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않는 교회들

창세기강해 (48)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창4:16-22)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최근 기독교가 쇠퇴되고 있다. 가장 염려되는 사항은 청년층이 전도되지 않고 그나마 교회 잘 다니던 이들마저 떠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교회와 목회자의 부정과 비리가 세속과 같거나 더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성세대 특별히 자기 부모마저 교회에선 경건한 척해도 삶에서 표변하는 이중적 행태에 도무지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누구나 잘 아는 이유 말고 젊은이 특유의 사정이 많음을 대부분이 놓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비합리적이고 때로 완전히 난센스인지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통교회도 예외가 아니고 어쩜 더 그러니 큰일이다. 성경말씀을 억지 춘향 격으로 해석하고 이분법적으로 거룩한 성(聖)과 타락한 속(俗)으로만 나누니 수긍할 수 없다고 한다.

 

본문이 바로 그런 예다. 즉 천하의 패륜아 가인의 후손이 만들어낸 것을 보라. 구원을 얻고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아무 쓸모없고 방해만 되는 문명이지 않는가? 세속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인류 타락은 가속화되었는데 두발가인이 무기를 발명하는 바람에 라멕 같은 인류 최초의 사이코패스가 등장했다. 따라서 신자는 세상과 등지고 교회에 모이길 힘써야 한다. 오염되지 않고 부패하지 않은 크리스천 문화를 창출하여 영적으로 거룩한 일에 매진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언뜻 올바른 말씀 같고 또 일부 진술은 진리다. 그러나 표피적이고 이원론적 성경해석의 전형적 예다. 신앙연륜이 오래된 분들은 목사가 강조하고자 하는 포인트만 수용하고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젊은 층은 세상문명이 무조건 악하다고 매도하니 앞뒤가 꽉 막힌 목사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 가르침을 하게 되는 동기와 배경은 이해할 만하다. 성경이 가인의 후손(16,17절)과 아벨 대신에 태어난 셋의 후손(25절)이라고 기록하니까 하나님을 떠난 악인과 하나님 안에 있는 의인의 족보를 대조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또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든 후에(22절) 라멕과 그를 비방한 사람들 사이에 창과 칼로 살인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고 버리라고 하고 초대교회에선 정말로 모이기에 힘썼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바, 다른 말로 신자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은 그것이 아니다. 문명은 결코 악하지 않다.

 

최근에 인기를 끄는 TV의 Reality Program이 무엇인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없이 살아갈 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는지 관찰하는 것 아닌가? 당장 목사인 저부터 설교 준비나 교육자료 정리를 못한다. 그런 판국에 목사가 문명은 나쁜 것이라고 설교하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데 청년층에 먹힐 리가 없다.

 

가인의 후손은 오히려 훌륭했다.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정확히 말해 가인의 후손 중에 훌륭한 자도 있었고 악한 자도 있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편협한 해석은 본문 자체가 이미 부인하고 있다.

 

먼저 5:1은 분명히 “아담 자손의 계보”라고 시작한다. 모든 인류의 족보이기에 당연히 셋도 포함된 것이다. 유대인들의 족보는 장남 중심으로만 적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성경독자가 반드시 알아야만 할 인물 중심으로 기록한다. 아담의 장자인데도 가인이 그 족보에서 제외된 까닭이다.

 

추측컨대 아담 즉, 부모가 자식 가인을 절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친동생을 죽였어도 처음에는 분노하고 미웠겠지만 나중에는 가인이 더 불쌍해진다. 다른 차원의 사랑 즉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과 닮은 사랑으로 대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닮은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이다.

 

가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여 떠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유리방황하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성을 쌓았다.(17절) 또 다시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뜻이 아니다. 유리방황하는 것이 단순히 온 천지를 떠도는 것이 아니다. 그와 하나님과는 소통이 단절 되었고 하나님은 그를 상실된 마음 그대로 살도록 버려둔 것이다.

 

가인의 후손 야발은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었다.(20절) 목축업은 좋은 일이다. 유대인들의 생업이기도 했다. 출애굽을 보면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애굽인들은 목축을 천하게 여기고 멀리 떨어진 고센에 거주하게 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는데 목축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당장에 작은 할아버지 격인 아벨의 유업을 이어받은 셈이지 않는가?

 

또 유발은 수금과 퉁소 잡는 자의 조상이었다.(21절) 시쳇말로 딴따라의 선조라고 해석될 여지는 없다. 시편의 결론 격인 150편에선 수금과 퉁소를 비롯한 모든 악기를 동원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다.(3-5절) 결론 중의 결론인 시편 마지막 절 150:6에선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고 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호흡할 수 있는 동안 즉, 평생을 두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제자들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고 찬송했다. 바리새인들이 왕은 로마황제 뿐이니까 저들을 말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주님이 어떻게 대답했는가? 저들을 말려도 돌들이 찬양할 것이라고 했다. 호흡하지 못하는 무생물마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에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내포되어 있고 그래서 그분의 영광을 증거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악기를 개발한 것은 아주 선한 일이었다.

