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기자들은 어떻게 말씀을 기록했나요?
[질문]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 승천 후 사도생활을 하면서 복음서를 기록했을 텐데 어떻게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적은건가요? 예수님이 죽으실 때 제자들이 다 떠나고 다시 성령을 받고 회심을 경험하기까지 공백이 꽤 있었을 텐데, 어떻게 마치 옆에서 들은 것처럼 그렇게 자세하고도 사실적으로 적을 수 있었죠? 일주일만 지나도 그 사람의 말한 그대로를 기억할 수 없을 텐데, 그냥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답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실 주제입니다. 그런데 질문 안에 사실상 답의 일부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이 땅에서 사십 일간 제자들과 때때로 교제하신 후에(행1:3) 승천하여 천국보좌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열흘 후인 오순절에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백이십 명의 제자들에게 강력하게 임재했습니다.(행2:1) 예수님이 이 땅에 안 계시고 당신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 오실 때까지의 공백은 열흘 밖에 안 되었습니다.
바로 그 오순절에 베드로가 성전에서 설교하자 그날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자가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행2:41) 그 후에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사도들에게 온갖 표적이 나타났으며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행2:42-47) 질문자님이 우려했던 만큼 예수님을 쉽게 잊을만한 시간적 간격은 없었고 또 잊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제일 먼저 신자라면 반드시 기억하셔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삼년 간 동고동락하면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내용이나 공사역을 바로 옆에서 참관 혹은 동참했던 일들은 제자들에겐 정말로 엄청난 체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인간 랍비와는 아예 달랐고 모든 가르침과 사역들이 생전 처음 듣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인들도 그렇게 느꼈는데 함께 기숙하며 도왔던 제자들에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1:27)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자 귀신들린 자가 메시아임을 제일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주님이 그 사람을 꾸짖고는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자 귀신이 쫓겨나가고 그 사람은 경련을 일으킨 후에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회당에 있던 유대인들이 “이는 어찜이냐?”고 서로 물으며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놀랐습니다. 도무지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했던 바리새인들마저 그 점은 인정했습니다.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마22:16) 비록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려는 음모를 안고 한 말이지만 전혀 빈말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바리새인으로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도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3:2)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권위 있는 가르침과 표적들이라 모두가 선명히 기억하는 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동일한 가르침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극히 일부분으로 저자들이 특별히 강조하려는 의미에 맞추어서 선별된 것입니다. 떡과 물고기 몇 개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인 기적이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고, 복음서들에 중복되는 가르침들이 있는데 실제로 동일한 가르침과 기적들이 여러 번 있었다는 뜻입니다. 자연스레 가르침의 내용을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
고대에는 현대식 오디오 시설이 없어서 수많은 청중들을 대상으로 연설 같은 것을 할 때는 중간 중간에 서서 그대로 다시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오병이어 기적 때에 총 이만여명이 모인 것으로 봅니다. 그럼 맨 끝에 앉은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정확히 듣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떡만 나눠준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도 그대로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오병이어를 비롯한 기적의 현장에는 설교 내용이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유 외에 틀림없이 설교도 했을 것이지만 산상수훈 같이 이미 가르친 내용을 반복하셨기에 구태여 기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자들이 동일한 주님 말씀을 계속 대변해야 하는 기회가 많았기에 정확히 외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때에도 제자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그 내용을 통역해주었습니다.(행2:5-13)
거기다 그런 반복적인 가르침과 사역의 현장에 있었던 제자들이 열두 명만이 아닙니다. 아주 많았습니다. 그 많은 이들이 그 너무나도 생생했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일부 제자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개인적으로 기록해 놓았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당시의 유대 랍비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은 스승과 함께 기거하면서 제자들이 스승의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끼리만 있을 때에 주님의 가르침을 경쟁적으로 복습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기도하다 성령을 받았던 자들만 백이십 명이었습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고전15:6) 부활의 증인은 오백 명 정도 되었었는데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저작할 때에 즉, 사도들이 복음서를 저작했던 시기에 대다수가 살아있었습니다. 