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건강하시죠? 연말이라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실텐데 다가오는 새해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목사님, 열심히 로마서를 묵상하면서 바울에 관한 '새 관점' 이론들을 여기저기 검색하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별거 아니겠지 생각하고 넘어갔다가 (부족한 지성으로)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보며 "새 관점"이 상당히 그럴싸하고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개혁주의 구원론 (이신칭의) 과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이신칭의"를 중심으로 단 번에 이루어진 구원을 강조한다면, 새 관점에서는 (제가 정확히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보수주의 측에서는 당연히 이를 '반 펠라기우스적' 이다고 하면서 반박을하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새 관점' 학파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엄청나게 설득력 있고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왜냐하면 이들은 1세기 유대 문헌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등, 설득력 있고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기에...)
보수파 교회들의 반박은 그저 자기들이 믿고 있는 기존 교리에 대한 강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언가 저들이 강력한 핵심자료와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1세기 유대 문헌에 대한 충분한 논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그런 자료가 있을까요..)
새 관점에 대해서 안 봤으면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고 거리낌이 없었을 텐데 하필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것저것 읽어보다가 "과연 내가 믿고 있는 구원론이 올바른 구원론인가?" 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 이 새 관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아니라고하고 무시하고 거부하는게 정답일까요? 아니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그리고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중요한 구원론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해석들이 나오는 것을 허용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이 지금 살아있지 않아서 그가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어떤 관점으로 구원론을 서술하였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 속에서 이런저런 구원론에 관한 해석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들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이며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인지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그저 기존의 해석과 맞지 않으니 거부하는게 맞는건지, 아니면 무언가 기존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어렵습니다 목사님 도와주십시오..
새관점에 관해선 세계적으로 바울 신학의 대가이자 마침 그 분야의 전문가이신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인 김세윤 박사가 쓴 아래 두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권 다 김박사가 영어로 쓴 관련 논문을 다시 한국어로 재번역한 것입니다. 새관점이 왜 어떤 면에서 잘못되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박사의 구원유보론에 대해선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지만 새관점을 바울신학과 비교하는 데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바울신학과 새관점 - 두란노 출판
예수와 바울 - 두란노 출판
이제 성경연구가 목회자를 넘어서 신학자 수준까지 일취월장하셨네요. ^0^
그리고 구원론이 너무 중구난방이라 일반 성도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원론은 사실은 성경공부 등을 통해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불신자 시절의 영적 상태와 또 성령으로 거듭난 체험을 각 교단이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비교하기 전에, 성경이 말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구원이 진실인지 아닌지부터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럼 그 많은 구원교리 중에서 어느 것이 진리인지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성경은 물론 신학을 알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구원 받은 체험을 성경과 신학을 통해 진리인줄 확인하는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대면한 실제 체험이 있다면 여러 구원론으로 곤혹스러워할 것이 하나 없고 오직 하나만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인 줄 확신하게(딤후3:14-17) 된다는 뜻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