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회사역을 동역하고 또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참 어려운 문제다. 아무리 부부가 일심동체라지만 평소 자신만의 충족을 위한 여가, 취미, 교제를 가져야 한다. 일기장까지 완전히 공개할 필요는 없다. 만약에 공개해도 오해, 시기, 다투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뭔가 보여주고 싶지 않거나, 벌거벗을 자신이 없거나, 서로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면 신자 부부로써 결격이라는 뜻이다.

 

인생은 우리 생각이나 기대보다 훨씬 짧다. 백세 시대가 되어도 그럴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맺어준 배우자라고 확신한다면 그저 차지도 덥지도 않는 관계로만 지내는 것은 너무 손해이지 않는가? 온전한 사랑을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참 사랑 한번 못하고 죽지 않는가?

 

베드로 사도가 말한 대로 부부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갈 자다. 천국에 함께 간다는 뜻이다. 천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는 없지만 모든 희미한 것들이 벗겨져 밝히 알게 된다고 한다. 이 땅에서 숨기고 있다가 그 때 가서 밝혀지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그보다 이 땅에서부터 완전히 벌거벗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현실적으로 백이면 백의 부부가 온전히 본문처럼 살지 못한다. 저희 부부 또한 그 일부만 실천할 뿐이다. 그런데 모든 부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몇 번 강조한 대로 본문의 결혼은 죄로 타락하기 전의 상태다. 하나님과 아담과 이브 각자는 순전한 교제를 하고 있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참 사랑이 가능했다. 죄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기에 사실상 숨길 것도 없었다.

 

반면에 우리 모두는 죄 아래 태어나 예수를 믿어도 그 본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신자를 포함한 모든 부부의 상태는 창세기 3:7의 상태다. 서로 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자기를 감추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옷으로 감춘 후에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8-10절). 타락 전에는 하나님과 교통에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숨을 이유도 없었다. 또 부부 사이에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12,13절)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의 티끌을 찾는 데는 능숙해졌다. 배우자의 허물만 크고 많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의 최초의 결혼 이후로 모든 세대의 모든 결혼은 죄인끼리의 결합이다. 바꿔 말해 1+1=2 혹은 1+1=1의 결혼 공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신에 0.5+0.5=1의 공식을 적요하지 않고는 부부사이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신자들 크리스천 상담가들도 성경이 계시하는 이 원리를 모른다. 모두가 자기의 허물과 죄악은 감추고 상대의 것은 들추기 바쁘다. 조금 현명한 부부는 그래봐야 서로 골치만 아프니까 짐짓 모른 척 넘어가기로 무언중에 합의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 최근의 화두다. 아주 신선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양, 또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황금률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엄격히 그 속내를 살피면 서로 부족하고 허물 많고 심지어 죄악까지도 눈을 감아주자는 뜻이지 않는가? 아주 잘 봐주어야 모르는 것이 약이요, 가만히 있으면 2등은 한다는 처세술일 뿐이다.

 

신자 부부가 지향할 모습은?

 

신자 부부는 달라야 한다. 아담의 원죄에서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참 생명을 소지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참 사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속에 여전히 자기를 앞세우는 죄의 성향이 끈질기고도 교묘하게 살아 있다. 때론 그 성향이 하나님마저 거역하는데 인간인 배우자에겐 손쉽게 그럴 수 있다. 신자도 박 터지게 부부싸움 할 수 있다. 신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그러나 자꾸만 상대를 사랑하려고만 노력하면 지금껏 우리가 경험했듯이 본문의 상태는 불가능하다. 일시적 효과뿐이다. 죄인끼리 함께 살고 있다는 확고하고도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서로 사랑할 의사가 충분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참 사랑이 불가능함을 상호 인정하는 바탕에서만 부부관계가 이뤄져야 한다.

 

또 죄인끼리 사랑하려면 연애할 때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 젊었을 때의 피 끓는 열정을 갖고 한시라도 안 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지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다. 연애할 때는 상대의 허물을 전혀 보지 않았다. 때로는 허물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했다. 상대가 요구하는 것은 어떤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채워주었다.

 

연애할 때는 물론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럴 수 있다. 또 어떻게 하든 내 사람으로 만들려니까 모른 척 할 수 있다. 결혼 하니까 이제 내 사람이 되었다. 항상 곁에 있으니 구태여 상대의 요구만 들어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차피 각자의 허물을 보며 평생 같이 살아야 하므로 그 허물을 더욱 오픈해야 하지 않는가?

 

대신에 신자 부부마저 내가 편하고, 좋고, 바라는 방향으로만 상대를 고치려 든다. 바로 자기만 높이려는 죄의 본성이 작동된 것이다. 죄인끼리 결혼이라고 해서 사랑이 없거나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래적 죄의 본성이 부부사이를 훼방하는 가장 큰 장애임을 서로를 향해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부부 각자가 매일 아침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의 본성부터 죽이는 일로 그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함을 구하여 자신의 영혼부터 정결하게 씻어야 한다. 나는 물론이고 배우자도 예수님의 죄 사함의 십자가 사랑이 없으면 한 시도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음을 절감해야 한다.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바로 설 수 없는 너무나 불쌍한 존재임을 날마다 다시 확인해야 한다. 최소한 나의 죄성으로 인해서 배우자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결단은 해야 한다.

