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집권자 같은 목사들
마태복음 강해 (193)



http://youtu.be/TKJptBzXp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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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4-28)


억장이 무너진 예수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주의 나라가 임하면 자기 아들들을 최고 높은 자리에 앉혀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했다. 나머지 열 제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모두 분히 여겼다. 스승에게 배운 대로 스스로 낮아지려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같은 욕심을 갖고 있었는데 선수를 친 것에 화가 난 것이다.

학자들은 세배대의 아내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자매 즉, 주님의 이모로 간주한다. 그럼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이종 사촌이 된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직전에 마리아에게 요한이 당신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요한에게는 너의 어머니이니까 잘 모시라고 개인적으로 당부했다. 또 성경은 요한을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라고 표현하고, 변화산에도 베드로 외에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올라갔다.

그들의 어머니는 인척을 떠나서 자기 아들들이 주님의 개인적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제자들은 그런 개인적 관계를 이용해 청탁을 한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여기고 더 화를 낸 것이다. 요한과 야고보도 완전히 성인인데 엄마가 그런 부탁을 하면 우리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렸어야 하지 않는가? 그들도 그런 요구가 너무나 당연하거나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은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한 시점이다. 비유컨대 전쟁에 나가는 장군이 비장하게 이번 전투에서는 거의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내가 없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말고 엄마 모시고 열심히 잘 살라고 당부한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식들이 유산 다툼을 하는 꼴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까?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지난 3 년간의 가르침이, 그것도 몸소 당신을 낮추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본을 보인 것이 완전 허사가 되었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일반 윤리와 다른 주님의 가르침

그런데도 예수님은 야단을 치지 않고 또 다시 가르쳤다. 크고자 하는 자 섬기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타종교에서도 가르치고 불신자들도 알고 있는 윤리다. 예수님이 구태여 반복해서 가르칠 이유가 없다. 계속 가르치다 보면 세뇌가 되어서 언젠가는 실천하겠거니 기대해서인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반드시 그 상황과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예수님 특유의 뜻이 있는데 본문도 예외가 아니다.  

평소와 달리 너희들이 낮아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어 보상할 것이다, 혹은 하나님 앞에 낮추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이방 집권자와 대인들의 예만 들었다. 먼저 왕은 임의로 주관한다고 했다. 자신의 편견, 선입관, 고집, 욕심, 감정에 따라 제 멋대로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뇌물을 받거나, 본문의 경우처럼 개인적인 관계가 통치의 방향을 좌지우지 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관리들도 권세를 부린다고 한다. 권력을 공정한 객관적 기준에 따라 집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서 그들을 수탈할 목적으로 강압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그들과 달리 정말로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도 일반적인 윤리가 다루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본문 특유의 강조하려는 핵심은 다른데 있다. 바로 28절인데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왔다고 한다. 당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려는 것인데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구원을 주는 중보적 사역은 예수님만이 하시는 일이다. 제자들도 당신의 섬기는 모습 그대로 실천하면서 당신이 걸어간 길을 따르라는 것이다. 주님이 마시는 고난과 고독의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 단순히 높아지고 싶으면 낮아지라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혹은 지도자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다스리고 개인의 욕심과 감정에 좌우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이방인 집권자 통치와 인자이신 당신의 통치를 대조한 것이다.

세상 나라의 지도자는 결코 섬기거나 낮아지지 않고 군림만 한다는 것이다. 일반 백성이 오히려 그들을 섬긴다는 것이다. 반면에 주의 나라에선 거꾸로 지도자가 종이 되어 목숨까지 내주며 섬긴다는 것이다. 백성이 섬김을 받는 높은 자이며 지도자가 섬기는 낮은 자다. 초점은 주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통치 방식은 정반대라는 데에 있다.  

정말로 심각한 말씀

이 말씀을 정말로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받아야 한다. 주님은 당신의 나라로 마지막 때의 새롭게 바뀔 땅이거나 신자가 죽어서 가는 천국을 염두에 둔 말씀이 아니다. 천국이나 장차 이 땅에 도래할 새 예루살렘에선 사탄과 죄악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또 그 나라에 참여할 신자들도 모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랐기에 이런 당부가 적용될 필요가 없다. 열두 제자에게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이미 확언하셨는데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없다.

