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정확한 본질과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만능 주의 신앙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신자 쪽에서 어떻게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탐구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또 그 계시는 골고다 언덕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통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접근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 증거 하고자 합니다.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마6:19-24)

조회 수 2306 추천 수 86 2003.12.15 05:38:42
마태복음 강해 (88) 12/14/2003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역마차의 일등 손님

서부영화에 나오는 역마차에 탈 수 있는 손님은 많아야 6명인데 그 중에도 일등, 이등, 삼등 손님으로 나뉘고 각기 요금이 달랐다. 창가에 앉느냐 복판에 끼여 앉느냐 만으로 구분하지 않고 더 중요한 기준이 있었다. 여행 중에 마차가 고장 나거나 진흙탕에 빠진다든지 할 때 3등 손님은 반드시 마부를 도와 주어야 했다. 이등 손님은 도와줄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마차에서 내려야 했고 일등 손님은 진흙탕이나 뙤약볕에서 고생할 필요 없이 마차 안에 편안하게 남아 있어도 되었다.

이 땅에서 열심히 돈을 모으며 사는 모든 인생들의 목표는 일등 칸 승객이 되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쾌적하고 풍요롭고 좋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만약 천국에 가는 차표에도 일등, 이등, 삼등이 있다면 어떤 순서가 될 것 같은가? 세상의 순서와는 정 반대다. 자기를 희생하며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도운 자가 일등이다. 남의 어려움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내 일이 바빠 수수방관한 자를 하나님도 혹시 너도 불쌍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 구원하느라 바빠 모른척하시는 것은 아닐까? 남이야 어떤 곤경에 처해있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려는 자는 하나님마저 그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신다.

물론 인간의 선행과 공적으로 구원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이 우리 각자를 위해 대신 죽으신 은혜로만 영생을 얻는다. 또 신자는 바로 그 은혜 안에 들어가 이미 천국 가는 티켓을 확보한 자이지만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의 내용과 질에 따라 천국의 상급은 달라진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보물을 썩어질 이 땅 대신에 하늘에다 쌓으라고 하신 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실천방안은 말씀하시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선교를 많이 하라, 교회 봉사를 성실히 하라, 불쌍한 이웃을 열심히 도와라, 아니면 최소한 기도와 말씀이라도 열심히 보라는 언급이 전혀 없다. 대신에 21-24절에서 엉뚱하게도 눈이 밝아야 된다고 했다. 시력이 좋아야 하늘이 어디인지, 보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인가,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

돈은 유익하고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상황을 한 문장으로 줄이는 개그가 유행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을 일곱 자로 된 한 문장으로 줄여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려우면 질문을 바꾸어 본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절을 고른다면 어느 절이 될 것 같은가? 여러분의 답을 한 번 알아 맞춰 볼까요? 아마 대개가 20절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혹은 24절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는 것을 꼽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되는 말씀은 21절의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이다. 그리고 본문 전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 핵심되는 21절에 근거해 “네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

이웃을 돕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 진정으로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 나라도 도와주어야지 내가 안 도와주면 더 힘든 일에 빠질 것이라는 마음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도운다. 안 됐지만 내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못 본 척 지나치게 마련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인이 타면 우리 모두 모른 척 눈을 감은 경험이 있지 않는가? 저 사람을 언제 다시 볼 것이며 무슨 상관 있는가 내가 부자 되는데 도와준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 일만 챙기기 바쁘다.

마찬가지로 재물이 내 삶과 인생을 보호해주고 남들보다 대접 받는 일등 인생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자는 재물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쪽으로만 눈이 돌아가게 된다. 대신에 재물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으로 그것으로 절대 인생의 가치가 정해지지 않는다고 믿는 자는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재물을 쌓지 않고 더욱 고귀하고 거룩한 가치를 붙들며 산다. 재물을 쌓고 싶든지 하나님을 따르고 싶든지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물과 하나님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해서 돈이 인생에 제공하고 보장하는 유익과 가치마저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간혹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6:34)고 해서 신자는 장래 일을 대비해 보험에 들거나 은행 적기 적금을 부으면 안 된다고 하는 데 그런 법은 없다. 열심히 일을 해서 미래의 더 쾌적한 삶을 위해 준비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은 한 번도 나쁘다고 하시지 않았다.

