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질문]
저는 지금 20대 후반의 나이에 한 번도 연애다운 연애를 못해봤습니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위축될 때가 많았습니다. 자존감도 원래 낮았고 스스로도 자신이 맘에 안 들어서 용기도 없었습니다. 배우자 기도도 많이 했는데도 여전합니다. 연애를 못한 것이 제가 용기가 없이 도전하지 않고 다가가지 못한 걸까요? 저는 순적하게 만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고 또 언젠가 순적한 만남을 이뤄주시겠지만 자꾸 시간만 흘러 갑갑합니다. 그 사이에 제가 스스로 기회도 못 만들고 시간을 날려버린 제 잘못이겠죠? 내 잘못이라고 인정해야 하나님께 대한 원망하는 마음도 사그라질 것 같습니다만. 이젠 닥치는 대로 만나볼까도 생각중입니다.
[답변]
결론적으로 말해 말씀하신 대로 도전하지 않고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에게 배우자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신다고 너무 단순하게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순적하게 만나게 해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그것도 꼭 기도자의 요구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합력하여 선하시게 만드시는 섭리 안에서, 만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면 기도한 그대로 그것도 금방 만나게 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배우자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기도한 그대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만 합니다. 가령 믿음이 좋고 외적인 조건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히 대하고 미적 센스가 있는 여자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칩시다. 그럼 교회 청년부모임(믿음이 좋은)과 사회봉사활동(사람들에게 친절한)과 미술동호회(미적 센스가 있는) 등에 적극 참여해서 그런 조건에 맞는 여자를 찾아야 하고 찾으면 과감하게 접근하여야 합니다.
배우자 기도했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뿅”하고 그에 맞는 상대를 눈앞에 데려다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주고 그 여자도 자신을 금방 좋아해 주리라 생각하면 그만큼 큰 착각도 없습니다. 엄격히 말해 그것은 믿음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구할 때에 충직한 종이 주인 아브라함이 기도한 대로 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이방 여인이 아니라 고향 족속에게서 며느리를 취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종에게 기꺼이 고향을 떠나 신랑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으로 오겠다는, 바꿔 말해 믿음이 좋고 신랑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신붓감을 구해오라고 명했습니다.
종도 주인의 기도한 조건에 맞는 처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그런 여자인 줄 알 수 있는 징조도 구했습니다. 그 징조가 이뤄 진 것을 두고 성경은 순적하게 만나게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이제 여러 여인들을 만나겠지만 기도한 조건에 합당해 함께 가나안으로 데려갈 여자가 누구인지 알게 해달라는 징조를 구한 것입니다. 성경에 일일이 기록을 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신붓감을 찾아봤다는, 최소한 찾아보겠다는 뜻입니다. 또 그 전에 종은 아브라함이 기도한 대로 고향땅까지 먼 길을 여행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우자 기도를 하면서 거의 모든 기독청년들이 범하는 아주 큰 잘못이 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조건은 까다롭게(?) 많이 정해서 기도하면서 정작 본인은 그 상대에게 충족한 배우자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기도와 그 실천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못합니다. 배우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독선적 이기적인 생각뿐입니다. 거기다 다른 청년들은 무작정 가리지 않고 연애하지만 자기는 배우자를 구하는 기도를 했으니 자신이 의롭고 믿음이 좋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기가 원하는 조건에 합당한 상대도 배우자 기도를 하고 있으면 쌍방의 조건이 일치하는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일 것입니다. 그래도 능치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이 금방 만나게 해주시리라 기적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배우자기도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아무 열매가 없다고 하나님께 원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상기 예를 든 기도를 했으면 본인도 자기 믿음을 성장시켜야 하고, 외적조건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미적 센스도 갖추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대화가 통해 의견대립이 적어서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자신이 어떤 여자(남자)를 만나도 그 여자(남자)와 예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게끔 준비 훈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배우자로서 하자가 없는 교양, 태도, 성품, 인격, 현실적 실력(아주 중요함), 건강, 믿음 등을 갖추려고 성실하게 노력 실천해야 합니다. 배우자를 구하는 기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고 먼저 행해야 할 바입니다.
단순한 논리이지만 두 사람이 각각 구하는 배우자 조건이 합치하기는 아주 확률이 낮지만 본인부터 그렇게 노력하면 일단 50%는 맞아 떨어진 셈입니다. 누구를 만나도 합당한 배우자감이 이미 되어져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후에 본인이 원하는 배우자감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면 훨씬 쉽게 성사될 것 아닙니까?
나아가 말씀하신 대로 닥치는 대로 만나는 것이 오히려 더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 절대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여러 번 자주 만나고 특별히 힘든 경우를 함께 겪어봐야 그 사람의 본 모습을 그것도 겨우 알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기도한 조건대로 어느 날 눈앞에 ‘뿅’하고 나타났다면 자칫 외적 모습만 보게 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배우자 기도하고 기다리지 말고 여러 사람을 자연스레 적극적으로 만나셔야 합니다.
질문자님의 경우에 더더욱 본인부터 어느 상대에게나 합당한 배우자감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존감이 너무 낮고 그래서 용기도 없다고 했습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자존감이 낮다고 여기는 것은 추측컨대 현실적 외적 조건 위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적으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귀한 신분 위치 소속 특권에 대한 확신은 물론 당당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또 주님이 주신 남들이 갖지 못한 질문자님만의 재능과 은사가, 현실적으로는 장점과 특성은 물론 질문자님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소명도 분명 있습니다. 달란트비유대로 게으르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먼저 되어 있으면 당연히 주님이 기뻐하시는, 질문자님 개인적 선호도가 아닌, 배우자도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십니다.
7/9/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