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수14:6)
갈렙은 성경에서 참으로 위대한 인물로 통합니다. 우선 가데스 바네아 12정탐꾼의 사건에서 가나안 땅에 관해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 시에는 무려 85세에 아낙 사람이 있는 가장 크고 견고한 성읍 헤브론 전투를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자원하였고 또 당당히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갈렙하면 우선 용맹한 사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 그리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솔선 수범하여 큰 일을 이룬 사람으로 대부분 연상합니다. 말하자면 정탐꾼 사건 때와 헤브론 정복 시에 보여준 그의 용맹성과 담대함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날의 신자가 본 받아야 할 그의 믿음도 주로 이런 측면에서만 접근하여 오직 여호와만 바라보고 어떤 어려움에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진군해 하나님의 일을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로부터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믿음의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그가 45년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을 한 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5년이 지나도록 단 한치도 변함 없는 어쩌면 더 견고해진 믿음으로 약속의 성취를 소망했고 또 스스로 순종하여 이뤄냈다는 사실입니다.
말이 45년이지 인생의 반입니다. 갈렙으로선 믿음이 생긴 이후의 전 평생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는 여호와가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소망은 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적 믿음은 인격적인 교통을 통해서 믿음의 당사자 쌍방간에 구체적인 앎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갈렙에게 그런 믿음이 생긴 것은 다른 여느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출애굽 때 열 가지 재앙 사건 이후부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고 난 이후 전 평생을 두고 한 번도 그의 믿음이 흔들림이 없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오직 하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후손이 하늘의 뭇 별처럼 해주겠다는 약속을 과연 지속적으로 믿었습니까? 갈렙의 반 정도 밖에 안 되는 기간인 25년 동안 많은 의심을 했고 또 불순종의 행위마저 저질렀지 않습니까?
“그 늙은 나이에도 힘이 젊은이 못지않았으며 그 험한 산지의 요새를 차지한 갈렙의 모습을 본 받자! 하나님 우리에게도 이 산지를 주소서! ” 너무나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 내용이 하나 틀린 것 없으며 다 좋습니다. 그러나 갈렙이 헤브론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 당신이 하신 약속을 당신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정도 성취할 능력이 없겠습니까? 나아가 하나님이 당신의 약속을 이루지 않거나 변개하시겠습니까? 헤브론 정복 자체는 하나 신기해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당신 스스로 이루시되 온전한 믿음에 선 신자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그래서 당연히 신자의 순종이 요구됩니다. 또 신자가 순종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의지나 감정이 벅차 오르는 구호형 믿음, 혹은 무조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부터 하려고 덤비는 투사형 믿음은 결코 순종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물론 일회적인 순종은 누구보다 앞서서 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열매가 안 맺히거나 혹은 진전이 느려질 때에는 반드시 힘이 빠지고 의심과 불평이 동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믿음은 항상 자기쪽에서 그만큼 센 믿음을 동원했는데도 왜 결과가 아직도 이렇지라는 의아심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나님이 신자에게 바라는 것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당신을 위해 큰 일을 해 주길 바라고 또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리라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새삼 말하건대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분은 신자가 거룩해지길 가장 원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하는 일에 신자로 도구로 쓰임 받게 해서 그 거룩을 이뤄나갑니다. 즉 신자의 성결은 오랜 시간에 걸친 하나님의 작업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신자에게 가장 요구하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신자를 성결케 하는 당신의 작업에 신자가 군말 없이 끝까지 참여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향한 생각과 계획과 약속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니 신자도 마찬가지로 그분에 대한 신뢰와 의지가 영원토록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자 갈렙이 가졌던 믿음입니다.
일반 세상에서의 믿음의 정의도 어떻습니까? 회사가 부도가 나려 할 때에 다시 일어설 소망을 붙들고 끝까지 남아 있는 부하와 사장 간에 이뤄지는 신뢰, 남편이 아무리 실직하여 당장 끼니도 못 이어 가지만 그 능력을 믿고 아내가 아무 잔소리 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하며 기다려 주는 것 등등 결국 끝까지 믿어주는 것, 그것도 한결 같이 똑 같은 자세와 세기로 믿어 주는 것이 믿음의 가장 핵심입니다. 아니 그런 상태가 아니면 사실은 믿음 자체조차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일곱 교회에 준 편지에서 한결 같이 강조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큰 일을 이루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리니”(계2:25,26) 사단에 대한 심판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그 분께서 다 하실 일입니다. 신자는 그 때까지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사단과 세상의 핍박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견딤의 힘이 절대로 구호나 투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약속에 대한 온전한 신뢰, 끝까지 변하지 않는 신뢰가 아니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갈렙을 바라 볼 때에 그가 그 나이에도 헤브론을 정복한 것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전 평생을 두고 약속을 끝까지 붙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생을 두고 한걸음씩 인도하시기에 우리도 똑 같이 평생을 두고 어떤 일에서나 그분에게 전적으로 믿고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믿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 근본 마음의 한결 같은 자세입니다.
3/16/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