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10,11) 무당도 하나님을 믿는다.

조회 수 1077 추천 수 44 2007.07.25 19: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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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사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단2:10,11)



브누갓네살 왕이 자기가 꾼 꿈을 술사들에게 해몽하라고 한 요구는 생떼였습니다. 꿈꾼 내용을 먼저 말해주고 그 의미를 풀라고 해야 정상인데 꿈 내용은 전혀 가르쳐 주지 않고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꿈도 알아맞히고 해석도 하라는 것입니다.

왕은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3절)라고 말했습니다. 기괴한 꿈을 꾸어  기분이 썩 안 좋았고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은 분명 기억하는데 아무리해도 내용은 기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술사들이 너무하다고 항변했습니다.

해몽이 불가능하다고 그들이 왕에게 고한 변명 세 가지가 의미심장합니다. 우선 세상에는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꿈이란 당사자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인간이 남의 생각도 알아맞히기 힘든데 본인이 기억도 못하고 단서도 하나 없는 꿈의 스토리까지 알아내어 해몽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술사에게 이런 일을 물은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무슨 일이든 명할 수 있어도 이 일 만큼은 “희한한 것(11절)”, 즉 아예 얼토당토 않는 요구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술사에게도 묻지 아니할 만큼 완전히 불가능한 일임을 상식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신들에는 육체와 함께 거하는 신이 있고 그러지 않는 신이 있는데, 전자의   신은 도저히 이런 일은 알 수 없고 후자의 신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한 변명과 연결하면 자기들로선 해몽이 불가능하므로 자기들이 믿는 신은 육체와 거하지 아니하는 신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들 스스로 자기들 우상과 참 하나님의 차이를 실토한 것입니다. 무당도 하나님을 경배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를 알고 그 권능을 믿은 셈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신들이야말로 그들 백성과 함께 거했습니다. 화려한 신전에는 온갖 형상의 신들이 위용을 뽐내며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제사 드리고 개인적 대소사뿐 아니라 온갖 국가적 행사를 신탁을 받아 행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아 그 백성들과 함께 거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어 여호와가 바벨론 신에게 패배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인간과 거하지 않는 신이란 사람이 고안해 낸 신이 아니라 인간의 외부에서 꿈을 직접 심어주는 신입니다.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세상만사를 주관하며 모든 피조물로부터 초월한 존재인 참 하나님이 분명히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신은 인간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도록 자기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요컨대 다른 인간의 일을 동일한 수준의 인간이 고안한 신이 주관할 수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의 신이 하는 역할은 인간의 필요를 그대로 이루어주거나 아니면 방해하지 않는 것에 한정됩니다. 그래서 그 신앙은 오직 신들의 기분을 달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인간의 치성의 크기와 바쳐지는 제물의 질과 양에 따라 신의 기분도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많이 바치면 많이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바꿔 말해 신 쪽에서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여 이끌어가지 않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실재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기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위로 받고 힘을 얻기 위해 만든 인간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모든 필요를 의탁하고 온갖 고충을 쏟아 부어서 대리 만족을 얻는 대상에 불과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 요구대로 하는 신입니다.  

다니엘이 믿는 여호와 참 하나님은 전혀 다릅니다. 인간 외부에서 인간사를 주관하는 초월적 존재입니다. 그와 세 친구의 이방 땅에서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세밀하게 개입하시는 분입니다. 그들이 우상숭배를 거절해 죽게 되자 당신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며 직접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다니엘이 기도하자 꿈의 내용마저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므로 꿈 내용마저 알아맞히었다는 단순한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왕에게 그런 꿈을 꾸게 한 것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내용을 모를 리 없었을 뿐 아니라 당신께서 미리 계획하신 꿈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왕에게 그런 꿈을 꾸게 할 때부터 모든 사태가 이렇게 될 것까지 다 계획하신 것입니다.    

이방 땅 바벨론에서 다니엘의 믿음과 인품을 드러내어서 그로 총리가 되게 하고 또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당신의 권능을 만방에 선포하려는 것입니다. 다니엘로 당신께서 주신 지혜로 이방 왕들을 잘 보살피되 하나님의 선지자와 우상을 섬기는 술사와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조시키려는 것입니다.

이런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는 각각 섬기는 백성들의 기도 내용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신자도 무엇이든 소원하는 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다 아시고 또 직접 계획한 일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묻습니다. 자기를 어떻게 바꾸시며 인도해 나가실지 구체적으로 몰라도 그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나아가 왕에게 꿈을 심어주고 다니엘에게 구체적으로 그 내용까지 알게 하듯이 신자에게도  당신이 직접 시키는 기도를 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신자 본인이 명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해도 성령님이 신자로 기도할 마음을 심어주며 그 제목까지 가르쳐 주십니다. 예정하지 않았던 기도가 자기 입에서 술술 나오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정과 신령한 하늘의 일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런 신자의 영적 체험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뤄나가십니다. 따라서 신자의 기도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넘어서 그분의 일에 동역하는 것입니다. 또 그 동역은 신자의 자발적, 인격적, 체험적인 하나님과의 동행과 연합을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반면에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기도는 오직 인간의 필요와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상의 뜻과 계획에는, 사실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 우상 자체의 그것은 있을 수가 없지만,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우상 또한 인간에게 대해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스스로 정해 놓은 기준과 수준에만 맞추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영적, 초월적인 거룩과 의와 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현실의 눈에 보이는 문제에만 국한하여 자기 소원이 형통되기만 빕니다.

비는 자와 우상의 관계도 give-and-take의 계약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가 없어 그곳으로 갈 동안의 의롭고도 성숙시키는 과정과 그 열매는 따로 없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만 그 처리를 위해서 간구하는 임시방편이자 사후 약방문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방인들이 우상을 향해 비는 기도가 왠지 우리가 지금 드리는 기도와 비슷해 보임은 어떤 까닭인가요? 무당도 하나님을 믿어서입니까? 아니면 그 반대로 우리가 우상과 가까워서입니까?

7/2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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