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적 논리적으로는 Waker님의 진술이 옳습니다. 그럼에도 구원 받기 전에는 동행이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서 말하고 위선자라고 단정 지을 것까지는 없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대부분의 구원의 여정은 오랜 기간 점진적으로 이뤄질 뿐 아니라 신비하고 오묘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가 구원 받은 시점은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에 혹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입니까? 아니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에 주님이 제자로 택해준 때입니까? 엄밀히 말하면 전자는 구원이 확정된 때이고 후자는 구원으로 부름 받은 때이나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택해주었으니까 부름 받았을 때에 이미 구원 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배반했습니다. 말하자면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질문과 반응을 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 그런 때 모두 동행하지 않은 것입니까? 반대로 사도가 된 후에 갈라디아에서 유대인들 때문에 이방인에게 위선적인 태도를 취해서 같은 사도인 바울에게 야단을 맞습니다.(갈2:11-14) 그럼 구원 후에도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은 셈이지 않습니까?
택함을 받았으나 구원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본인 스스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순전한 믿음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주님과 동행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도 절대 배척 외면하지 않으시고 교제 동행해 주십니다. 그래서 에드워즈가 말씀에 순종하며 구원을 간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원으로 가기 위한 주님과의 동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목사도 제 삼자의 구원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말해선 안 되며 그 전에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Walker님 의견이 원칙적으로 옳으나 누차 말씀드린 대로 구원에 대해서 너무 맞다 틀렸다 무 자르듯이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삼년이나 주님과 교제 동행했으면서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자 심지어 그로선 나름대로 주님과 동행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여겨집니다. 인간이 갖는 한계에 부딛혔을 뿐입니다. 지금도 목사이면서도 위선적인 모습을 수시로 드러내는 저에게 그 사건은 너무나 큰 위로가 됩니다.
원칙적 논리적으로는 Waker님의 진술이 옳습니다. 그럼에도 구원 받기 전에는 동행이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서 말하고 위선자라고 단정 지을 것까지는 없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대부분의 구원의 여정은 오랜 기간 점진적으로 이뤄질 뿐 아니라 신비하고 오묘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가 구원 받은 시점은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에 혹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입니까? 아니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에 주님이 제자로 택해준 때입니까? 엄밀히 말하면 전자는 구원이 확정된 때이고 후자는 구원으로 부름 받은 때이나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택해주었으니까 부름 받았을 때에 이미 구원 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배반했습니다. 말하자면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질문과 반응을 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 그런 때 모두 동행하지 않은 것입니까? 반대로 사도가 된 후에 갈라디아에서 유대인들 때문에 이방인에게 위선적인 태도를 취해서 같은 사도인 바울에게 야단을 맞습니다.(갈2:11-14) 그럼 구원 후에도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은 셈이지 않습니까?
택함을 받았으나 구원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본인 스스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순전한 믿음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주님과 동행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도 절대 배척 외면하지 않으시고 교제 동행해 주십니다. 그래서 에드워즈가 말씀에 순종하며 구원을 간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원으로 가기 위한 주님과의 동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목사도 제 삼자의 구원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말해선 안 되며 그 전에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Walker님 의견이 원칙적으로 옳으나 누차 말씀드린 대로 구원에 대해서 너무 맞다 틀렸다 무 자르듯이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삼년이나 주님과 교제 동행했으면서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자 심지어 그로선 나름대로 주님과 동행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여겨집니다. 인간이 갖는 한계에 부딛혔을 뿐입니다. 지금도 목사이면서도 위선적인 모습을 수시로 드러내는 저에게 그 사건은 너무나 큰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