 

두발가인이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든 중에는 농기구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미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나는 뜻이다. 원숭이에서 원시인을 거쳐 인간으로 수억 년이 걸쳐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아이큐 세 자리로 아주 똑똑하게 창조되었다.

 

전통해석의 결정적 하자

 

물론 아무래도 자식은 부모의 영향을 받기에 가인의 직계 후손이 하나님을 멀리했을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전부 다가 그랬다고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성경은 아버지가 죄인이면 아들도 죄인이 되어 구원 밖에 있다는 사상은 구약성경에서부터 철저히 배격한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속담은 다시 쓰지 못하게 할 것이며 모든 영혼은 다 하나님께 속했기에 범죄하는 영혼이 죽는다고 에스겔 선지자는 선포했다.(겔18:2-4) 구원과 심판은 오직 하나님과 한 죄인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이뤄진다. 가인의 후예가 다 악했다면 기독교 구원의 진리를 부인하는 모순을 낳는다.

 

전통해석의 결정적 하자는 셋이 에노스를 낳고 그 때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26절) “사람들”이라고 삼인칭으로 표현한 것은 셋 가문 외의 이미 번창하기 시작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가인의 후손도 포함된다는 뜻이다. 거기다 무기를 만든 두발가인은 라멕의 아들이다. 그렇다면 라멕이 무기 때문에 살인한 것이라기보다 이미 그의 본성이 죄로 가득 차 무기를 잘못 사용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살펴본 대로 본문은 가인의 후손이 사악한 문명을 개발했고 그래서 인간의 죄가 더 가공할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뜻이 아니다. 단순히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문명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원죄로 타락하였기에 하나님이 이 땅을 당신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리라는 소명에 투철하여 헌신 순종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 내면에 심어준 당신을 닮은 형상 중에 당신을 스스로 찾는 영성을 제외하고는 예컨대 창조적 이성은 비록 죄로 오염되었어도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불신자 중에도 인류 문명에 훌륭한 업적을 쌓는 분이 있듯이 말이다. 하나님도 불신자를 향해 궁극적 구원을 빼고는 일반적 보살핌과 사랑을 충분히 베푸신다는 것이 본문의 의미다. 라멕 같은 흉악한 자의 아들 둘이 훌륭한 일을 했지 않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오묘하고 공평하다.

 

하나님이 노아 홍수로 심판한 까닭도 동철기 문명의 융성 때문이 아니라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세상에 라멕 같은 자들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또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시 내지 초기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일반인에게도 하나님은 넘치도록 사랑을 부어주며 돌아오길 기다리는데도 돌아오지 않을 뿐 아니라 도무지 인간이라면 행해선 안 되는 짐승보다 더한 악을 범했기 때문이다. 가만 놓아두면 당신께서 창조하신 목적조차 무효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과 속의 이분법도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 날에도 성과 속의 이분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절대적 진리와 거짓은 확실히 가려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알고 사랑하시어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헌신한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외면하는 자는 하나님도 외면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오직 예수 안에 들어왔느냐 아니냐로 두 종류의 사람으로만 나눈다. 그분이 인간을 나누는 다른 기준은 없다. 인간의 다른 면은 보지 않는다. 예수 십자가로만 구원하고 심판하지 그 중간의 회색지대는 없다.

 

신자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고난이 겹쳐도 심지어 이곳의 장막이 무너져 내려도 하늘에는 이곳과 비교가 안 되는 아름다운 장막이 내 이름으로 이미 등기 예비 되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으로 이 타락한 땅에서도 신자가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자 인생의 의미다.

 

문제는 이 영원하고 절대적 진리를 앞세워서 세상의 장막은 결국 무너질 것으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만 놓으려는 것이다. 이는 큰 잘못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둘이다. 우선 하나님께 충성하기보다 교회 조직체와 담임목사에게 충성하는 교회의 일군만 양성하려는 것이다. 이는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이기에 같은 목사 입장에서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둘째는 아무래도 교인들을 교회로 자주 모여야 세속의 쾌락과 죄악을 멀리하고 조금이라도 거룩하고 의로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비교적 순수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경우와 방불하다. 된장에 구더기가 꼬이는 것은 곰팡이 균이 활성화되고 된장 맛이 좋아진다는 증거다.

 

교회에 모여서 우리끼리 거룩하면 된다는 것은 우리만 천국을 가려는 현실도피적인 잘못이다. 자칫 종말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잘못은 우리가 믿는 바를 우리 스스로 평가절하 하는 꼴이다. 신자가 예수 십자가 안에서 바뀐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지, 성령이 내주하여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 동행하는 특권이 얼마나 소중한지, 특별히 예수 십자가 복음의 권세가 얼마나 엄청난지 모르는 것이다.