지금 개인적 청탁을 한 두 형제의 어머니나, 그것을 보고 분히 여긴 열 제자나 주님이 로마를 물리쳐서 제 2의 다윗왕국을 세워주면 총리나 대신을 차지할 꿈을 꾸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공동체가 지금 이곳, 이 시간에 천국과 동일한 모습을 지녀야 한다고 명한 것이다. 천국을 이 땅에서 미리 연습하고 훈련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천국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인가? 가정에선 아버지가 자식의 종으로, 학교에선 선생이 학생의 종으로, 회사에선 사장이 종업원의 종으로, 국가에선 대통령이 백성의 종으로 섬길 때에, 그것도 목숨을 바쳐 그럴 때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방의 불신자들은 그렇게 못할지라도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반드시 그래야 하며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해 스스로 기꺼이 종이 되기로 각오, 헌신, 실천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의 인생만사를, 특별히 신자들의 공동체를 주관할 때에는 그런 지도가자 없으면 당신의 은총과 권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 한국이나 미국 이민교회 중에 대형교회의 다수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심지어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이 대형 교회는 싫어하고 작은 교회를 선호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 교회의 담임목사들 대부분이 왕이나 대통령보다 더 군림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한 마디 말은 무조건 법이다. 세상은 오히려 법대로 한다. 대통령일 잘못하면 탄핵절차도 있고, 퇴임 후에 감옥도 보내고, 임기 중에 데모로 갈아치우기도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통치를 세상 앞에 보여주어야 할 교회는 담임목사가 하나님과 방불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세를 갖고 자기 임의대로 통치하고 있다.

세상은 그 집행에서 간혹 공정하지 못할 때는 있지만 어쨌든 구조적으로 법에 따라 움직인다. 교회 안에는 아예 법이 없는 곳도 많다. 있어도 유명무실하다. 그 이유는 성경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며 목사가 가진 영적 권위로 치리하기에 법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성경대로 하겠다면 본문처럼 목사가 교인의 종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영적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 진리대로 온전히 종의 자세를 갖고 선포할 때에 성령이 역사해서 생기는 것이지 담임 목사라는 직분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교인이 목사에게 반대라도 하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다고, 심지어 하나님을 모욕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는다고 매도한다. 또 주의 종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것이 믿음이 좋고 교회가 부흥되는 길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에게 반대하면 하나님께 벌 받는다고 겁을 주고 있다. 주님은 지금 분명히 목사는 교인들의 종이라고 했다. 또 그럴 때에 비로소 온전한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데도 말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다 못해 정반대로 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교회 안에 머리는 하나 뿐

예수님은 요한과 야고보에게 너희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그럴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했다. 그들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라는 가정법인데, 누구를 위해 그 자리가 예비 되어 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한다. 아무도 모른다고 즉, 안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누구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지 알면 아무도 그 잔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사전에 자기가 십자가 처형이, 말에 묶여 사지가 찢겨 나가고, 산 채로 톱으로 몸이 두 동강이 나거나 사자의 밥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알 때에 그 잔은 아무도 마시지 않을 것이다. 또 함부로 마실 수 있다고 큰소리도 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아예 지금처럼 높은 자리를 달라고 요청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다. 하나님이 택하여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서 그럴 수 있는 자로 변화시키고 성숙시켜 그런 자리까지 그분이 이끄신다.  

본문은 일차적으로 일반 교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처럼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엄숙히 명령하신 것이다. 다른 교인을 목숨을 걸고 섬기라고 말이다.

종은 노예를 뜻한다. 교인이 시키는 대로 그 일이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어떤 필요가 있어서 해야 함을 알았다면 그 즉시로 시행해야 한다. 노예는 자기 생명을 주인에게 맡겨놓은 자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다. 결정은 오직 주인이 하고 종은 그것을 시행할 책임만 있다.

교회의 머리는, 주인은 예수님 한 분뿐이다. 직분자들은 그분의 종이다. 종들은 누가 높은지 다툴 필요도 이유도 아예 없다. 종은 평생을 두고 그 신분으로 끝나지 다른 신분이 되지 못한다. 높은 자리에 아예 올라갈 수 없다. 또 교회 안에 다른 머리는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모든 성도는 머리 되시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지체다. 목사나 신자나 그분에게는 동일한 자녀일 뿐이다.

