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많은 사람들이 본문의 의미를 완곡하게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랑게의 견해가 예수님의 원래 교훈을 더욱 확실히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비슷한 격언이 바벨론 탈무드에도 나오는데, 이 곳에는 '약대' 대신에 좀 더 몸집이 큰 '코끼리'가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에서는 코끼리가 흔했고, 또 코끼리가 가장 큰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교만하고 세상에 부유한 자들이 통과하기 어려운 '좁은 문'입니다. 천국은 자기 의를 포기하고 주님의 은헤를 구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 이런글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벌써 천국 시민이고, 하나님의 칭의와 성화를 받았는데. 이 말씀이 조금 맞지 않는것 같고요. 그렇다면, 정말로 그 성경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저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는 윤강현 교수입니다. 또한 성경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마케팅 원리를 재해석하여 성경적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목사님의 말씀이 좋아서 가끔 이 블로그를 방문하여 글을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답글을 쓰는 이유는 위에 질문에 대한 목사님의 답변에 다른 의견이 있어서입니다. 먼저 제가 본문 말씀과 더불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마태복음 6:24 말씀에 많은 관심을 두는 이유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의 이행 노력이 재물을 축척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 둘 사이의 연관성 때문에 초반에 마케팅 원리의 재해석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성경이 제시하는 큰 그림의 기초가 목사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구원 중심적인 해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처럼 저도 예전에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구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씀 실천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여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천국을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였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재물을 축척하는 노력이 하나님의 법에 위반된다는 생각을 하여 되도록이면 부를 축척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여 왔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이 성경말씀 전체를 제대로 대변하는지 의문이 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시각의 토대 위에서 다양한 마케팅 원리와 개념들을 구원 중심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더니 별로 좋은 결과를 갖지 못한 결과 말씀 해석을 위한 잣대를 다시 찾는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였는지 깊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창세기 처음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까지 말씀 전체를 포괄하는 제일 중요한 성경적 개념이 과연 하나님의 구원인지 다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태복음 초반에 등장하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구원보다 더 중요한 개념임을 알게 되었고, 이 개념의 토대 위에서 마태복음 19:24 말씀과 마태복음 6:24 말씀을 다시 바라보니 더 잘 해석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 해석의 내용을 이러합니다. 먼저 구원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로 대표되는 천국을 대변하는 것이 알기 위하여 단어 구원이 가진 히브리 의미를 찾아본 결과 이는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때 원래의 모습이란 당연히 창세기 1-2장이 의미하는 태초에 계획된 하나님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성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이 펼쳐지는 영역으로 이해되는데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다만 이 땅을 다스릴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과 함께 다스리겠다는 계획을 창조 기사를 통해 표명했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 내용을 종합하여 독자가 제시한 마태복음 19:24 말씀의 핵심을 보면 재물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자기 의를 포기하지 않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 여부를 지적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구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의에 따라 이 땅을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고 재물에 초점을 둔 자기 의를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릴 경우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지면상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제대로 완벽하게 전달되었는지 의문이지만 위에서 설명드린 저의 해석에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목소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강현 드림.
윤강현 교수님 주님 안에서 반갑습니다. 또 귀한 의견 나눠주심에 감사합니다. 몇 가지 부분에서 저와 의견을 달리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지면상 갖고 계신 생각을 제대로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기 댓글에 관한 제 생각을 따로 정리하여 답글을 올리기 전에 아래 교수님의 글에서 인용한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 명료하게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재물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자기 의를 포기하지 않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 여부를 지적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구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의에 따라 이 땅을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고 재물에 초점을 둔 자기 의를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릴 경우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 "재물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자기 의를 포기 하지 않은 자가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구원을 얻는 것"처럼 진술하셨는데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샬롬!
바쁘신 것 같아서 교수님의 상기 글에 대한 제가 가진 생각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 ”는 교수님의 글이며, – 로 시작하는 글이 제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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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성경이 제시하는 큰 그림의 기초가 목사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구원 중심적인 해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경이 제시하는 큰 그림은 예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통한 구속사입니다.
“천국을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였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재물을 축척하는 노력이 하나님의 법에 위반된다는 생각을 하여 되도록이면 부를 축척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여 왔다고 봅니다.”
