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성도들이 흔히들 하는 말에 어느 날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주님앞에 나아가야 주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밝혀)주실것이다"
"모두 다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야 우리를 쓰신다"
"완전히 주님께 맏겨라, 그래야 기도의 응답이 있을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고, 죄 없는 사람이 없을건데,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속으로 놀랐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요...아니면 이것도 인간의 욕망에 의해 남들을 현혹하기 위한 말이거나
기복적인 신앙에 기원을 둔 말일까요...
생각해 보면 '길의 열림'을 위한 욕망 때문에 온전하고 싶은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의 상태가 어떻든 주님께서 쓰시려거든 다 쓴다고 믿어왔기 때문에요...
완전히 맏기지 못해서 근심할지라도 주님 뜻이면 기도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뜻으로
믿고 살았기 때문에요...
자꾸 저런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욕심이 보이는 것 같고 오히려 시험에 듭니다...
이런 말들에 성경적 근거가 있는것인가요...
죄가 많은 사람인지라...온전하려고 노력해도 온전할 수가 없네요
'온전히' '모두 다' '완전히' 이 세상에서 100%는 있을 수 없겠지요.
본인도 하지 못하면서 믿음이 좋은 척 그렇게 말하는 사람 성도들을 보면 시험이 들만도 하죠.
다만 하나님 앞에 그렇게 되고 싶다 또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 만큼은 좋게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세인들이 하는 말은 듣되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으니깐요.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온전히 주님앞에 나아가야 주님께서 나에게 유리한 길, 원하는 길을 열어(밝혀)주실것이다"
"모두 다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야 나를 쓰셔서 내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될 것이다."
"완전히 주님께 맏겨라, 그래야 기도의 응답이 있어서 내가 믿음이 좋은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 해 줘서 나를 우러러 볼 것이다"
이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데요 은연 중에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기 중심적인 신앙이고, 이기적인 신앙이고 기복적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하나님 나라 완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앞 길을 열어 주시든지 그렇지 않든지, 주님께서 쓰시든지 쓰시지 않든지, 기도의 응답을 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든지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모든 관심도 하나님 나라 완성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민스 형제님~ 샬롬!
저도 예전에 형제님과 비슷하고 또 그외에 다른 이유들로 점점 교회에서 마음이 멀어졌었고, 반면 저의 영은 알게 모르게 아버지에 대한 갈급함으로 점점 더 쌓였 갔더랬죠. 중학생때 처음 나가게 된 교회에서 세례도 받고 고등학교때까지 다녔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보단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조금씩 늘어갔고, 대학때에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찬양하는 시간이 더 좋아 보였습니다. 이후 군대때 우연히 근처에 있는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다가 설교시간 내내 처음으로 감동과 은혜란것으로 채워짐을 느꼈는데, 도중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아 아쉽게도 더 이상 그 교회에 다시 갈 수 없었죠. 전역 후 현교회에 대해 저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던 친구와 함께 멀지만 그 교회를 찾아갔었으나 그당시 작은 개척교회여서였는지 이전을 해서 없어졌더군요.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찾아봤으나 알 수 없어서 당시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이후 기독교방송의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기도 해보았는데, 정말 놀랍게도 그곳 역시도 은혜보단 전에 뭔가 부족하게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점은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 본인만의 느낌이니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느날 '왜 오직 예수인가?' 이곳을 발견하고 나서는 조금 오버해서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이곳을 찾는 형제자매님들이라면 굳이 설명 안해도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니 저의 이야기를 꽤 길게 썼네요. 죄송합니다.
댓글로 다시 쓴 민스 형제님의 글을 보니
온전해야만 재정적 문제를 해결해주고 하나라도 못 맡기면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라는 등등의 말들은
주님을 대함에 있어 전심을 다하기 위한 의도로 한 말은 아닌거 같습니다.
그분들이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겠습니다.