대신에 하나님은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창1:28)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다.(살후3:10)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마22:21) 하심으로 세속의 삶을 성실하게 살기를 권했다.

돈이 주는 유익과 가치는 많고 크다. 좋은 집에 크고 안전한 차에 맛있는 음식을 살 수 있다. 이민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행을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이웃을 도우려 해도 나아가 교회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등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돈은 필수적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최근에 미국 TV의 마스터 카드 선전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시리즈로 만들어져 각기 다르지만 그 포맷과 주제는 항상 동일하다. 예를 들어 야구장 티켓은 $10, 야구 유니폼은 $50, 야구 글러브 헬멧은 $100, 그러나 아빠와 함께 구경간 메이저 리그 첫 게임은 가격으로 따질 수 없음(Priceless)이라고 한다.        

인생살이에 돈이 가치 있고 유익한 점이 많지만 돈으로 절대 살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사람의 마음이다. 이수일과 심순애 연극에는 김중배가 다이아몬드 반지로 순애의 마음을 샀던데 이상하다 싶은가? 그렇지 않다. 순애의 몸뚱아리만 샀지 그녀의 마음은 평생가도 얻지 못했다.

요즘 여자들은 안 그래요 돈이면 그 마음도 사고 다 해결 되요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산 것이 아니라 썩은 마음을 산 것에 불과하다. 돈으로 마음을 산 자나 돈에 마음을 판 자나 이미 썩어빠져 더 이상 인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속에 태어나는 자식도 썩은 마음을 갖고 태어난다. 부부사이나 가정이나 그 돈 때문에 썩어 내리게 되어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다 썩어 없어지는 것들 뿐이다. 썩어 가는 기간에 따라 가격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치고 썩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이아몬드가 가장 비싼 이유는 그 썩는 기간이 가장 길기 때문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것 또한 썩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인생의 참된 가치와 행복은 성적 순도 아니지만 돈이 많고 적음과 관계 없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백인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죽자 부인이 혼자 경영할 수 없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흑인 하녀의 딸이 이별이 아쉬워 주인 여자에게 벌판에서 주워 항상 아끼며 갖고 놀던 빛이 나는 큰 돌을 선물로 주었다. 고향에 돌아와서 보니 그 돌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로 판명 났고 여인은 억만 장자가 되었다. 그래서 불쌍한 그 흑인 소녀에게 감사의 표시로 싸구려 인형을 부쳐 주었다.

인형을 받아 든 흑인 소녀는 매일 갖고 놀며 아주 행복했다. 돌멩이 보다는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나중에 자기 딸에게 물려 주었고 그 딸도 낡은 인형만 보면 행복했다. 다른 아이들이 인형이 없고 자기만 있어서가 아니었다. 인형은 바로 사랑하는 엄마의 일생 자체였고 인형을 통해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백인 여자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겠는가? 돈 때문에 자식들이 불화하고 주위 친척과 사기꾼들 등살에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불행한 일생을 보내며 죽었다. 그 자식들도 엄청난 유산을 물려 받았지만 엄마처럼 똑 같이 하루도 불행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혹시라도 그 흑인 소녀가 자기가 갖고 놀던 돌이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인 줄 알았더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당연히 선물하지 않고 자기가 가졌겠지만 흑인 소녀의 삶은 틀림 없이 그 주인 여자와 똑 같이 불행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들판의 다이아몬드는 한갓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미국 뉴욕의 티파니 보석상에 오면 억만 금으로 변한다. 어떤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이 위치한 장소와 여건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도 마찬가지다. 땅에서 보물로 생각하는 것이 하늘에서도 보물이 될 수는 없다. 땅의 가치와 하늘의 가치는 다르다. 이 땅에서 귀해 보이는 것이 하늘에선 한갓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하늘에 있는 것은 어느 것이라도 이 땅에 오면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을 발한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고 하니 자꾸 이 땅에서 비싼 것, 좋은 것으로 하나님 앞에 들고 올라 가려고 한다. 교회를 최고급 대리석으로 치장하고 강대상도 화려한 꽃꽂이로 장식하고 교회 안에 돈이 쌓여 주체를 못한다.

