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민족주의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나요?
[질문]
최근 성경을 읽다보니 '민족주의'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인공으로 서술해나가는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어서 그들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현대에도 하나님께서 '민족적인 기준'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들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들에게만 원하는 것들 또는 미국인에게만 원하고 이끄시는 모습 등이 있는지요?
[답변]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신 하나님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6,27)
주신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답이 되는 구절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 선교하러 가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교한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먼저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한 혈통으로 만들었다면 여러 족속으로 나눠지게 된 것은 창조 당시에 당신께서 계획하신 바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아담과 이브라는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당신을 대신하는 청지기 직분을 맡아 이 땅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다스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분은 인간과 함께 친밀하게 교제하며 인간의 경배를 받고 싶어 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1항이 말하듯이 인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거역한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원죄 하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원죄가 아담의 장남 가인이 친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모습으로 드러났고 점차 그 후손들에 의해 발전 확장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해져”(창8:21) 그 절정에 이르자 하나님은 노아 홍수로 심판했습니다.
노아의 후손들도 원죄의 본성에 묶여있어서 죄를 계속 짓기는 마찬가지였고 하나님을 직접 대적하려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4) 인간이 하늘에까지 닿으려 했는데 혹시라도 홍수 같은 심판을 당해도 스스로 이겨내고 살아남을 방도를 도모한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께 겸손히 순복하면 아예 흩어짐 자체가 없을 텐데도 거꾸로 하나님의 간섭을 막아내고 죄 가운데 마음껏 쾌락을 즐기며 살려는 뜻이었습니다.
바벨탑을 쌓기 전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고 민족들도 나눠지지 않았습니다.(창11:1) 너무나도 교만하고 사악한 바벨탑을 하나님이 그냥 두고 보실 리는 없습니다. 인간이 언어가 하나이면 계속해서 동일한 시도를 할 것이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창11:6-9)
바울은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한 혈통으로 만들었지만 인간의 반역 때문에 여러 민족으로 나눠 온 땅에 흩어져 살게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인용하며 설교한 까닭은 아테네 시내 곳곳에 우상 신상들은 물론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라는 단까지 세워져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한 분 뿐임을 가르치고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받아드리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다.
바울은 이어서 “민족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고대의 민족은 오늘날의 국가로 대체가능합니다. 그럼 연대는 나라별 생존기간을 뜻하고 거주의 경계는 국경이 됩니다. 한마디로 모든 세대의 모든 민족(나라)의 역사를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의 뜻을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영원토록 당신을 즐거워하게 하려고 창조하셨던 그 목적과 동일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각 민족의 역사를 각기 다르게 주관하시되 오직 당신의 나라를 확장하려는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만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이의 조상으로 택할 때도 그로 인해 열방이 당신의 복을 받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 이 약속은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 이어졌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구해내신 후에 재확인되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이스라엘은 모든 인간을 대표하여서 처음으로 그분의 거룩한 통치에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거꾸로 가나안 족속의 우상숭배의 죄악에 오염되어서 그 소명 실현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맡았던 역할을 새 이스라엘인 교회에 부여했습니다.(롬9:6-9,30-31)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실패했기에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죄가 인간 세상에 들어오게 한 원흉인 사탄에게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태초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기에 이스라엘이 실패할 줄을 다 아시고도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5,16)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을 창조했고, 예수님을 위해서 세상을 이끌고 계시며, 예수님에 의해서 세상 구원이 완성될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요컨대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역사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더 많은 이들에게 베풀어지게 하는 목적과 방향으로만 이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대위임령을 주신 것입니다.
각 민족은 하나님 드라마의 배우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복음이 확장되는 한 가지 목적과 방향으로 주관하신다고 해서 기독교 국가에게 현실적으로 풍요해지는 축복을 주신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그럼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기복주의 신앙으로 전락됩니다. 그러나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일본, 이미 세속화된 유럽의 선진국들, 심지어 공산국가인 중국의 경제적 부흥은 기독교 신앙과 아무 연관이 없지 않습니까? 이젠 크리스천 국가로 분류될 나라도 사실상 없어졌습니다. 겨우 미국 하나 들 수 있지만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아주 적습니다.
물론 신자들이 성경적인 세계관 가치관을 갖고서 정직 검소 성실하게 하나님의 청지기 소명을 실현해나감으로써 인간 삶의 여러 측면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왔습니다. 인류의 유익이 되는 의로운 발전들이 기독교 신자들에게 신세진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도 신자는 자기 맡은 분야에서 영적으로만 아니라 현실적인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민족의 연대와 거주의 한계를 정하셨다는 가장 기본적인 뜻은 각 나라가 그 나라에 허용된 여건과 상황에서 국민의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또 나라 별로 선의의 긍정적인 경쟁은 하되 절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경제적으로 조종 수탈 지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모든 나라가 한 혈통이므로 뒤처지는 나라를 앞서가는 나라가 양껏 도와서 다 함께 번영, 최소한 공존하라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태초부터 예수 십자가를 통한 인류구속이라는 영원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든 인간과 그 모든 공동체는 하나님이 마련해놓은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며 각 시대와 장소는 그 드라마가 공연되는 무대의 배경 장치 도구들입니다. 개인과 공동체 모두 하나님이 맡겨주신 역할만 각기 다를 뿐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십니다. 신자와 그 공동체는 비중이 큰 조연배우이고 불신자와 그 공동체는 단역배우들입니다. 대표적인 예 몇 개만 들어보겠습니다.
