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목사님.
평소에 칼럼이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느끼며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귀한 사역 너무나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늠이 가질 않아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성경 해석의 기본원리는 어느정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문맥을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던지, 예수님의 구속사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던지, 또 성경을 읽을때 성령 하나님의 조명을 간구해야한다던지, 목사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을 가지고 성경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작년 12월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그 기쁨이 넘처 성경 통독도 완료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신묘한 섭리 또한 많이 체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목사님의 사역도 정말 큰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혼란을 겪는 부분은 성령님의 조명과 사탄의 조명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기본교리나 구원론 같이 성경이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성경 내에서 찾아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신자가 실제적으로 당면하는 삶의 문제에 대해서 성경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고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이끌어 가시는 과정에서 성경의 한 인물, 인물에서 신자의 통치원리를 모두 밝히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한 통치원리를 통해 삶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또 그 과정에서 성령 하나님의 감동과 조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느끼구요. 일례로 예전에 읽었을 땐 그저 지나가던 문구, 문장이였지만 어느 때엔 그 구절구절 하나 하나가 가슴에 깊이 박히는 듯한 느낌을 제가 받습니다. 그럴때마다 꼭 하나님이 제 지금 상황에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저 스스로 이렇게 감동을 받은 구절이 성령 하나님의 조명인지, 제 개인적인 욕심이나 생각에 사탄이 조명을 한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제가 근 6개월동안 계속 기도하는 내용이 있는데, 상황 상황마다 필요하신 말씀들을 성경을 통해 계시해주셨다고 믿고 있었습미다만 최근 일들을 고려하면 아예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 정욕대로 기도한 것 부분이 많아서 정말 6개월 동안 대적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 음성 들려주셔서 확신가졌다가도, 영 신자답지 못한 기도같아서 마음 접고 포기할려고 하면 주변 사람들 통해서 꼭 그렇게 제 마음을 뒤집어 놓습니다.(주로 설교를 통해 그렇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을 보면 성령 하나님의 조명보다는 사탄의 조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성령 하나님의 조명이라고 착각한 것도 너무 부끄럽고, 스스로 바보 같습니다. 솔직히 하나님께 화도 많이 납니다. 결국 이렇게 결론날 줄 알았더라면 왜 그렇게 제 마음을 뒤집어 놓으셨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포기할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미련가질때마다 시편 23장 계속 암송했고, 무엇보다 예수님도 편안하고 안락한 그런 삶을 사시지 않았는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삶을 소망할 수 있겠냐고 정말 많이 반문했습니다. 사실 사탄에게 속은거야 제가 바보라서, 정욕에 눈이 멀어서, 끝까지 말씀붙잡고 싸워야 하는데 쉽게 타협해서 그렇다라고 반성하면 되는데 진짜 문제는 앞으로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 지 방향이 서질 않습니다. 복을 약속하는 구절같은 경우 제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가며 읽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진술이나, 딱히 복에 대해서 약속하고 있지 않은 구절에서도 조명하심을 느끼는데 성령님의 조명과 사탄의 조명 이 둘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오리온님의 회원 가입을 주님 안에서 환영합니다. 제 부족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까 감사합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로 첫 질문을 주셔서 더더욱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이번 여름에 이곳의 여성 성도들과 대면 모임으로 성경해석법에 관해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글로 정리해서 올리고 싶으나 시간이 많이 모자라네요. 카톡으로 친구 신청해 주면 녹음파일(강의식이 아니라 질의 응답식이지만)을 개인적으로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언뜻 떠오르는 인사이트는 여럿으로 나뉩니다. 성령의 조명, 사탄이 심어주는 생각, 본인의 개인적 관념 욕심 감정, 혹은 최근 상황과 연결된 의식의 흐름 등등으로 말입니다. 구원과 성화 등에 관한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교리에 비추어서 판단하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시공간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는 성경이라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과 일일이 연결시킬 수 없기에 구체적인 현실 사안에선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자신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적 원리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성경에 없는 마약은 술을 과음하지 말라는 원리로, 포르노는 성적 순결의 원리로, 지구 온난화 문제는 그분의 창조 경륜에 비추면 판단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혹시 사탄의 조명이 아닌지 구분하려면, 가장 먼저 묵상하여 얻은 의미를 (혹은 소망하여서 삶에 실천하려는 계획이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 제목들을) 반드시 성경의 진리에 비춰봐야 합니다. 어떤 교리를 적용해야 할지 구분하기 힘들면, 그 일이 과연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스도 복음이 높아지는 데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살피면 됩니다. 역으로 따지면 그런 사안이 실현되지 않아도 자신이 신자로서 그분께 헌신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 사탄의 생각이나 자신의 욕심일 수 있거나 당장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사탄도 도덕적 종교적으로 의로운 생각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신자가 자기 욕심과 계획을 앞세우면서도 스스로 의롭게 포장하기에 그 당장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기준은 그 해석이나 기도한 제목이 실제 현실에서 진행되어 가는 과정과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기 주변이나 소속한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확장되고 있는지, 자신의 인격이나 믿음이 자라는데 도움이 되는지,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는지, 이웃의 아픔과 고충을 줄여주는지, 최소한 자신의 현실적 고난과 문제가 해결되는지 등의, 결과로 판단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결론이 날 때까지의 시행착오는 영적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잘못된 해석이나 인간적인 뜻이 들어간 기도라도 당시로는 모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완전한 천재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모든 신자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데, 정확히 말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자기를 높이려는 죄의 본성이 남아있기에 영적 완전함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정작 신자가 정말로 관심을 갖고 점검할 사항은 개별 사안마다 정확히 분별하는 것보다, 자신의 중심이 순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거룩한 인도를 간구하는지 여부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소망하는 신자라면 설령 신자에게 일부 오류가 있어도 하나님이 반드시 합력하여 선으로 이끌어주십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성경의 절대적 원리에 비추어보고, 잘 모르겠으면 그 이후의 과정과 열매에 비추어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중심이 항상 주님께로 향해 있다면 너무 예민하게 구분하려 들지 말고 결과를 온전하신 주님께 맡기고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해석하고 또 그대로 행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