그 반대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하늘의 가치 있는 것을 땅에다 심는 것이다. 신자가 교회 나와 하늘의 보물을 받아 이 땅에다 보석처럼 세상에 뿌려야 한다. 우리의 삶과 인생에 하나님의 가치로 덧입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갈수록 선한 사마리아인은 교회 밖에 있고 교회 안에는 어려운 이웃을 보고도 못 본 척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만 늘어나니 어찌 된 연유인가?  

하늘의 보석을 이 땅에 뿌려라.          

그럼 하늘에 있는 보물은 무엇인가? 하늘에선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 예수님은 19-20절에서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땅과 하늘의 보물의 차이점을 무엇이라고 강조하셨는가? 땅에선 가치가 수시로 변하며 오래 가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 썩는다는 것이다. 돈이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다. 하늘에선 다르다. 가치가 변하지 않고 썩지 않으며 영원하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3,4)

성도들을 위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하늘에 간직해 놓았다고 했다. 신자가 받아서 세상에 뿌려야 할 하늘의 보석인데 이어지는 5절의 설명에 따르면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땅에서 “여러 가지 시험으로 잠시 근심하게 되고”(6절) 또 “믿음의 시련”(7절)을 받게 된다고 했다. 재물이 모자라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없고 세상에서 여러 모양으로 핍박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은 불타 없어질지라도 그보다 더 귀한 너희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지켜 보호해 주어 절대 썩지 않게 해주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썩지 아니할 기업 하늘의 보물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9절)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이 땅에서 최고 가치 있다는 다이아몬드를 주어도 사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다. 그것은 오직 사랑으로 밖에 사지 못한다. 야구 구경간 첫 게임에 함께 간 아빠로부터 야구 규칙을 상세히 설명 듣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고 기념품 야구공에 유명 선수의 싸인을 받은 추억, 낡은 싸구려 인형에 실려 있는 엄마의 일생은 절대 억만 금을 주어도 살 수 없다. 비록 야구공과 인형이 썩어 없어질지라도 그것에 담긴 아빠 엄마의 사랑은 절대 썩지 않는다. 평생을 잊지 못하며 천국까지 갖고 갈 수 있다.

아이들을 명품 옷으로 치장한다고 해서 절대 그 영혼을 살 수 없다. 그럴수록 그 영혼은 더 썩어 간다. 대신에 자녀들의 마음에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먼저 차 있다면 남대문 시장의 천원짜리 옷을 사 입혀도 그 아이는 보석 같이 빛날 수 있다.

하늘과 땅의 양쪽에서 절대 썩지 않고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이다. 그러나 단순한 애정이나 인륜적 사랑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다. 우리가 어떤 모습과 형편에 있었던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 영혼에 채워진 주님의 사랑을 주위에 나누는 것이 하늘의 보석을 이 땅에 갖고 와 뿌리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썩을 것, 더러운 것, 쇠할 것으로 영향 받지 않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부부 사이에 부끄럽고 숨기고 서로 속이는 것이 단 한 치도 끼워 들지 말게 해야 한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각자 호주머니 따로 차려는 생각을 갖지 않아야 한다. 부모 자식 간이 욕심과 고집으로 비틀어져선 안 된다. 이웃이나 성도 간에는 자존심, 체면, 위신, 시기, 질투로 담이 쌓여선 안 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 중에서 당신과 원수 되었을 때 사랑으로 구원하셨듯이 우리 또한 남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던 우리 원수가 되었든 주님의 심장을 갖고 대해야 한다.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졌던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남을 자기 보다 낫게 여기고 각기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 보아 자신의 기쁨을 충만케 해야 한다. 모든 인간 관계가 서로 벌거벗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온전하고도 성숙된 인격과 인격의 진정한 만남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만이 하늘에 보물을 쌓고 천국행 역마차의 일등 칸에 탑승할 수 있는 길이다.

인생에서 가장 신나는 일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신나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어떻게 했을 때에 가장 재미있고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는가? 두 말 할 것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다. 예수님이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한 것을 너무 고상하고 거룩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꼭 무엇인가 종교적, 도덕적 선행을 해야만 한다고 까지 부담 가질 것도 없다. 21절의 말씀 대로 너 마음이 가는 데로 보물을 쌓으면 된다.