 

작금 많은 교회들이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다. 십자가 복음을 창고 속에 넣어버렸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기독교적인 종교의식과 관습이 복음을 대체해버렸다. 말씀이 살아 역사할 기회를 차단했다.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예수 십자가 사랑으로 그 인생이 통째로 뒤집어지게 하고 의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먼 곳에서 라멕 같은 자를 찾아보려 할 필요 없다. 교만이 하늘 꼭대기 바벨탑의 최상단에까지 올라갔던 저 같은 자를 지금 이런 도무지 감당치 못할 은혜의 자리로 하나님이 옮겨주셨지 않는가? 미국 처음 이민 왔을 때만 해도 잘 믿고 있으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주시겠지 정도였다. 목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하나님은 저를 그쪽 초원이 아니라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동안 풀타임으로 상고할 수 있는 이쪽 초원으로 옮기셨다.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은혜요 세상 최고의 축복이다. 정말로 목사가 된 것이 최고로 성공한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구더기 꼬일 것을 가장 무서워한 성경인물

 

성경에 구더기 무서워 된장을 담지 못한 대표적 인물이 있다. 흔히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으로 불리는 롯이다. 창세기 강해를 진행하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롯도 야발처럼 장막에 거하며 육축을 치는 자였지만 도시 생활이 좋아 보여 제 발로 소돔으로 찾아 들어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롯은 구해주려고 평지로 가지 말고 산으로 피신하라고 명했다. 평지의 성읍들 즉, 도시들 모두가 완전히 죄로 타락했기에 심판의 대상이었다.

 

롯은 도망가기에 가깝다는 핑계로 작은 성읍 소알로 피신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여전히 도시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그마저 허락했는데 소돔과 고모라와 가깝다보니 그 심판의 가공할 모습을 목격했다. 요즘 식으로 말해 하나님 심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그 후에 산이 아니라 굴로 기어 들어가 세상과 아예 절연해버렸다.

 

세속의 죄악에 다시는 물들지 않겠다고 철저히 회개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곳에서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처녀로 죽을 것을 염려한 두 딸이 아비에게 술을 먹여 동침,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을 대대로 괴롭힌 모압과 암몬 족속의 선조가 되었다.

 

하나님은 신자더러 세상을 떠나라고는 단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럼 아예 창조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밧모 섬에 유배되어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처럼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만 연구시킬 특별한 소명을 주지 않는 한 모든 신자는 세속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라스베가스 같은데 가서 살아야 한다. 신자가 가지 않으면 그곳의 불쌍한 영혼은 누가 보살피고 구원으로 인도할 것인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의 음행과 분쟁을 일삼는 자를 세속 법정에 맡기지 말고 교회가 내치라고 했지만 교인에 한해서다. 대신에 음행 우상숭배 토색하는 자와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뜻은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럼 세상 밖으로 즉, 이 땅에 살 이유가 없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했다.

 

바울의 그 말씀을 본문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신자는 가인과 라멕 같은 자와도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로 여호와의 이름을 함께 부르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지 보여서 알게 해야 한다. 예수 십자가가 없는 인생이 매순간순간 얼마나 허망하고 갈급한지 깨닫게 해야 한다. 더 중요하게는 그런 사랑이 사실은 가인과 라멕 같은 자에게도 단 한 시도 그 곁을 떠난 적이 없음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단지 그들이 몰랐고, 귀찮아했었고, 싫어했을 뿐이라고 깨닫도록 해주어야 한다.

 

신자가 교회로 모여야 하는 이유

 

그럼 신자가 교회로 모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이로 예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해주려면 우선 본인부터 그 사랑을 양껏 받아 누려봐야 한다. 교회나 목사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머리 되시는 예수님께 지체로 붙어서 그분의 사랑과 권능을 더 깊이 많이 받아 누리는 체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그 사랑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앞에 예수 십자가의 사랑과 함께 할 때에 진정한 선을 조성할 수 있음을 보여 알도록 해야 한다. 정말로 의미와 가치가 넘치는 기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성과 속으로 나눈다고 율법에 묶여 혹시라도 죄 지으면 어떡하나, 그러다 벌 받으면 어떡하나 인상 구기고 있다고 경건한 신자가 아니다.