 

신자 부부도 사랑하려 노력해야 하고 서로 다름도 인정해야 한다. 의지적 공개적으로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또 서로가 서로에게 죄인으로 서있어야 한다. 내 것으로 상대를 채워준다는 뜻도 내 속에 예수님의 권능과 은혜를 충만케 해서 함께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문자 그대로 신자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매일 발가벗고 성령의 깨끗한 씻음을 받아야 한다. 부부끼리도 정말로 단 하나도 숨길 것이 없어야 한다. 상대의 허물과 결점은 물론 죄까지도 품어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십자가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었듯이 그렇게 품어주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한 순간이라도 멀어지면 인간의 죄의 본성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나와 배우자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정말로 불쌍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확신이 있다면 자기 주장과 고집을 내세울 것이 무엇 있겠는가? 사랑으로 최소한 긍휼로 품어주지 못할 것이 무엇 있겠는가? 정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부족하고 불완전한 0.5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떤 가식과 과장과 경쟁과 시기가 개입될 여지도 없다.

 

연애할 때는 콩깍지가 씌워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허물을 받아 주었다면 신자 부부는 모든 허물을 구체적으로 다 알고도 용납해주어야 한다. 그 허물 때문에 더 불쌍하고 연약하게 여겨야 한다. 내 사랑, 아니 나를 통해 전해지는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로 내 배우자를 바로 세우고 싶고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가족끼리는 벗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도 힘든 일이 생기면 결국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이해타산 관계가 가장 적게 작용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노출할 수 있는 공동체다. 본문 표현대로 하자면 발가벗어도 덜 부끄럽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가족은 혈연을 나누었기에 본성적인 사랑이 가능하다.

 

부부는 생판 남이 만났다. 가족 같은 생래적 자연적 사랑이 생길 수는 없다. 단순히 한 몸이 되는 사랑만으로 안 된다. 부족한 0.5의 죄인의 모습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의 은밀하고도 풍성한 권능으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견고케 해준다. 또 그 사랑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도 전해지며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모두 목도하고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 안에 건설된다.

 

정말로 예수님만을 그 가정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배우자를 대하는 행동과 말과 몸짓 표정에서 은연중에라도 자기가 소지한 만큼의 예수님의 사랑이 묻어져 나와야 한다. 주님의 빛으로 서로가 서로를 밝고 깨끗케 해야 한다. 그럼 세상 부부들은 누리지도 알지도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반드시 만끽할 수 있다.

 

전 인류를 통 털어 완전한 결혼을 잠시나마 누렸던 부부는 아담과 이브뿐이다. 그들도 일순간에 죄로 인해 최악의 관계로 떨어졌다. 참 사랑을 나누다가 죄와 허물을 들춰내는 사이로 변질되었다. 그럼에도 그 전의 관계가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웠는지, 또 그와 비교해 지금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그들만큼 실감하는 부부는 없다. 우리는 온전한 결혼을 체험하지 못하고 곧바로 죄인끼리 결합한다. 지향할 온전한 목표를 모르는 셈이다. 그럼 아담과 이브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봄으로써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자기들이 만든 무화과 나뭇잎 옷으로 감춰보려 했지만 즉, 인위적 노력을 다 경주했어도 실패했다. 하나님이 짐승을 손수 잡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자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그분에 대한 두려움은 깨끗이 사라지고 이전처럼 온전한 교통이 가능해졌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은혜를 입게 되자 자기들의 잘못과 죄를 정확히 깨달았다.

 

또 그래서 엉겅퀴와 가시덤불 즉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가죽옷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절감했다. 그래서 다시는 무화과 잎 옷을 입지 않기로 했을 것이다. 이전의 실패로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갔더니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두렵고 부끄럽기만 했던 것을 온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비록 죄인끼리의 결혼으로 변질 되었어도 그들은 그전의 결혼생활의 기쁨, 만족, 행복, 의미,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다. 더더욱 서로의 결점과 허물과 죄악을 솔직히 오픈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었을 것이다. 연약하고 허물이 있음으로 더욱 불쌍히 여겼을 것이다. 서로 벌거벗었으나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던 그 관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더욱 매일 하나님과 서로를 향해 자기부터 완전히 벗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창조의 결론

 

본문이 이상적 부부와 결혼의 모습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심각하고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문은 창세기 1,2장 창조기사의 결론 격이다. 하나님이 이 땅을 가정을 통해서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방안이다. 창조의 목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부부만 죄인끼리의 결합이라 인식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하는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 인간의 모든 공동체와 관계에서 그런 인식이 확고해야 한다.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을 해도 서로가 0.5의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라도 죄인끼리 연합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반면에 세상은 모두가 자기는 완전한 1이라고 자부한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가 주인이니 서로가 도와줄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러면 오히려 귀찮은 간섭이 되다 못해 나쁜 짓 죄로 간주된다. 동성애를 죄라고 간주하는 신자들더러 내 자유를 방해하는 너희가 오히려 잘못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지 않는가? 어떤 잘못이라도 눈감고 가만히 있으라는 속내는 감춘 채 서로 다름을 인정하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포장해서 말이다.