본문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 형태를 지적한 후에 하신 말씀이다. 그 말은 여전히 바리새인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다는 뜻이다. 저들은 오직 세상 사람의 칭찬 만을 목표로 구제, 기도, 금식했는데 예수님은 자기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을 동원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재물을 쌓으려면 세상을, 대신에 하늘에 보물을 쌓으려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마음은 세상에 두어선 아무리 종교적 행위를 해도 하늘에 보물이 쌓이지 않는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깨우치려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제자들더러 너희도 혹시 재물이 제공하는 쾌적함, 편안함, 풍요로움, 화려함, 잘 나감, 우쭐함, 앞서감 등이 재미있고 신나면 그렇게 살아라, 단 그 일을 위해 제발 하나님을 동원하지 말고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금식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참으로 심각하게 받아 들이셔야 한다. 시쳇말로 바꾸면 이렇다. “너희는 너희 식으로 믿어라. 나도 내 식으로 너희들을 대하겠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위해서만 당신이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앞에 인용한 베드로전서의 말씀대로 하면 신자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고 믿음의 시련이 있어도 오직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끼리 서로 썩지 아니하는 기업을 나눌 때에,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구원할 때에, 하늘에 있는 보물을 서로의 마음과 영혼 속에 각자 상대를 위해 조금씩 쌓아 나갈 때만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작동시키겠다는 것이다.

신자란 어떤 자인가? 단순히 주일 성수를 하여 천국 티켓을 보장 받거나, 기도하고 말씀 보고 착하게 살고, 이웃을 열심히 도우면 천국 일등 칸이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자일까? 물론 그런 것들 다 중요하다. 그러나 신자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신도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된 자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좋아 하는 것을 내가 싫어하면 좋아하려고,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면 싫어하려고 노력하여 바꿔 나가는 작업을 하는 자가 신자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나도 하고 싶은 자가 된 것이 신자다. 오늘의 본문 식으로 이야기 하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고 그것이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을 깨달아 그것을 위해 사는 자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는 세상에 돈과 연관이 없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그것을 전부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이 신앙인 줄 착각하고 있다.  

물론 돈이 없거나 모자라면 짜증나고 불편하고 초라해지고 부부 사이, 부모 자식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과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로 생기는 어떠한 어려움보다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픔을 더 괴로워 하는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돈으로 이 땅의 재미와 편안함을 사는 것보다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 더 즐거워진 것이 신자다.

하늘에 보물을 쌓기 위해선 모든 인간 관계에서 서로가 교만, 열등감, 고집, 탐욕, 인생관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영육간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단 한 번도 인격과 인격이 벌거벗고 만나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상대의 마음을 사랑으로 사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워 그것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금식해야 한다.  

이제 벌써 한 해를 되돌아 보고 정리해야 할 시점에 다가섰다. 세상적으로 성취한 것 별로 없고, 선행과 교회 봉사에 게을렀을 수 있다. 그러나 신자란 그런 것으로 올 한해의 성공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

정말 심각하게 내 자신을 점거해야 할 것은 과연 올 한 해 내 마음이 어디에 있었으며 정말 그 마음대로 살았는가 이다. 눈이 어느 쪽으로 향했는가? 한 쪽 방향으로만 바라 보았는가? 아니면 양쪽을 다 살피느라 사팔뜨기가 되었는가, 몸은 교회에 앉아 있으면서 세상만 바라보느라 짝 눈이 되었는가?

현실적으로는 내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부터, 배우자든, 자식이든, 이웃과 성도든 나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과 영혼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추억거리가 하나라도 만들어졌는가를 살펴 보라. 만약 그렇다면 올 한해는 성공한 한 해다. 그런 것이 없어도 좋다. 심지어 올 한 해도 여전히 세상에서 일등 승객이 되려고 열심히 돈을 모으며 살았는데 연말에 되돌아 보니 결국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실 예수님의 사랑만이 억만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Priceless) 가장 귀한 것이었다는 고백이 나오는가? 그렇다면 여전히 성공한 한 해다.

믿음이 좋아지려면 신자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두 마음을 구태여 품을 필요 없다. 단 기억할 것은 두 마음을 품은 자는 하나님이 수수방관하시며, 하나님이 아닌 마음을 한 마음으로 갖고 있다면 우리가 죽든 말든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오직 당신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며 또 그렇게 하고 계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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