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수14:7,8)
갈렙은 그의 동년배 형제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을 결국 차지했는데, 본문은 그 이유를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으므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함께 올라갔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이 하나님을 전혀 좇지 않았던가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 10명도 정탐꾼의 임무는 온전히 수행했습니다. 정탐이란 목숨을 완전히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임무입니다. 적진 속에 몰래 숨어 들어가 상대의 군세(軍勢)와 모든 방비태세를 알아내고 지도로 그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도보로 여행했던 시절이라도 40일 간이나 다녔다면 대단한 일을 해낸 셈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좇았던 것입니다.
나아가 정탐에서 돌아와서 보고도 성실하게 했습니다. 가나안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증거하기 위해 그 땅 실과를 따서 들고 왔고 또 거민이 강하고 성읍이 견고할 뿐 아니라 산지와 해변과 들판 곳곳에 펼쳐진 방위 태세를 정확하게 보고했습니다.(민13:25-29) 이 적정 보고에 대해 갈렙과 여호수아도 전혀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성경은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합니까? 갈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으면 결과적으로 10명의 정탐꾼은 온전히 좇지 못했다는 뜻이 되는데 과연 그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갈렙은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고 했습니다. 반면에 10명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13:30-33)고 했습니다.
민수기의 이 기록대로 하자면 본문도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백성을 안돈시켰으므로”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백성을 안돈시켰다”는 것 대신에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백성을 안돈시키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이며, 그 반대로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편안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흔히 전쟁을 앞둔 백성들은 지도자가 자기들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길 원합니다. 발락과 발람의 사건(민22-24장)에서 보듯이 세상의 어떤 백성이라도, 심지어 열세임이 분명해도, 승리를 기원하는 법입니다. 그럼 갈렙은 백성을 안돈시켰으므로 그들의 이런 승전 격려 요구에 맞추어 준 것입니까? 아닙니다. 백성들은 오히려 전쟁을 치면 보나마나 진다는 패전 격려(?)를 따랐습니다. 갈렙은 사실 백성을 안돈시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다는 것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냐 안 보느냐는 문제와도 사실은 조금 별개라는 뜻입니다. 열명의 정탐꾼은 목숨을 걸고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보고도 정확하게 했습니다. 나아가 가나안 적군의 전쟁 준비 태세를 자기들이 보고 느낀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말하자면 백성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은 이제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진군하여 당연히 전쟁을 칠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었으므로 사실은 승전 격려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악평을 듣고 난 후 겁을 먹은 것이지, 그 열명이 백성들이 미리부터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괜히 섣불리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다가 자기들만 욕 들어 먹겠다고 짐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로선 자기들 소신대로 보고했으므로 엄격하게 따져서 정탐꾼으로서의 잘못은 전혀 없습니다.
갈렙과 그들의 차이는 본문에 따르면 “마음의 성실성”에 있었습니다. 재삼 말하건대 정탐꾼으로서의 임무는 그들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일부러 정탐을 게을리 하거나 허위나 과장으로 보고하려고 마음 먹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마음의 성실성”이란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측면에서 성실성입니다. 단순히 정탐 명령에 대한 충성 여부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당신)”을 온전히 좇는지의 여부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갈렙도 대적의 태세와 그들의 장대함에 대해서 겁을 먹었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어차피 전쟁을 쳐야 하니까 괜히 사실대로 말해 겁주지 말고 의도적으로라도 백성들을 담대하게 만드는 말을 하자라고 마음 먹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하나님이 진군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이 승리케 해 주실 것이다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준비 상태와 주위 여건의 성실성과는 상관 없이 오직 하나님의 성실성만 온전히 믿은 것입니다.
열명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하나님이 진군하라고 했다는 데까지는 동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에 가서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다로 가지 않고 왜 이렇게 장대하고 견고한 대적을 만나게 했는가라고 의심과 불평을 동원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하나님의 진군 명령도 무시하고 그분의 약속마저 공수표로 돌려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 당신을 거짓말쟁이나 부도수표 남발자로 전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분 당신을 온전히 좇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떤 명령만 성실하게 잘 수행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심지어 사람과 환경의 눈치를 안 본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어떤 때는 사단이 아닌 하나님 쪽에서 신자더러 사람과 환경에 묶이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사람과 그 환경을 신자가 끝까지 책임지고 맡아야 할 소명으로 주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진실로 하나님을 온전히 좇으려면 갈렙처럼 그분이 약속하셨던 일을(과거), 그분이 지금 가라고 하니까(현재), 그분이 책임져 주실 것이므로(미래), 나는 지금 가기만 하면 된다(순종)는 자기 마음의 성실성입니다. 그분의 성실성을 온전히 믿기에 내 마음에 한 치의 의심과 불평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갈렙 본인의 말대로 지난 45년 동안, 또 지금 헤브론을 차지하려는 때도, 나아가 앞으로도 영원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일관되게 오직 순종으로만 이어지는 성실성입니다.
요컨대 신자가 갈렙에게서 본 받아야 할 것은 그의 용맹성과 담대성이 아니라 성실성과 단순성입니다. 믿음은 사건이 아니라 여정(旅程)이기 때문입니다.
3/17/2006
본문글을 통하여 주님의 약속(과거), 명령(현재), 보장(미래), 결과(순종)으로 이어지는 이 믿음은 단순하지만 너무나 확실하여 그에 성실히 따르는 순종임을 다시한번 확고히 깨닫습니다.
'믿음은 사건이 아니라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