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거듭났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최근에 믿음 생활에 이런저런 회의가 생겼습니다. 제가 과연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인지 도무지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구체적으로 문의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1.

 

목사님의 이전 글에서 구원에는 “자신이 답 없는 죄인임을 절감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런 절망의 상태에 떨어졌을 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읽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완악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옥 가도 할 말 없는 죄인이면 하나님이 나를 택하지 않으셨을 가능성도 인정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자꾸 듭니다. 죄인임을 안 상태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데, 그러면 뭔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제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것 같고 가짜 믿음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얻어진 믿음은 내가 노력해서 믿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특징이 있어서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은 상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믿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요지는 성령님이 믿게 하신 것과 인간이 스스로 믿은 것을 자신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답변 1. 

 

“지옥 가도 할 말 없는 죄인이면 하나님이 나를 택하지 않으셨을 가능성도 인정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자꾸 듭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형제님은 지옥 갈 죄인이라고 인정은 했으나, 혹시 예정에 빠졌을까 염려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자는 절대로 자신이 지옥 가도 아무 할 말 없는 죄인이라고 절감하지 못합니다. 행동으로 지은 죄들로 인해서 죄인이 되었다고 깨닫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라는 사람 전체가 존재론적으로 철두철미 죄인이라는 확고하고도 진정한 인식을 말합니다. 

 

정상인이라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라고 수긍은 합니다. 자기가 죄를 짓는 행동을 종종 했으니까 도덕적인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차원일 뿐입니다. 도덕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죄인이 되었다면 그 악한 행동을 고치면 구원을 얻습니다. 기독교를, 전적인 은혜 구원을 가르치는 개신교 정통주의, 제외한 세상 모든 종교의 구원관입니다. 행위를 선하게 고쳐서 하나님의 합격 점수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존재론적 죄인이란 존재 전체가 완전히 악해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본성적으로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생각이며 그것이 악한 말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된 까닭도 하나님과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됨으로써 영적인 교제가 끊기게 되어 인간 스스로는 그분을 진심으로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의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시체가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시체가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적 시체라 영적으로 의로운 일은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 전체가 철저한 죄인이라는 인식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에 따라 성령이 한 죄인의 깊은 심령에 자리 잡은 사탄의 견고한 진을 무너트려 주어야만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영적 시체라고 인식한다는 뜻은 자기 죄를 스스로는 물론이고 세상의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씻어낼 길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란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철두철미 죄인이라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지옥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진정으로 인정하는 자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스스로 믿은 신자란 그와 반대로 지옥 갈 영적 시체에 불과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므로 예수님이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할 절대적 소망과 진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성실히 따르고 죄를 덜 지으면 된다는 수준의 믿음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말로 철저한 죄인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면 그 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신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지옥 갈 죄인이라는 자각이 진심이었고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마음도 저절로 우러나왔다면 성령이 역사한 믿음이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한마디로 예수가 주는 것 하나 없이 밉고 싫었으나, 아무 이유 없이 너무 좋아져서 그분 뜻대로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질문 2.

 

목사님은 목사님께서 죄인임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절망으로 떨어졌을 때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평안이 찾아왔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답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믿어보겠노라 기도했는데도 그런 평안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저는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조차 그렇게 하면 구원을 얻는다니까, 저의 조금이나마 남은 의를 드러내려고, 하나님 앞에서 불쌍한 척이라도 하려고 엉엉 우는 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정말 그렇다면 저는 진짜 성령님이 완전히 100% 바꿔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답변 2.

 

기독교 교리를 배워서 그 내용에 동의하고 나도 이런저런 죄를 많이 지었으므로 십자가 예수님의 은혜를 믿어보기로 결심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참믿음이 아닙니다. 믿으면 구원 준다고 하니까, 믿으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겠지, 아무래도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겠지, 등등 자신의 정서적, 도덕적, 종교적 필요나 동기로 믿은 것은 성령의 간섭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정도로는 자신이 영적 시체라는 처절한 영적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영적 절망 없이는 예수님의 은혜를 순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믿음의 출발은 그런 정서적 도덕적 종교적 이유나 필요 때문에, 심지어 큰 고난을 겪게 되어서 현실적인 복을 받으려는 목적으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한 자라면 교회에서 성경의 진리를, 특별히 예수님과 그 십자가 사역에 대해서 배워나가다 보면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여 거듭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어느 사이엔가 모르게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게 되고 그분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인생의 전환이 이뤄지는데 성령이 함께하셔서 구원으로 인도하신 결과입니다. 신자 본인의 구원 확신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진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말하자면 구원의 체험(확신) 방식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뜻입니다. 절대로 다른 이의 경험을 자기에게 적용해서 자기 구원 여부를 검증하지 마십시오. 그러는 것 자체가 이미 율법주의가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철두철미 죄인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은 자신에게 영적으로는 도무지 소망이라곤 한 치도 없다는 엄연한 사실도 동시에 인식되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구원받을 방안은 내 쪽에서, 인간의 노력으로, 세상의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처절한 절망에 빠져야만 비로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온전한 감사 소망 진리 생명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래서 그 은혜를 순전히 받아들임으로써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 평강은 감정적 감각적 정서적 반응이어야 할, 함께 동반될 수도 있지만, 필요는 없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는 말씀처럼, 인생길을 가로막고 있는 캄캄한 터널에서 비로소 한 줄기 빛이 비취는 출구를 찾게 되는 그런 평안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목표와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으므로 이 땅에서 잘 살아갈 각오, 헌신, 방안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질문 3.

