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가 궁금했던 부분들 중에서 몇 부분은 해결이 됫습니다
중생과 동시에 회심 ( 회개 + 믿음 ) 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중생하자마자 천국 자녀가 되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궁금한 부분은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하면 중생하게 되느냐 입니다
그렇니까
설명들을 보니까 어차피 택자만이 구원 받으니까
인간이 예수님을 찾든 기도를 하든 말씀을 읽든
택자가 아니면 절대 구원 못 받는다는 말만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주 존경하는 목사님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면 구원을 받을 목적으로 예수님을 기도와 말씀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주 간절히 찾으면 만나주신다는 언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가 산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 예레미야 29장 13절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아모스 5장 6절 )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 생략 )
( 야고보서 4장 8절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 ( 생략 )
그리고 복음서에도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 요한복음 5장 40절 )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을 찾으면 영생을 주신다는 말이 됩니다
예정론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찾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이 살려주신다는 말이 됩니다
정작 인간이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입니다
그리고 정작 인간이 예수님을 찾는다고 해도
그 목적이 " 영생을 얻기 위함 " 이 아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음서에도 예수님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목적은
" 영생 " 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 해결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찾는 목적은 " 영생을 얻기 위함 " 이여야 합니다
( 이사야 1장 18절 ~ 20절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진홍 같이 붉을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 ( 생략 )
저는 지난 2년 동안 제가 택자인지 아닌지를 엄청나게 절망하고 걱정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야
예정론에 대한 저의 믿음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이 저를 부르고 계신데 저의 예정론에 대한 믿음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 택자든 비택자든간에 모든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 이유는 뭔가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거나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정론은 신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신경 쓸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택자만이 기도와 말씀으로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예수님을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진짜 궁금한 것은
예수님을 찾는 것만이 거듭나게 되는 유일한 방법인데
신학적으로 아무리 택자라도 거듭나지 못 한 상태인 인간이 어떻게 예수님을 찾을 수 있냐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분명히 거듭나지 못 한 인간은 예수님을 찾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아무리 택자라도 거듭나지 못 한 상태인 인간이 어떻게 예수님을 찾을 수 있냐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분명히 거듭나지 못 한 인간은 예수님을 찾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십니다. 저도 계속 같은 답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찾지 않고 못하는 것은 아직 성령이 역사하기 전의 거듭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택자에게 성령이 역사하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찾고 특별히 말씀으로 구원의 진리를 알고 싶은 소원과 열정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한 후로는 필연적으로 신자 쪽에서 말씀도 읽고 연구하며 고난은 물론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도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은 앞선 댓글에서 설명 드린 대로 천천히 나중에 생깁니다.
반면에 형제님이 말씀하신 대로 교회 안에 영생이 목표가 아닌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말씀보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자는 아직 성령이 역사하지 않은 자이기에 성령의 거듭남에 따른 온전한 믿음의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종교적 필요에 따라 자신의 이 땅에서의 현실적 구원(정확히 말해서 형통과 출세)을 얻으려고 스스로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교인들 중에 택한 자가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조차도 구원으로 이끄는 여정으로 삼은 택자도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구원 여부에 관해선 제 삼자가, 담임 목사라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습니다. 또 그래서 인간의 말로는 “말씀보고 기도하여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으세요”라고 표현 권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예정론에 올릴 새 글에서 설명했는데 바울이 말하는 “전도의 미련한 것”의 의미입니다. 샬롬!
안녕하세요 워커님. 워커님의 질문 글들을 쭉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했던 고민들과 많은 내용들이 겹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결론도 비슷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 같고요.
저같은 경우는 오히려 반대 순서로 구원에 관한 인간의 무능력과 그에 따른 무기력에 대해 먼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새는 예정과 관련해서 많은 생각들을 해봤는데 일단은 워커님과 비슷한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렸습니다. 신비에 해당하니까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자고요.
제가 하던 예정론에 대한 고민이 또한 워커님의 질문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제가 드리는 답변에서 차차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부족하지만 나름의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이번 글의 질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1. 예수님을 믿는 것(찾는 것, 바라는 것, 구하는 것 등)이 구원의 조건(또는 기준)이다. 2. 죄인인 인간(구원 받기 전, 거듭나기 전)은 예수님을 믿을(찾을, 원할, 바랄, 구할) 수 없다. 3. 그런데 어떻게 거듭나지 못한 인간이 예수님을 믿을(찾을, 바랄, 원할) 수 있는가??
답은 명확합니다. 워커님도 알고 계신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게 하심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답을 알고 계시면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 질문글들을 남겨주셨을 것이고요. 위의 답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아직 남아있을 의문들을 추정해보겠습니다.
Q1.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거듭나기 전의 인간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가?