구약시대의 인류역사는 인간 죄악의 발달사로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던 이유와 배경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열방 앞에 제사장 나라로 서라는 소명을 부여했고 그래서 당신께서 그들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여 온갖 은혜와 권능을 베풀어주셨음에도 철저하게 실패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결국은 메시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죄인의 대표로 쓰임 받았습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연안에 큰 제국을 세웠고 로마제국이 그것을 승계 확장시켰습니다. 세속역사의 관점에선 정치적 승리를 통해 풍요로운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류구속사라는 관점에선 초대교회에 예수님의 복음이 염병처럼 번져나가게 하는 무대장치였을 뿐입니다. 헬라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었고 로마는 전쟁을 없애고 도로를 정비해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십자가군병이 되어서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데에 장애나 불편이 없게끔 하나님이 간섭 주관하신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나뉘고 자연히 나라도 나뉘었습니다. 인간이 함께 모의해서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사역이 완성되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입은 베드로가 복음을 선포하자 하루 만에 삼천 명이나 회심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사도들로부터 자기 나라 방언으로 복음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2:11)크게 놀랐습니다. 성령 안에서 십자가 복음이라는 언어로 다시 온 민족들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신약시대 이후로 하나님이 인류역사를 이끌어가는 목적이자 방향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사태로 인류가 여태껏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없으며 모든 이가 집에 격리되어 외출마저 금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급속도로 확장 발전되어오던 세계화가 멈추고 거꾸로 각 나라마다 국경 장벽을 높이고 경제적 정치적 교류는 대폭 축소 중지될 판입니다.
영적으로 따지면 함께 모여서 모의를 못하도록 하는 제2의 바벨탑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된 것은 분명히 인간의 실수이자 책임이지만 궁극적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물질적 탐욕에 눈이 먼 각 나라가 무제한적이고도 무차별적인 경쟁으로 자연 환경을 훼손시키고 온갖 죄악으로 인간사회를 타락시킨 잘못에 대한 일종의 심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 하나로 모든 인간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어서 빨리 당신께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사랑의 호소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이 복음 확장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으로 역사를 이끄신다는 증거입니다.
민족주의와 복음주의
“한국이나 미국 등에 민족적인 기준으로 특별하게 원하시거나 이끌어 가는 것들이 있을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진술입니다. 우선 하나님이 각 나라의 역사를 그 나라에 합당하게 이끌고 계신다는 측면에서 맞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그분의 인류구속 드라마의 조연 혹은 단역 배우들로 역할을 각기 다르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각기 다르게 간섭하심이 각 나라마다 각기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차원에선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각 나라를 개별적으로 부흥 혹은 쇠퇴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모든 나라가 찬송하게 하는 한 가지뿐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 안에서 민족주의(民族主義)의 실현은 없고 오직 복음주의(福音主義)의 확장만 있습니다. 여기서 민족주의는 단순히 민족이나 국가를 위하고 사랑하며 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민족의 공존과 번영이라는 가치를 어떤 일을 결정하고 시행함에 최우선적인 이유와 근거로 삼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주의도 당연히 그러함을 뜻합니다.
일본의 강점에서 해방된 한국민족은 앞으로 세울 나라가 지향할 진로에 대해 진보와 보수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극렬히 대립했고 그 결과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진보진영은 민족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공산주의와 타협 포용해도 된다는 자세를 취했으며, 반대로 보수진영은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 포용할 수 없으니 민족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택했습니다.
지금 그 둘의 우열을 비교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그럴만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습니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무엇이 되었든 전부 인간이 고안한 인간의 이념체계입니다. 각기 장단점이 있기에 그로 인해 인간사회가 발전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여러 병폐와 부작용도 함께 드러납니다. 어느 하나가 최선이라고 말할 수 없고 반드시 상호 보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성과나 열매에 대해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역사가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평가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 분별 판단 규정하는 틀 안에 묶입니다.
세계사(World history)는 복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하나님 그분의 역사(His-story) - 전문용어로 하나님의 구속역사(Redemption History)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4,5)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신약시대의 위대한 사도 바울과 베드로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뜻은 모든 이가 구원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고 그럼으로써 아무도 멸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한명 빠짐없이 구원으로 이끄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분의 소원일 뿐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진리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제한했기에 예수 밖에 있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베드로도 가능한 많이 회개하도록 오래 참으시지만 심판의 날은 더디지 않게 온다고 했으니 회개치 않는 자는 심판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선 바울은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2:7)고 이어서 말합니다. 신자들더러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베드로 사도도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4 &18)고 권면합니다. 신자들이 북음 위에 굳건히 서서 핍박을 이겨내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라고 즉, 삶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복음주의의 실현이 그분의 계획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민족, 인종, 문화, 종교,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당신 안에서 서로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아름답게 창조하신 모습으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스스로가 고안한 민족주의 같은 이데올르기에 묶여서 그분께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자력으로 이 땅에 낙원을 실현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끝까지 완악하게 하나님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실낙원(失樂園)의 상태에 있으며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꿔줄 때에 비로소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그와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원수까지 사랑하며 자기는 땅에 떨어져 죽더라도 사탄에게 미혹된 영혼들로 주님의 십자가 생명으로 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신자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만든 특정한 이념체계 아래 살 수 밖에 없지만 그것에 묶이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 인간사회를 주관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날로 주님을 닮아가며 자기가 속한 공동체부터 예수님만을 머리로 모시는 사랑의 공동체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5/18/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