교인들의 대화에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거의 쓰지 않으면서도 교인들끼리 있을 때는 아무 때나,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대표적인 단어가 '은혜'입니다. 걸핏하면 은혜 받았다고 하죠. 유명한 코미디언이 목사가 되어 첫 설교를 했습니다. 산상수훈에 관한 설교였는데 전직이 그래서였는지 설교도 코미디였습니다. 뭔가를 뿌리는 시늉을 하며 팔복받으라고 외쳐대는 어처구니없는 설교였는데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 사람에게 설교가 어땠는지 물으니 은혜받았다고 대답하더군요. 은혜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목사가 무슨 말을 해도 할렐루야,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을 예의로 알거나, 큰 소리로 외칠수록 믿음 좋은 증거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목사나 전도사의 말투를 흉내내거나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어떻게든 활용하여 되지도 않는 말로 다른 이들을 비판하고 권면하는 사람 또한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비판이나 권면을 들었을 때 기분 나쁜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말이 되는 얘기를 들어도 수긍할까말깐데 되지도 않는 말을 들었을 땐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잠자코 계셨습니다. 제사장들과 빌라도와 헤롯의 말에 나중에는 아예 대꾸를 안하십니다. 어떻게든 모욕하고 정죄하고 괴롭히려는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든다고 표현하셨지요. 그 말도 신자들이 생각 없이 자주 쓰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첫번째로 강조한 '자기부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신자라면 쉽게 쓰지 않을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무지를 탓하기 이전에 그들과 똑같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신을 직시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감추려 하면 그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엉터리 믿음에 안주하게 됩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오늘처럼 기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합니다. 사소한 듯 보이는 의문이 진리로 가는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참 믿음에 대해, 복음에 대해,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갖고 새 생명을 간구하며 나아가기 바랍니다. 샬롬
민스 형제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주님께서 형제님과 동행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목사님의 답변이 있겠지만, 글을 읽어보니 형제님이 느끼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가는 것이 있어 제 생각을 짧게나마 감히 적어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그저 다른 성도의 생각 정도로 여기시고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주님앞에 나아가야 주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라는 말은 말 그대로 주님앞에 나아갈때에 영과 육이 온전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인도해 주신다는 말 같습니다.
이것이 '길의 열림을 위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 최소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라 표현한 것은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주심을 받는것에 대한 '열망'이라 생각됩니다. 나의 생각과 내 주관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길을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모두 다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야 우리를 쓰신다'라는 말 역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때에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우리 각자의 개인사는 모두 내려놓고 전적으로 주님의 뜻에 맡기며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당연히 주체가 내가 아닌 그분의 모든 계획과 뜻에 따르는 것이니까요.
물론 우리의 현재 상태가 어떻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그 상황에 따라 감당할 만큼의 일을 주시거나, 또는 고난을 통한 영적 성장을 주실거라 믿습니다.
'완전히 주님께 맡겨라, 그래야 기도의 응답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은 그것이 무엇이든 주님께 긍휼과 은혜를 바란다면 의심치 말고 나아가 이미 받을 것으로 여기며 감사와 함께 전적으로 맡기라는 말 같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그 즉시 주실 수도 있고, 그분의 시간과 때에 맞춰 서서히 주실 수도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서 우리는 그 응답의 시기까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응답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의 판단은 섣불리 하기 어렵지만, 통상적으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거나 아니면 간구했던 것과 다르게 결과가 있을지라도 형제님처럼 감사와 순종으로 따르는 것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형제님이 말한 것과 같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없고 죄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악한 죄의 수괴에서 그나마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사람답게,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거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세상사람 누구나 근심도 하고 죄에 넘어져 쓰러지며 심지어 그런 좌절과 시험이 예수님 믿는 우리에게도 매일 찾아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매순간 오직 예수님을 만나 붙잡으며 회개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또 그렇게 감사드리고... 그렇게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에 그분이 원하시는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또 감사드리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