A1.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게 해주심으로(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
일단 이것이 앞선 내용의 요약이고, 앞으로 나올 질문들의 경우는 제가 했던 고민들에서부터 추정한 것입니다. 예정과도 살짝 연결되어 있습니다.
Q2. 그렇다면 누군가는 구원받고 누군가는 구원 못받는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A2. 하나님이 누군가는 하나님을 믿게 해주시고 누군가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시기 때문이다.
Q2-1-1. 왜 하나님은 누군가는 믿게 해주시고(택하시고) 누군가는 내버려두시는가?
A2-1-1. 모른다.
Q2-1-2. 하나님이 누군가는 믿게 해주시고(택하시고) 누군가는 내버려두시는게 불의하지 않은가?
A2-1-2.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누군가는 믿게 택해주시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이다.
Q2-2. 하나님은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택하시고 누구를 내버려두시는가?
A2-2.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만의 어떤 기준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임의로 행하시는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이 택하시는 기준이 우리(인간)에게 있지는 않다. (인간은 구원에 기여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기 때문)
(이 부분은 팀 켈러 목사님의 '당신을 위한 로마서2'를 읽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단 위 질문들은 처음 워커님이 주신 질문에서 예정 쪽과 관련되어 파생되는 질문들이였습니다. 이제 위 질문에서 다른 갈래로 파생되는 또 다른 질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무기여/무능력으로 인한 무기력 또는 절망'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것이 워커님의 진짜 질문이리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원 질문을 다시 적어두겠습니다.
Q1.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거듭나기 전의 인간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가?
A1.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게 해주심으로(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
Q3.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베푸심이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내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달렸지 않은가?
답하기 전에. 1) 구원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2)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3) 난 아무것도 할 것도 없고 할 수도 없다. 라는 것이 빠지기 쉬운 결론입니다. 저도 이런 결론으로 한 동안 고민 근심 했었고요. 저의 질문은 살짝 핀트가 좀 달랐었고 따라서 제가 이 문제의 해답을 얻은 것이 워커님께는 또 살짝 핀트가 다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워커님의 의문에 맞춰서 나름의 답변을 제시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답변이 틀린 답변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다른 분들이 지적 및 정정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주로 이런 류의 메시지를 들을 때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아있는 최근의 경우로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하나님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라' 이런 메시지를 들을 때 '그렇다면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가?' 이렇게 흘러가는 의문이였습니다. 이 의문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만 지금의 경우에 비추어 도움이 될만한 해답은 이렇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무능)'과 '하나님을 바라보라(해라)'라는 언어의 의미 입니다.
우선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워커님의 질문과 관련해서는 '예수님을 찾는다'라는 말과 대응할 것입니다. Q1에 정리했던 문장이나 바로 위에 적은 메시지나 '구원에 인간은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다 예수님을 믿기만 해라'라는 이 문장은 셋 다 서로 대응하는 문장들입니다. 다 같은 문제(의문)를 품고 있으니, 이 문장을 가지고 설명 드린 것을 각 문장들에 대입해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같은 문제(의문)이란 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인간이 기여하는 부분 아닌가?' 답은 아시다시피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여가 아닌가? 여기서 아까 말한 말의 의미가 중요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예수님을 찾는다, 하나님만 바라본다)은 인간의 어떤 행위나 공로 즉 기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고 구원받을 자격은 전혀 없고 구원에 기여조차 할 수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 즉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반응인 것입니다. (제가 굉장히 설명을 잘 못했는데 이 부분,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 반응이다',은 본사이트 목사님께서 정말 잘 설명해주시니 참고해주세요.)
요약하자면 '예수님을 믿어라, 예수님을 찾으라, 하나님을 바라보라'(~해라)는 실제로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을 절감하고 하나님께 '맡겨드린다' 즉 내가 하려는(해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난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자아를 내려놓는 자기 고백, '하나님께서 하십니다'하고 주도권을 내어드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다음은 (무능)에 대해서 입니다. 위 메세지의 '하나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Q1의 '거듭나기 전엔 예수님을 찾을 수 없다', 예시 문장의 '구원에 인간은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다' 같이 늘어놓고 보니 예시 문장은 이번 경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일단 같이 놓고 가보겠습니다. 이 문장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무능)의 의미는 까놓고 봐도 사실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들은 많이 생략/함축 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 없이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문장을 가지고 설명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그렇다면 위 문장이 틀렸기 때문인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 단서가 붙어있죠. '하나님 없이' 즉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또한 하나님께서 하게 하심으로 우리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없이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문장은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면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에 대해서는 너무 문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런 말들은 주로 고백적인 의미의 언어로 많이 쓰입니다.