 

어떤 인간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없이는 절대로 바로 설 수 없다. 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속에서 음란과 궤휼과 거짓만 끝없이 나온다. 그러니 평생을 두고도 서로 벌거벗을 수 없다. 겉으로만 학력, 재력, 권력, 용모로 치장 아니 변장하기 바쁘다.

 

신자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완전히 발가벗어본 체험이 있다. 또 그런 자들끼리 부부로 결합되었다. 서로에게도 그리 못할 이유가 없다. 동일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정말 벌거벗고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힘들기에 매일 아침 각자가 하나님 앞에 먼저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벗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 바로 그 씻음을 잘 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배우고 훈련 받는 것이다.

 

지난주에 목사와 장로는 서로 부족한 0.5로 대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상대가 없으면 목사로, 장로로 역할을 전혀 못한다는 인식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교인이 백 명인 교회라면 목사도 1/100의 동일한 신분과 위치와 권세를 지닌다고 했다. 이번 주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모두가 1/100밖에 안 되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교회 생활 열심히 해도 십자가 은혜가 없으면 한 시도 인간 구실을 못한다. 교회 지체들끼리 모두가 죄인의 입장에 서야 한다.

 

작금 기독교가 쇠퇴한다고 난리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은 오직 하나다. 목사와 장로와 교인들끼리 모두가 0.5의 부족한 존재를 넘어 주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품어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부부 사이, 아니 부모 자식 간에도 안 되는데 어떻게 교회에서 가능하겠는가?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 모두 죄인이며 예수 십자가 외에 소망은 없다.

 

그럼에도 기독교가 부흥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쉽고 절묘한 방안이 하나 있다. 교회 재정 장부를 모든 교인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교인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온당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럼 감히 장담하건대 교회는 금방 부흥될 것이다. 재정 장부를 누구에게나 언제든 열람이 가능하게 해야 즉, 교회부터 벌거벗었으나 부끄럼이 없어야 교인들이 배우고 따를 것 아닌가?

 

이 간단한 일도 하지 않고 아무리 교회 부흥을 위해 대책을 세워야 소용이 없다. 교회성장 세미나, 부부관계세미나 백번을 해도 교회나 가정이 부흥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성경을 모르고 창조를 의심하며 예수를 믿지 않는 꼴이다.

 

정말로 주위 사람을 돌아보라. 단 한 명이라도 불쌍하지 않은 자 있는가?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더더욱 불쌍하지 않는가? 교회 안에 목사, 장로, 집사, 신자 모두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부부 사이에만 그런 긍휼의 관계가 생기지 않는가?

 

이야말로 인간이 죄로 찌들었다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이지 않는가? 그러니까 더더욱 죄인끼리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부부관계의 모든 문제해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 없이는 인류에게 소망은 전혀 없으며 모든 사람이 그분의 긍휼 안에 들어와야만 한다는 것이 이 땅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이다.

 

8/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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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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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구별을 분별해야 신자다.(출애굽기강해#23-출9:1-7)

차별과 구별을 분별해야 신자다. 출애굽기 강해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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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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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좌파와 우파의 공통된 잘못(출애굽기강해#24-출9:4)

기독교 좌파와 우파의 공통된 잘못 출애굽기 강해 (24)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출9:4) 유대인에게 부족했던 딱 하나 하나님은 사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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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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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혀를 움직이지 않게 하는 하나님(출애굽기강해#25-출11:1-8)

개의 혀를 움직이지 않게 하는 하나님 출애굽기 강해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백성에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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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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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출애굽기강해#26-출12:21-28)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출애굽기 강해 (26)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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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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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보다 못한 목사(출애굽기강해#27-출12:29-36)

“가룟 유다보다 못한 목사” 출애굽기 강해 (27)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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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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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받을 일밖에 남지 않았다.(출애굽기강해#28-출12:29-36)

“은혜 받을 일밖에 남지 않았다.” 출애굽기 강해 (28)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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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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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하고 신령한 부부관계(수련회 주일예배 - 벧전3:1-7)

숭고하고 신령한 부부관계 정기수련회 주일예배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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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05
  • 조회 수 272

구름 불기둥은 은혜도 아니다.(출애굽기강해#29-출13:17-22)

구름과 불기둥은 은혜도 아니다. 출애굽기 강해 (29)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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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0
  • 조회 수 506

믿음이 자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출애굽기강해#30-출14:10-14)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 출애굽기 강해 (3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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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8
  • 조회 수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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