- 일부에서 그렇게 잘못 가르쳐졌고 신자들도 그에 따라 잘못 행동한 것은 사실입니다. 재물 자체는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이며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죄의 원인이 됩니다. 신자는 당연히 자기 직업을 통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나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벌되 자신의 평안과 형통만을 위해서 쓰면 안 되고 이웃을 섬기고 인간사회를 거룩하게 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이 거룩하게 통치하는 영역”으로 이 땅에 이미 도래했으나 아직은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미혹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분의 나라는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already but not yet) 이 땅에서 신자는 그 두 나라의 긴장 사이에 살아가야 하는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 확장시킬 즉,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받아 누리며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도 드러내어야 할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처음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까지 말씀 전체를 포괄하는 제일 중요한 성경적 개념이 과연 하나님의 구원인지 다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 제일 중요한 성경적 개념은 구원이 옳습니다. 창조에 곧바로 이어서 타락이 나오고 창세기3:15에서 원시 복음이 제시된 후에 구약은 예수님이 오셔야 할 이유를 신약은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신 일과 결과와 장래의 완성에 대해 적은 책입니다.
“마태복음 초반에 등장하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구원보다 더 중요한 개념임을 알게 되었고,”
- 물론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옳으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먼저 구원을 얻어야만 합니다. 원죄 하에 태어난 타락한 인간들은 스스로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그 길도 모르기에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초반의 산상수훈도 구원을 얻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 땅에서부터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받으며 그분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지침입니다.
“단어 구원이 가진 히브리 의미를 찾아본 결과 이는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때 원래의 모습이란 당연히 창세기 1-2장이 의미하는 태초에 계획된 하나님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 구원이란 당연히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타락 이전의 창조되었던 상태인 이 땅을 다스려야하는 청지기직분으로의 회복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히브리어의 의미로만 제한해서 적용하면 신약에서 구원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의미를 자칫 놓치게 됩니다.
“다음으로 성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이 펼쳐지는 영역으로 이해되는데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다만 이 땅을 다스릴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과 함께 다스리겠다는 계획을 창조 기사를 통해 표명했다고 봅니다.”
- 하나님이 창조할 때에 인간에게만 청지기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대신에(당연히 함께) 이 땅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다스릴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형상을 닮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그 형상이 왜곡 파괴되었기에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는 구원이 필수적 전제가 됩니다.
“마태복음 19:24 말씀의 핵심을 보면 재물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자기 의를 포기하지 않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 여부를 지적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구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의에 따라 이 땅을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고 재물에 초점을 둔 자기 의를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릴 경우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 상기 글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고 재물에 초점을 둔 자기 의를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릴 경우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진술이 조금 이상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고 재물에 초점을 둔 자기 의를 가진 자는 아예 처음부터, 말하자면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니기에 그분의 거룩한 통치에 참여할 수 없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분의 계획을 무너뜨리게 하지만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논의할 때에 고려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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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하자면 마19:24는 제 답변 글에서도 밝혔듯이 19:16-30 전체가 한 문단으로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 문단의 주제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천국 가느냐)?”입니다.(16절이 발제) 따라서 이 땅에서 그분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과는 사실상 무관한 내용이며, 설령 그렇게 확대해석하려 해도 일단은 구원을 얻은 자만이 그 통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는 교수님의 해석이 바르게 적용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구원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가 이 땅에서 그분 백성답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아야만 구원 얻으며, 돈을 주인으로 삼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절대적 전제가 됩니다. 그런 자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성화는 항상 구원과 동시에 시작되지만, 구원 없는 성화는 있을 수 없기에 성경에 이 땅에서 신자답게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라도 항상 구원을 동시에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기의 교수님 의견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돈이 많을수록 더 좋다는 청부론(淸富論)을 개진 내지 지지하는 뜻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쓰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블루님 귀한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 홈페이지 사역을 통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성경을 앞뒤 문맥에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한 절씩 따로 떼어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기 구절이 포함된 본문은 좁게는 23-26절, 넓게는 13-30절 전체로 봐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 대해선 모든 신자들이 좀 더 자세히 알아야만 할 중요한 내용이 있으므로 따로 준비하여서 성경문답 사이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