다른 문장들과 연계해본다면 '하나님께서 찾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심으로 인간이 구원에 참여(공로가 아니므로 절대 기여가 아님)할 수 있다'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했는데 너무 길어졌네요. 부족한 제 글솜씨 및 간단한 주제가 아니기 때문임을 탓해봅니다. 제가 부족해서 너무 어렵다거나 난해하게 심지어 틀린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디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끝마무리 같지만 사실 끝이 아닙니다. 거의 끝이긴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워커님의 진짜 질문에 다시 최종적으로 답하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Q3.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베푸심이고 내가 기여할 수 없는데, '내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달렸지 않은가?
A3. 저는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예정에 대해 워커님이 내리신 결론과도 같습니다.
구원을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은 하나님 차원의 일이고, 내가 깊게 생각하거나 파고들 바가 아니다. 내가 인간 차원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일단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는 것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파고들면 믿음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손 놓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1)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구하세요(기도하세요). 아까 파고들었듯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주신다면 믿음을 달라고 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만 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파고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파고들어봤자 의미가 없겠죠. 하나님께 믿음을 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심에 감사하면서 예수 복음(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게 해달라고 구하세요.
2)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워커님 질문글을 읽어보면 교회는 꾸준히 다니신 것 같은데(적어도 2년 이상은), 이 구절에서 들음은 결국 말씀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고 즉 성경 말씀을 '읽는 것'도 포함되리라 생각합니다. 꾸준히 성경 말씀을 읽으시고 복음 관련 서적을 찾아보시면서 이 말씀이 나를 향한 말씀으로 믿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3)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수 있음(능력)을 믿으세요. 안믿어져서 여태 질문한건데 뭔 소리냐고 하실 수 있는데요. 조금 따져보자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심은 믿으시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지 여부를 못 믿으시겠단 고민인거잖아요. 저도 비슷하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능력이 있으심을 믿지만 나에게 기적을 행하실거라는 믿음은 없는' 요런 상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기적(초자연적인 의미의)이 굳이 안일어나더라도 별 지장이 없지만 구원의 경우는 생명(영생)이 달린 문제죠. 최근에 예정론 관련 파고들 때는 또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는지를 어떻게 아는가? 하면서 확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구원의 문제가 좀 흔들리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워커님이 내리셨던 결론(택하심에 대해선 너무 상관하지 말자)과 더불어 '내게 주신 믿음이 택하셨다는 증거다'라는 결론을 내려서 잠정적으로는 해결 되었습니다. 써놓고보니까 좀 딴 소리였는데 본론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수 있음(능력)을 믿으라는 것은 구원의 기초를 모래처럼 무너져내리기 쉬운 본인의 어떤 행위나 기여(라고 생각하는 것)에 두지마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본인의 구원의 기초를 두시면, 다른 어떤 것(본인 믿음의 나약함일지라도)에도 구원이 흔들리지 않을 것임이 믿어집니다(하나님께서 구원하시므로).
또한 안믿어지는데 어떡하냐? 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이렇게도 생각을 합니다.(이 부분이 특히 다른 분들의 맞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저는 믿음을 의지적 선택이라고'도' 봅니다. 그러니까 믿기로 결정하고(감정과 상관없이) 그 결정을 고수하는 것이라는 거죠. 쉽게 예를 들자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라면 감정적으로 어떠한 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원하기로 선택하자는 거죠. 그럼 믿음이 의지적 선택이라면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문제가 제기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의지적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믿음으로 '의지적 선택으로서'의 믿음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운영자 목사님께서도 다루신 적이 있습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아직 안믿어져도 의지를 통해 믿기로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아가 우리의 전인격(지, 정, 의)을 믿음으로 바꿔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믿어지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심어주심(모든 사람 공통)' - 지성 - 의지 - 감정 순서로 믿어졌습니다.(물론 각각의 요소가 딱딱 떨어져서는 아님)
감히 제가 판단할 수 없지만 워커님의 진리와 믿음, 구원을 향한 열망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워커님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이 아닐까 짐작 해봅니다. 부족한 제 댓글이 미약하지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 이 사이트를 발견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덧붙여 앞선 워커님의 질문글들에 구원 관련 목사님이 올려주신 글들을 읽어보시라는 댓글들이 있었는데요, 저는 믿음 관련 글들도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을 아예 찾지 않으니, 중생한 다음에서야 하나님을 찾는 것 아니냐?는 논리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거듭나지 못한 상태지만, 그분의 때가 되면 그 택함 사람을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찾게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통로로 이끄신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워커님이 언급하신 목사님의 말씀이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정론과, 불과항력적인 은혜를 온전히 알 수 없기에 그런 신비로운 하나님의 사역은 온전히 그분께 맡기시고, 우리 편에서는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간절히 찾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라고 전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보기 전에 제가 답글을 바로 이전 글에 올렸습니다. 그 댓글이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될 것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