 

정말 신나게 즐겁게 살아야 한다. 예수를 모르는 다른 이가 시샘이 나게 해야 한다. 너희가 믿는 예수를 나도 믿고 싶다는 반응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너희가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과 십자가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나도 소유하고 맛보아 알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길은 무엇이겠는가? 이 땅의 장막이 흔들려도 하늘의 장막을 소망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 땅의 장막으로 따지면 그들이 훨씬 더 좋을 수 있다. 하늘을 소망한다고 다시 세속과 담 쌓으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쉽게 말해 그들이 볼 때에 돈이 없고 직업이 유별난 것도 아니며 식구도 많은데다 질병과 고난이 겹쳐도 항상 웃고 불평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그들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아가 그런 와중에 같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하며 자기 가진 것을 나눠 도와주기까지 하니 불신자로선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

 

최소한 평강을 잃지 않고 요동치 않아야 한다. 자기들로선 도무지 갖지 못한 삶의 기쁨과 만족을 신자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것으로 따지자면 자기들이 훨씬 좋은 것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러지 못한 신자들이 더 행복해 보여야 한다. 불신자과 전혀 다른 뭔가를 소지한 것으로 보여야 한다.

 

신자가 그럴싸하게 해놓고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예수를 보여야 한다. 우리 인격, 도덕성, 종교성을 내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들과 우리가 다른 것은 더 똑똑하거나 착한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가 있고 없고 뿐이다. 예수를 지닌 사람으로 얼마나 기쁘고 보람과 가치를 실현하면 사는지 보여야 한다. 시샘까지는 몰라도 그럴 수 있는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신자가 세상에 보여야 할 것이 문명은 나쁜 것이라는 선포나 시위가 아니다. 문명은 좋고 귀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 없이 문명만으로는 절대 참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함을 보여야 한다. 역으로 말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문명이 거룩하고 좋음을 보여야 한다. 문명이 악이 아니라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는 인간의 죄가 악이다. 신자는 문명과 별도로 문명 안에 살면서 인간의 죄가 없어진 깨끗하고 선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신자가 교회에 주일예배로 모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또 자주 모일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모이는 것으로 그치면 롯이 굴에 피신한 꼴이다. 교회 안에 계속 남아 있으니 결국 교회가 썩기 마련이다. 굴에 피신한 자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전임목회자로 충분하다. 일반 성도는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는 실무를 직접 담당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 문명을 개인욕심과 소원과 죄에 악용만 하지 않으면 된다. 자기 재물, 권세, 명예를 높이는데 활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이의 유익과 선을 위해 개발하고 활용하라는 것이다. 문명이라고 말하니 실감나지 않는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여겨지는가? 문명이란 바로 본문에서 육축 치는 자 같은 직업이다. 직업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또 그 사랑하는 모습 가운데 예수 믿는 분이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시군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 모든 신자의 소명이라고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바다.

 

만약 교회 안에서 목사부터 자기 소명에 충실하고 성도를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면, 또 가정에서도 예수 십자가의 은혜와 권능 안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서 성도들부터 시샘이 날 정도가 된다면, 청년들이 과연 교회를 떠나겠는가? 주위 친구들 자발적으로 전도할 것이며 사랑하라 말하지 않아도 이웃을 사랑할 것이다. 만약에 교회가 목사가 그렇게 했는데도 청년이 교회를 떠나면 그야말로 가인이요 라멕이다. 예수 십자가의 권능과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는 반증일 뿐이다.

 

3/1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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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만 개의 무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1:10,11 & 16-18)

(수1:10-11 & 16-18) 육십만 개의 무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5)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2)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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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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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주민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2:8-11 & 23,24)

(수2:8-11 & 23,24) 여리고 주민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6)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3)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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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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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라합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2:15-21)

(수2:15-21) 기생 라합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7)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4)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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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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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3:7-13)

(수3:7-13) 제사장들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8)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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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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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의 할례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5:2-9)

신세대의 할례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2-9)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9)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6)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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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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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제사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10-12)

(수5:10-12) 유월절 제사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10)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7)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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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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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5:13-15)

여호와의 사자가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5:13-15)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11)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8)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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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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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순종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6:1-7)

목숨을 건 순종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수6:1-7)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12)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9)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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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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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 가운데 산 자가 되어 있는가?(부활절설교 눅24:1-12)

죽은 자 가운데 산 자가 되어있는가? (눅24:1-12) 2020년 부활절 설교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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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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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뜨게질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6:15-21) [1]

(수6:15-21) 하나님의 뜨개질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13)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10-완)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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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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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신자들의 합심기도로 끝나지 않는다.(요15:16-20) [2]

(요15:16-20) 코로나 사태가 신자들의 합심기도로 끝나지 않는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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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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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같은 신자가너무 아쉽다.(창25:27-34)

(창25:27-34) 야곱 같은 신자가 너무 아쉽다. 야곱 바로 알기(1)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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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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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아니라 리브가가 이삭을 속였다.(창27:1-10)

(창27:1-10) 야곱이 아니라 리브가가 이삭을 속였다. 야곱 바로 알기 (2)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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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0
  • 조회 수 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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