그런데도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교회 실상은 세상의 왕국보다 더 못하다. 그 이유는 직분자들이 주님이 자기를 택해서 세우셨다는 인식이 없다. 자기가 실력과 자격을 갖추었기에 그 직분은 응당 자기가 맡아야 한다고 믿는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성도를 섬기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교회 안의 성도들 모임에서조차 자기 권세를 임의로 행사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세상 나라처럼 변질되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 있다.

믿음의 본질

인간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완전히 퇴색되었다는 뜻이다.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가?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만을 자신의 완전한 중심에 두고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처음이자 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이는 세상에서 아무리 화려하고 풍부하게 살아도 그것만큼 허망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과 함께라면 세상에서 어떤 낮아짐과 억울함과 비천함에 휩싸여도 하나님 한분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업이 부도가 나거나 말기 암에 걸려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병이 낫고 몇 배로 복을 받아서인가? 아니다. 그런 믿음은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능력만 의지하여 로마에서 해방되고 제2의 다윗 왕국을 재현하려 했던 푼수 엄마와 제자들의 믿음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 하나님의 능력만 믿는 믿음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는 믿음이다. 인간 중심에서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자신의 환경이 척박하고 열악하며 세상의 위치와 신분이 낮은 것이 믿음을 갖는 계기는 될지언정, 믿음의 원인 또는 전제가 아니다. 세상에서의 그런 고난을 통해서 모든 인간에게 실망했기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기댈 것이 하나도 없음을 절감했기에 하나님만 믿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며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심지어 배우자는 물론 부모에게마저 실망한 것이다. 그들이 사악하거나 죄를 많이 지어서가 아니다. 그들 모두가 연약하고 진토 같으며 어리석어서 자신의 감정과 환경에 붙들려 임의대로만 행동하지 온전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실망 중에 가장 크게 실망한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해서다. 자신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라곤 궤휼, 분노, 사기, 탐욕, 거짓, 음란 같은 것들뿐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이 스스로 성찰하고 수행해서가 아니다. 이전 저지른 잘못된 행동들을 반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의 회개는 다르다. 자신이라는 존재 전체가 더럽고 추한 죄의 덩어리임을 발견한 것이다. 자기 전부가 죄와 어리석음의 덩어리인데 스스로는 절대 깨달을 수 없다. 성령이 역사하여 자신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산산이 깨트린 것이다. 자기가 계획하기는커녕 전혀 예상치도 않은 순간에 거듭난 것이다.

그런 뒤집어짐이 일회적 혹은 점진적 어느 쪽이었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자신에게도 생생한 체험이 된 것이다. 살아 역사하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이 가기 가슴에 꽂힌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여 우리로 십자가 앞에 완전히 항복하고 엎드리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다른 사람들을 그 신분, 위치, 지성, 재물, 가문, 권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우대 혹은 멸시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며, 나아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지 깨달은 것이다.

모든 인간의 영적실상은 동일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없이는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다. 모두가 죽은 시체와 다름없다. 그런데도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자기가 더 높아지려 시도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 비교하기 죄송하지만 강시가 자기는 강시가 아니라 살아있다고 강변하는 것과 같다.

주님의 애끓음을 가슴에 품으라.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철저히 깨어진 사람은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애를 쓸 이유도 없다 모두가 예수님이 없이는 너무나 불쌍한 존재인데 그 안에서 자기 혼자 높아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대신에 정말로 내가 만난 예수를 다른 이에게 소개해서 알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요한의 어머니와 그 두 형제는 예수님과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높은 자리 차지할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신자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높은 자리 즉, 목사나 장로나 안수집사 같은 직분은 오히려 자기더러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끔 하여 다른 이를 위해서 목숨을 내주라고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예비해 놓은 수단인 줄 알게 된다. 본문에서 요한 형제에게는 높은 자리가 신앙의 목적이었지만 참 신자에게는 예수를 증거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바울은 복음을 부득이함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예수님의 애끓는 긍휼함이 자기 속에서 불 같이 일어났다. 그는 한 번만 맞아도 죽을 수 있다는 40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그런 심한 환난과 핍박 가운데도 육신적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고 그의 마음속에 항상 눌리는 것은 연약한 교회와 성도를 향한 안타까움이었지 않는가?

