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실질적으로 약200년간 종살이하게 하셨고 그 후 출애굽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애굽보다 더 나았을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하는데 그 많은 기적을 다 베풀었을까?
가나안보다 더 비옥한 애굽을 정복하여 거기에서 살게 할 수는 없었을까?
그 많은 기적을 애굽을 정복하는데 사용하실 수는 없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무력으로 정복하게 하셨듯이 애굽도 무력으로 정복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굳이 애굽을 정복하라 하지 않으시고 가나안을 정복하라 하신다.
애굽은 정복할 대상이 아니다.
애굽은 피하고, 탈출해야할 대상이다.
왜냐하면 애굽은 멸망당할 땅이기 때문이다.
그 곳을 정복하고 살아도 언젠가 그 곳은 멸망당할 땅이기 때문이다.
애굽은 이 세상이다.
이 세상이 아무리 풍요롭게 보이고 동경의 대상이 된다할 지라도 이 세상은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피해야할 대상이요, 탈출해야할 대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신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곳.
광야는 훈련학교이다.
특이한 것은 공중 권세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공중 권세를 잡도록 허용하시고
친히 그 아래-공중 권세잡은 아래- 들어가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광야에 오셔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되시어 그 혹독한 더위와 추위의 고통을 먼저 겪으시고, 그 고통의 대부분을 감하시고난 후 우리가 지내기에 적정하게 바꾸고 난 후에야 더위와 추위의 고통을 허락하셨다.
더위와 추위의 고통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래도 그 고통에 우리는 아우성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은혜이다.
아담의 범죄 이후 사탄에게 노출이 되어 광야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불기동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벌써 다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광야는 불편하고 힘들다.
광야에서 물이 샘솟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광야는 불편하고 힘들다.
그 불편하고 힘든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신다.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과정은 반드시 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그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거쳐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는 누구도 서로 정복하려고 하지 않는 땅이다.
차라리 애굽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정복하려고 싸우려는 땅이 될 수 있어도
광야는 아무도 살고 싶지 않은 땅이다.
오히려 힘없고 약한 백성이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땅이다.
힘들고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땅.
그 곳에서 우리의 믿음은 훈련된다.
이렇게 훈련시키신 후에야 비로소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신다.
이렇게 훈련시켜 광야를 정복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복해야할 땅은 가나안이다.
그런데 그 가나안에 이미 사탄의 나라가 세워져 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사탄을 바로 지옥불로 벌받게 하지 않으시고 공중 권세를 잡을 수 있도록 허용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초에는 하나님의 영역이었지만 어느 한 쪽을 일시적으로 마귀가 차지하도록 허용하셨다.
그 땅은 다시 하나님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그, 땅을 정복하라 하신다.
죄악이 관영하고 악의 세력이 점점 성장하여 도무지 우리 힘으로는 정복할 수 없는 땅.
우리 힘으로는 정복할 수 없는 땅을 정복하라 하신다.
가나안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정복할 수 있는 땅이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땅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한 가지 의문은 애굽에서 광야로 갈 때에 홍해를 지나게 하신다.
이것은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는 것과 같다.
물 속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옴으로서 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시 사는 것이다.
그런데 광야에서 가나안을 들어갈 때 요단강을 다시 지나간다.
물세례는 한 번으로 부족한 건인가? 많이 고민했었다.
곰곰히 묵상 해 보니 요단강을 지날 때에는 1세대는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았다.
그 후손에게 세례가 필요한 것이었다.
홍해를 건너야 애굽에서 광야로 갈 수 있고 요단강을 건너야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갈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미 가나안은 파괴 되었다.
그리고 그 파괴된 가나안을 회복 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이다.
파괴는 한 순간인데 그 파괴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은 전체 인류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시니,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끌어 가시는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긴 인류 역사 속에서 도무지 셀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그 엄청난 불의와 죄악과 고통과 아픔을 그 긴 세월 동안 사탄에게 허용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점진적으로 완성 해 나가시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언제나 믿고 온전히 하나님 나라가 회복될 때까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우리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광야, 가나안 정복을 통해 인류 역사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실 것인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지 밑그림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교통정체가 일어났을 때 앞에서 무슨 일이 있고 언제쯤 풀린다는 것을 알면, 지금 현재 상황이 답답하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기 훨씬 쉬워지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어떻게 이끌고 나가실지를 우리에게 보여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여 답답할지라도 이 상황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답변이 많이 늦었네요.
또한 저는 평신도 입장에서 글을 쓰다보니 맞는 답인지도 알 수 없고 제가 아는 선에서 답변드립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가나안보다는 애굽이 훨씬 젖과 꿀이 더 많이 흐른다고 봐야겠지요.
이것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배워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말하는 가나안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도 아닙니다.
확장되어 가는 하나님나라. 이 세상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늘 사탄, 마귀 권세들과 싸워 나가야 합니다.
또한 그러기에 지금 가나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 나라는 오히려 애굽처럼 편안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끝내 가나안에서 모든 이방민족을 다 물리치지 못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가나안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면서도 재림 에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실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오늘도 마귀, 사탄과의 전쟁에서 이겨나가야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
이삭, 야곱이 계속 살다가
애굽으로 이주했다가 출애굽하여
다시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앨 백성들이 가는 신천신지가 아닌
이미 그들이 살았던 땅에 다시 돌아가는 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