만약 복음서에 오류가 있다면 다른 제자들과 일반 증인들에 의해서 당대에 그 오류는 드러나게 되며 성경이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 유일하게 일찍 순교하지 않고 백세 가량 살았습니다. 그가 복음서들보다 한 세대(약30년) 뒤에 저작한 요한일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그 때까지도 스승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열흘 만에 성령의 권능을 입은 베드로는 삼천 명이나 회심시키는 엄청난 설교를 했습니다. 그 후에 날마다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고 전도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설교와 전도의 주 내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레 예배와 전도에 활용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사건과 가르침들이 기록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복음서로 종합되기 전에 이미 전도지 같이 단편적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담은 글들이 많이 작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신자들이 익히 알고 있고 기독교 신앙의 요체라 할 수 있는 빌립보서 2:6-11은 바울 본인의 저작이 아닙니다. 당시 교회 안에서 예배 시에 이미 암송되고 있던 찬양 시 형태의 신앙고백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교회가 예배 때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듯이 말입니다. 그 외에도 신약성경에는 그와 유사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경배 시들을 곳곳에 인용해 놓았습니다. 복음서가 저작되기 훨씬 전부터 예배나 모임을 통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 활용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특별히 예수님과 당대에 살았던 제일 세대의 경우에는 순전히 예수님에 대해 기념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되풀이해서 생전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과 십자가 사건을 다시 회상하고 주님에 대해 깨달은 진리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주된 절차였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그런 기념 회상에 함께 했기에 예수님의 이야기는 더더욱 정확하게 기억되어졌고 예배 전도와 성도들의 교육을 위해 책으로 저작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복음이 염병처럼 번지자 서서히 이단과 거짓 선생들의 훼방이 생겼고 그들의 영적 궤변에 대항하여 참 진리를 변증 보존할 필요성 때문에라도 복음서를 필두로 신약성경들이 저작된 것입니다.
그 일련의 과정에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제자들끼리 스승에 관해 회상하고, 또 그 이야기들이 구전 내지 쪽지로 전승되고, 서서히 예배 시에 서로 나누고 설교로 활용하며, 교회가 활용할 목적으로 기록 보존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복음서를 저작할 때에 저자에게 영감을 주어서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정확하게 기록케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21)
복음서 기자들은 자기들이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도 수없이 많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각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일부 사건들을 골라서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편집 저작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 독자를 상대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예수를, 마가는 로마 이방인을 상대로 권능을 행사하는 하나님 예수를, 누가는 모든 이를 독자로 삼아서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시는 인자 예수를 그려냈습니다.
요한은 이 세 복음서와는 한 세대 뒤에 즉, 예수를 직접 목격한 세대가 다 죽은 후에 예수와 예수 사건에 대한 신학적 해석 위주로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의 독자들은 주님의 기적은 물론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직접 목격했기에 그분이 메시아임을 전혀 의심치 않았습니다. 세 복음서는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전기만 기록했어도 되었습니다. 반면에 시간이 흐르자 이단의 공격도 심해지는데다 새 세대에겐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아무래도 피부에 와 닿지 않기에 신학적으로 해석해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특정 주제를 갖고 기록했다고 해서 없던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 기록하면 보관할 장소도 모자랄 그 많은 주님의 가르침과 사역 중에 그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골라서 독자에게 저작 의도가 잘 전달되도록 저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들에게 전혀 문제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님의 생애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이야기로만 이뤄졌습니다. 일반 인간의 전기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 없었던 생전 처음 보고 듣는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현장에 함께 참여했었기에 바로 제자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주님 승천 이후에 모일 때마다 기념 회상했고 설교와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책으로 편집 저작할 때에 성령이 정미하고도 완전하게 역사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정말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입니다. 특별히 사탄에 미혹되어 죄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오류가 있다면 구원 자체에도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천하 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거룩하게 가르치시며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당신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이 그런 오류를 방치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11/8/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