그가 예수를 극렬히 반대하는 자에서 열렬히 옹호하는 자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3일간 봉사가 되었다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자기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다시 살려주는 그 큰 능력에 항복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예수 믿는 신자를 그렇게 핍박했는데도 아무 것도 없은 양 다 용서해주시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신 너무나도 큰 사랑에 완전히 항복한 것이다.

주의 나라에 첫째, 둘째의 높은 자리를 달라고 요청한 야고보와 요한의 나중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야고보는 최초로 순교 당했다. 주님이 마련해 놓은 열두 보좌를 가장 먼저 차지한 영광을 누렸다. 요한은 순교를 당하지 않고 근 백 살까지 가장 오래 살아 자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그 보좌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천국의 영광을 직접 목격하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인류 역사의 진행과 종말을 다 보았다. 주의 나라의 마지막 비밀을 이 땅에서 인간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영광을 누렸다. 만약에 열두 보좌가 원탁이라면 첫째 자리와 마지막 자리는 앉는 순서에 따라 주님의 좌와 우편에 해당된다.  

바울도 그렇다. 그는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주의 일에 충성하였다. 그의 속에 보배로 계시는 예수님의 참 생명력으로 자신의 일생을 활활 태운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에 사도로 지명한 열두 명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어느 누구도 그 자격에 시비를 걸지 않으면 오히려 사도 중의 사도로 불리지 않는가?  

이 모두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다. 주님의 인도와 간섭이 너무나 신비하고 오묘하지 않는가? 사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도 영광의 보좌를 주님이 예비해놓으시고 지금도 그 자리로 이끌고 계시다. 예수 믿은 것 하나만 따져도 너무나 큰 기적이 아닌가?  

믿음이 성장한다는 뜻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는 모든 신자들이 잘하고 있는, 최소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일이다. 지난주 살펴본 요한의 푼수 같은 엄마나 본문에서 화를 낸 열 제자들도 그렇게 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을 절대 높이지 않고 묵묵히 이름 없이 봉사하는 겸손한 신자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기대치만 높이려다 보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헌금과 봉사를 많이 하고 교회를 위해 충성했는데 하나님 왜 아직 제가 이 꼴입니까? 대박의 축복을 달라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지금의 이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 구해 달라는데도 왜 아직도 안 들어주십니까?”나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 높이는 것만으로는 결코 믿음이 온전해지지 않는다. 반드시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 낮춘, 아니 아예 완전히 없어진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인간에게선 어떤 온전한 의와 선과 사랑과 소망을 발견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그들을 탓하라는 뜻이 아니다. 믿음이 바로 나부터도 가장 무익한 종임을 알고 오직 필요한 것은 주님의 긍휼뿐임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도 나와 똑 같이 불쌍하니까 그들에게도 주님께서 나와 동일한 긍휼을, 아니 더 많은 긍휼을 베풀어주길 소원하고 간구하며 섬기는 것이다. 다른 이들도 예수님을 더 친밀하고도 깊이 알아서 그분 외에 아무 소망이 없음을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도 예수 없이 살았던 나의  지난 삶과 인생이 가장 비참한 실패였음을 절감했기 때문이어야 한다.  

믿음이 가장 좋은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아는가? 교회의 장로 안수집사 되어서 대표기도 유창하게 하고, 성경 줄줄 외우고, 교회 모임에 개근하는 모습인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것은 신자가 행할 기본이다. 그보다는 본인이 다른 이에게 온전한 믿음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할 것이 하나 없기에 신자만이라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바위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털어놓고 의논하고 싶고, 그 사람의 기도를 받고 싶고, 충고나 지혜의 말씀을 듣고 싶고, 아니 그냥 깊은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아무 말 않고 함께 있어만 주어도 평강과 안도감과 따뜻함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언제든 부담 없이 찾아가 무엇이든 기대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신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전권대사다. 인간 사회에 하나님의 모습을 자신을 통해 드러내어야 한다. 정말로 신자는 구원의 반석이자 도피처 되시는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