 

하나님은 정말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 말고는 말 그대로 '다 '용서해주시나요? 제가 요즘 자꾸 세상적인 생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제 성격의 문제인 것 같은데 저는 어떤 생각이 들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그 생각에 자꾸 설득되려고 합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예수님 믿는 삶보다 세상적인 삶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심화되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거의 사라지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두려운 마음에 예수님의 증거를 다시 복기해 보고, 성경과 목사님의 칼럼도 읽고, 예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신 일들도 떠올리고 회개 기도도 하면서 다시 마음을 예수님 쪽으로 끌어오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의심과 회개를 가끔씩 반복하게 되는데 너무 괴롭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 믿는 삶이 가장 현명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꾸 우매한 생각에 스스로 끌려다니니 기분이 처참합니다. 이러다 보니 제가 히브리서에서 경고한 것처럼 비춤을 받고도 타락한 자에 해당한 것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다시 예수님을 온전히 믿기로 하면 과거의 모든 배역과 의심을 용서해 주실까요? 저도 정말 하나님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답변 3.

 

계속 강조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게 된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존재론적인 죄입니다. 이런저런 행동과 말과 생각으로 범한 도덕적인 죄들이 아닙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따서 아담과 나눠 먹은 것은 도덕적으로는 너무 선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되려 한 것이 타락의 본질입니다. 도덕적인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자 모든 인간이 자기만 높이려 하는 데서 탐욕과 교만에 빠져서 서로 충돌하기에, 즉 본질적 타락에 따라 부차적 결과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으므로, 그 대속의 은혜를 순전히 믿은 죄인은 하나님과 존재론적으로 화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합격 점수에 들 만큼 의롭게 되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죄 중에 심지어 그분과 원수 사이로 있는 중에도 그분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자녀가 된 관계는 신자가 도덕적인 죄를 짓는다고 해서 절대로 변화 취소되지 않습니다. 자녀가 사형수가 되어서 감옥에 있어도 부모 쪽에서 자식이 아니라고 내치는 법은 절대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어 신자가 되면 미래에 지을 죄도 이미 용서받은 셈이 됩니다. 그렇다고 용서받는 은혜를 더하려고 죄를 더 지을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다른 모든 종교는,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 교단까지 포함해서, 율법적 행위 구원관을 가르칩니다. 도덕적인 죄를 기준으로 죽은 후에 점수를 매겨서 구원과 심판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도 모든 인간은 도덕적인 죄를 짓기에 그렇게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와서 인류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형제님이 지금 염려하는 식으로 따지면 당장 저부터 이런 복음의 변증을 중지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 구원 여부를 염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삶에 대해서도 너무 강박적으로 제한하지 마십시오. 신자도 세상 안에서 살아야 하므로 세상의 오락 취미 쾌락도 즐겨도 됩니다. 단 그것을 즐기는 근본적인 동기와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이웃과 교제를 풍성히 하려는 수단이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염려를 하는 것 자체가 성령이 역사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는 이런 염려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 방식으로 세상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목적인데 세상적으로 사는 것이 죄라고 여기는 불신자 바보는 없습니다. 

 

질문 4.

 

위의 질문들을 다시 읽어보니 결국 저는 제가 선택을 받아 성령님으로 거듭났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무엇을 보고 100% 확신할 수 있을까요? 만약 거듭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답변 4.

 

거듭났다는 것은 자신이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인생을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심했는지 여부 말고는 검증할 기준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런 결심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의할 사항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일회적, 단기적, 부분적인 사건 사안 행동 생각으로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인생 전체를 걸고서 그 목적과 삶의 방식을 세상 사람과 반대의 위치에 두고 있느냐 여부로만 판단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도 중간중간에 지치고 넘어지고 때로 세상과 같아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평생을 두고 예수님의 손을 놓고 싶은 생각이 절대 없다는 확신이 있으면 됩니다. 불신 세상 사람 같은 인생은 절대 살지 않겠다는 결단을 했는지만이, 실천은 늦어지고 게을러질 수도 있음, 그 기준입니다. 

 

현재 자신의 영적 상태가 아무리 스스로 보기에 형편이 없어도, 인생 전부를 걸고서 종합적 장기적인 방향 혹은 성향이 예수님 쪽이냐 아니냐로만 판단하십시오. 예수 믿었다고 절대로 흠결 없는 도덕군자로 바뀌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되는 일을 믿음의 목표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만 받은 죄인일 뿐임을 매 순간 절감하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예수님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정말 무의미 무가치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참믿음입니다. 또 그렇게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품과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도 주님과 많이 닮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원에 관해서 가장 기본적인 아래의 두 글도 꼭 다시 참조하십시오.  

 

 

예수 믿은 후에 짓는 죄와 구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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