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7:10-12) 바울이 독신주의를 주장했는가요?
[질문]
고린도전서 7:10-12의 말씀들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10절에서는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고 해놓고, 12절에선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사실상 하나님이 주신 계시가 아닌지요? 모든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라고 하니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답변]
이혼 금지의 강조
성경에 간혹 괄호( ) 친 말씀이 나옵니다. 대다수 사본에는 없고 소수의 사본에만 있어서 후대에 첨가된 말씀으로 추측된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구텐베르그가 1440년 경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는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서 썼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후대의 필사자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원문만으로는 성경독자들이 잘못되게 혹은 부족하게 해석할 것을 염려하여서 원문의 뜻과 상충되지 않는 범위에서 보충한 것입니다. 고전 7:10-12에 세 번 나오는 ( )는 바울 본인이 첨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고 일인칭 주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 )를 첨가했느냐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 )가 없다고 가정해서 읽어보면 바울이 의도한 원래 의미가 됩니다. 그 후에 ( )를 추가해서 읽고서 서로 비교해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앞뒤 문맥에서 말하는 내용과 주제에 비춰봐야 합니다. 먼저 ( )를 빼고 살펴봅시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고전7:10-12)
한마디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혼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결코 비혼주의자나 독신주의자가 아니라는 뜻이며 상기 구절에서도 혼동할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 )로 보충한 것으로 인해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제 각 괄호 안의 말을 추가시켜서 그 의미와 그렇게 추가한 이유를 따져봅시다.
우선 10절에서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도라도 인간이 인간에게 명령할 수는 없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록 사도가 명한다고 말했지만 성령의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명으로 받아야 한다는 뜻을 괄호 안에 첨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11절은 (만일 갈릴찌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는 바로 앞 10절 후반의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를 보충 설명한 것입니다. 여자는 능동적으로 나서서 이혼을 요구하지 말라는 뜻을 강조한 것입니다.
문제는 12절의 괄호입니다.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일하게 이혼하지 말라는 내용을 말하면서 앞선 10절에선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라고 해놓고 이번에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이 또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첨가한 것으로 10절과 12절의 번역을 잘 보아야 합니다. 10절은 명하노니(command), 12절은 말하노니(speak)로 우리말(영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헬라 원어가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요컨대 12절에는 바울이 분명하게 “내가 말하노니”라고 했기에 (주의 명령이 아니라고) 덧붙인 것입니다. 반면에 10절은 바울이 감히 명한다고 했으니 바울이 인간이 아닌 사도로서 성령에 영감에 따랐다고 해도 명령은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서두에 설명한 대로 그 세 ( )를 빼고 원문대로 읽어보십시오. 자기 개인 의견이라고 말한 것으로 오해나 시비 거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고 7:6에서 그런 뜻을 본인이 먼저 밝혀놓았습니다.
독신주의를 주장하는가?
문제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1절)와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나.”(8절)의 두 구절입니다. 질문하신 대로 아무리 개인 의견이라고 해도 사도가 성령의 영감을 받고 성경을 저작했는데 가정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경륜은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상충되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자기 의견이라고 밝힌 7:6에서 “이 말을 함”이 앞의 1-5절 혹은 뒤의 7절 이하를 가르치는지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대체로 7절 이하를 뜻한다고 보는데 둘 다를 지칭한다고 봐도 의미의 흐름에 무리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혼을 가능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따져서 이혼을 강력히 금하고 있는 바울이 자기 의견과 반대되는 비혼(非婚)주의를 주장했을 리는 없습니다. 이 두 구절의 의미를 알려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을 쓰게 된 당시 상황에 대해서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신약교회의 초기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자기들 당대에 이뤄질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필연적으로 사도들은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재림이 임박한 상황에서 모두가 선교에 헌신해야 하므로 한시적이라는 조건 하에 독신주의는 그런대로 합당한 가르침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재림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독신주의는 하나님의 영적 진리와 모순된다는 점을 바울도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 개인 의견이라고 밝힐 필요가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 안에 발생한 여러 가지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과 권면을 기록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이혼에 관해 가르치는 7장은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1절)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는” 즉,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대답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쓴 문제”라고 해서 항상 그러하듯이 수(數)의 개념이 모호한데 원어로는 복수입니다. “쓴 문제들”로 번역해야 뜻이 더 정확해집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질문해온 여러 문제들에 대해 7-16장까지 답변하고 있고 그 중에 이혼 문제를 가장 먼저 7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는 바울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에서 사용한 말을 인용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김세윤 저작, 성서유니온 2008년 발간, P 69-70) 김 교수님의 해석을 간단히 발췌 제 말로 바꿔서 인용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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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적 이원론적 사고에 젖은 성도들이 구원 얻은 신자는 영혼의 정결함을 유지함이 가장 중요하고 육체적 향락을 취하는 것, 특별히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더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이혼 운동을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1절은 그들의 구호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말을 인용한 후에 “(그 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나”라고 하면서 그 오류를 고쳐주기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말을 이어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음행이 조장될 우려가 많으니 반드시 결혼해야 하고, 결혼한 상태에 있는 자들은 헤어지지 말고 결혼 관계를 유지하라고 권면하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는 반드시 고린도 교회의 특수상황에 대한 지침서라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에 관한 바울의 의견도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 이방인들과 혼합 결혼한 자들이 많은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10절)고 한 것은 예수님은 유대사회에서만 사역했으므로 이방인과의 혼합결혼에 대해서 가르친 적이 없다는 뜻이 내포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결혼에 관해 명하신 말씀들의(막10:9-12, 마5:32 19:6-9, 눅16:18) 근본 의미에 비추면 주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사도의 권한으로써 주님이 명한 것이나 다름없이 명한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12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이 주로 상대한 자들은 유대인 부부들로 남편과 아내 다 여호와 유대교 신앙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혼합 결혼하여 한 쪽만 신자인 경우에 대해선 주님이 가르치신 적이 없기에 주의 명령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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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님의 분석대로 바울이 10-11절은 부부가 다 신자인 경우, 12절은 한 쪽만 신자인 경우를 두고 말한 것으로 해석하면 논리적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유대인이던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부부 둘 다 신자인 경우와 혼자만 신자인 부부를 나눈 것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니까 바울이 왜 처음에는 주의 말이라고 했다가, 두 번째는 바울 자기 말이라고 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림에 대비한 바울의 개인 의견이었던, 고린도 교인의 잘못된 의견을 고치려는 권면이었던 바울이 7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뜻은 동일합니다. 1) 임박한 재림을 대비하거나 영혼을 경건히 유지하고 주의 일에 헌신하려면 자기처럼 독신으로 있는 것(바울의 결혼 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그가 선교사역을 혼자서 행한 것은 분명함)이 도움이 된다. 2) 그러나 음행할 연고가 있으므로 결혼을 하는 것이 좋고 결혼했으면 헤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는 독신주의나 경건주의를 결코 주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2/20/2019
오래 전에 한 기독청년이 개인적으로 카톡으로 질문해서 카톡으로 응답하고 말았는데, 최근에 다시 결혼을 앞둔 기독청년이 개인적으로 질문해와서 보완 정리하여 올립니다. 기독청년들이여! 성경은 독신주의를 결코 권면하지 않으니 안심하고 연애하고 결혼하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