앞에서 본문이 목사나 장로 같은 지도자에게 해당된다고 했지만 일반 신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인간에게 기대치를 버려야 이 땅에서 높은 자리다툼을 하지 않게 되는 원리는 동일하다. 쉬운 예로 교회에서 정말로 시시한 일로 성도들에게 삐져서 교회를 옮기거나 출석을 중지해선 안 된다. 교회에 하나님을 보러오지 사람을 보러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그 말도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 자체가 인간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지 않는가?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렸다는 뜻인데, 왜 또 사람에게 삐치는가? 믿음이 출발조차 안 된 꼴 아닌가?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도 동일하다. 하나님을 믿는 실력만 늘어난다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록 반드시 인간에 대한 기대치도 그와 비례해 줄고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바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다. 또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 자기를 높이려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정말로 헛되고 헛된 일임을 잘 알기에 아예 그런 일은 시도도 않게 되는 것이다.

11/1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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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일과 하나님 일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 (마태복음강해 #212 - 마23:1-7)

종교적 일과 하나님 일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 마태복음강해 (212) http://youtu.be/0-6uYvdNAYM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

바리새인들처럼 예수 믿는 신자들 (마태복음강해 #211 - 마22:41-46) [4]

바리새인들처럼 예수 믿는 신자들 마태복음강해 (211) http://youtu.be/4wLv1_udDOM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

힘든 자를 돕지 않으면 벌을 주는 미국 (마태복음강해 #210 - 눅10:25-37) [1]

힘든 자를 돕지 않으면 벌을 주는 미국 마태복음강해 (210) http://youtu.be/W0YWCXFbxgU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은과 금이 있었다면? (마태복음강해 #209 - 마22:34-40) [1]

베드로에게 은과 금이 있었다면? 마태복음강해 (209) http://youtu.be/bWDIYgI2Mz4 (클릭하시면 설교를 You-tube에서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

신자는 화장(火葬)을 하면 안 되는가? (마태복음강해 #208 - 마22:23-33)

신자는 화장(火葬)을 하면 안 되는가? 마태복음강해 (208) http://youtu.be/rHk38vp_SZQ (클릭 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

예수님이 로마에 항거하지 않은 이유 (마태복음강해 #207 - 마22:15-22) [1]

예수님이 로마에 항거하지 않은 이유 마태복음강해 (207) http://youtu.be/G6UHJnNk0yI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相論)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

네 나이가 몇 살이야? (마태복음강해 #206 - 마22:15-22) [1]

네 나이가 몇 살이야? 마태복음강해 (206)                      http://youtu.be/5N6l91G_P3k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

당신이 정말로 신자임이 확실한가? (마태복음강해 205 - 마22:15-22) [1]

당신이 정말로 신자임이 확실한가? 마태복음강해 (205) http://youtu.be/mLEnl_Tjkeo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相論)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

청함에 응했는가? 택함을 입었는가? (마태복음강해 #204 - 마22:1-14)

청함에 응했는가? 택함을 입었는가? 마태복음 강해(204) http://youtu.be/1rrTPesSP7k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참으로 두려운 기준 (마태복음강해 #203 - 마21:42-46) [1]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참으로 두려운 기준 마태복음 강해(203) http://youtu.be/G1P1eOMKDSQ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

이단에서 교회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비결(마태복음강해 #202 - 마21:33-41) [1]

이단에서 교회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비결 마태복음강해 (202) http://youtu.be/ialeYLn6HV4 (클릭 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

올해는 창기와 세리처럼 살아라. (마태복음강해#201 - 마21:28-32) [1]

올해는 창기와 세리처럼 살아라. 마태복음강해 (201) http://youtu.be/SZQPKr9_-kI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

직무유기에 빠진 교인들 (마태복음강해 #200 - 마21:23-27) [1]

직무유기에 빠진 교인들 마태복음 강해 (200) http://youtu.be/5lkkuMPM9QU (클릭 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마태복음강해 #199 - 마21:18-22) [3]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마태복음 강해 (199) http://youtu.be/8IkUF6fSgw4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하나님의 심판에 기도로 동참할 수 있다. (마태복음강해 #198 - 마21:18-22) [2]

하나님의 심판에 기도로 동참할 수 있다. 마태복음 강해 (198) http://youtu.be/ScHdExNJdSk (클릭하시면 설교를 You-tube에서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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