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출석중단이유 (9)-너무 화가 많고 잔인한 하나님 같습니다.

 

(의심 9) 잠깐 불평한다고 다 때려죽이는데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걸 하나님은 아실 텐데도, 힘들다는 걸 이해하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말이나 격려는 전혀 없이 너무 힘들어서 잠깐 불평한다고 분노를 힘껏 구겨 넣은 재앙으로 다 때려죽이는 민수기 11장 1절의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좋으신 하나님 입니까? 우리는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피터지게 두드려 패서 골절상 입힌 후 병원에 입원 시켜버리는걸 보고 사람을 훈련시키고 훈계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화난다고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는 걸 하나님이 훈계/훈련시키는 것이라며 대충 넘길 수 있는 겁니까? 이집트와는 달리 사막에서는 넉넉하게 먹지 못해서 눈물 흘리고 힘들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힘을 내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격려의 말은 한마디도 없이 '크게 분노'만 하는 민수기 11장 10절의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좋으신 하나님이 맞는 겁니까? 11장 33절에서조차 고기,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선지자 엘리사를 놀린다는 이유로 경고도 없이 즉시 곰 2마리에게 42명의 아이들이 학살당한 열왕기하 2장 23-24 사건도, 엘리사의 저주를 하나님께서 최종 승인해서 아이들을 죽인 사건이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훈계 차원에서 잠깐 벌을 주는 것도 아니라 곰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걸 허락하신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아는 좋으신 하나님이 맞는 겁니까?

 

(변증 9) 하나님은 분풀이로 형벌을 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며 그에 비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완악했는지에 관해선 앞선 9번 변증에서 간단하게 설명해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냉혹 잔인하게 보이는 구체적인 몇 가지 성경의 사례들을 들었는데 각기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겠습니다.

 

1. 민수기 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민11:1)

 

성경 해석에서 가장 금해야 할 사항은 한 구절만 따로 떼어내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원문은 장절의 구분 없이 죽 이어져 저작되었습니다. 반드시 앞뒤 문맥은 물론 그 책 전체의 주제와 내용과 연결시켜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세 오경(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다섯 권)은 하나의 대하소설처럼 스토리가 이어지므로 다른 책의 내용도 함께 참조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과를 간단히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사백 년간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었고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해주었습니다. 앞선 답변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로 광야로 이끌었어도 반석의 생수와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었고 구름과 불기둥으로 보호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 도착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는 언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수여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율법대로 행하면서 열방 앞에 그 소명을 다하기로 서약하고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 제사장과 성막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받아서 규약대로 언약궤와 성막을 제작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출애굽기가 말하는 바입니다.

 

레위기에서 제사제도 및 기타 율법을 상세히 가르친 후에 민수기에 들어오면서 가나안 전쟁을 치르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합니다. 군대로 동원될 인구조사를 시행했고 전쟁을 수행할 조직을 완비하고 행군순서도 정한 후에 제사장을 임명해 시내 광야에서 율법대로 첫 유월절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시내광야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민수기 1-10장의 내용입니다. 이제 곧 가나안 전쟁을 하나님이 승리케 해주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선 입법 행정 사법 체계와 군대 조직까지 완비한 후에 거주할 땅만 차지하면 신정국가로 세워질 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분의 권능으로 달성되기 직전에 백성 중 일부가 여호와에 대해서 악한 말로 원망한 것입니다. 지금 꼭 가나안으로 진군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서 노예로 노동만 하면 먹고 마실 것을 다 책임져주고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느냐고 불평한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한국이 일본 강점기에서 해방되어서 헌법을 만들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선출되고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념식을 앞두고 일부 백성이 불평한 꼴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가진 것 없는 최고로 작고 가난한 나라로 국제정세에도 무지하니까 차라리 강대국 일본의 지배를 계속 받는 것이 더 좋다고 불평하는 셈입니다. 어떻게 그런 자들을 벌을 주지 않고 그대로 버려둘 수 있습니까? 하나님 이전에 백성들이 나서서 심판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벌은 사람은 죽이지 않고 장막 끝만 사르게 했고 그것도 모세가 기도하자 바로 불을 꺼주었습니다. 하나님으로선 사백 년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우리 민족만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에 차있는 다른 백성들의 사기를 죽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찌 이런 하나님이 잔인한 분입니까? 그 반대로 너무나 선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참고로 일부 번역본은 진영 끝의 사람들을 태워죽였다고 말합니다. 원어 상으로는 진영의 가장자리 부분이라는 뜻만 있고 사람을 직접 목적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번역은(영어판도 포함) 진의 끝(일부 영어판은 some이라고 불분명하게 번역)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진영 끝의 일부 사람이 타죽었다고 (킹제임스흠정역-한글판, 영어 KJV판 정도) 번역해도 상기 변증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가나안 진군을 하는 맨 가장자리(적군과 가장 먼저 전투를 벌어야 하는 대열)의 일부 사람들을 심판해서 가나안을 향한 이 행군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막중한 의미를 지니는지 똑똑히 보여주었고 모세가 기도하자 곧바로 심판을 거둔 것입니다.]

 

2. 민수기 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민11:33)

 

마찬가지로 앞뒤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미 민11:1에서 백성들의 너무나 잘못된 원망을 듣고도 장막 끝만 태우고 사람은 죽이지 않고 용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1:4에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라고 불평했습니다. 출애굽 때에 이슬라엘 백성 외에 다른 종족들도 많이 따라 나왔는데(출12:38) 그들이 만나만 먹으니까 너무 싫다고 불평하면서 이스라엘 사람까지 부추기며 선동했습니다.

 

모세가 계속되는 원망에 지쳐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한 달 동안 고기를 질리도록 먹게 해줄 것이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11:23)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70인 장로를 세웠는데 또 다시 그 중에 모세에게 불만을 품고 제대로 순종하지 않은 두 장로가 나왔는데도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용서해주었습니다.(민11:26-30)

 

그리고 메추라기를 내린 후에 상기의 벌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민11:34절을 보십시오.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벌을 내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탐욕을 품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동하여 이 사태를 유발시킨 다른 종족들 그 중에서도 주도자들만 처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 받아 마땅한 자들만 그것도 당신의 인내의 한계가 찬 후에 심판을 하십니다.

 

3. 열왕기하 2:23,2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2:23,24)

 

우선 우리말로 작은 아이들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어린이가 아니라 20대 청년인데 열왕기상 3:7에 솔로몬이 왕이 될 때에도 같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성인이 되었고 영적으로도 스스로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엘리야를 대신해서 이제 막 하나님의 선지자 사역을 시작한 엘리사를 처음부터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한 것입니다.

 

대머리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엘리사의 외모가 그랬을 수 있는데 우선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것부터 큰 잘못입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히 남자의 머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입었음을 상징하기에 비록 엘리사가 대머리라고 해도 그것을 직접 놀려선 안 됩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그런 사정과 하나님의 뜻도 충분히 알고 있는 자들이 일부러 엘리사는 영적인 권능을 입지 못해서 주의 종이 될 자격이 없는 자라고 깔아뭉개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두 번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올라가라는 말은 엘리야가 사역을 완수하고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건(왕하2;1-11)에 빗댄 것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자기 후계자로 세우면서 마지막으로 자기에 부탁할 소원이 있는지 묻자 스승보다 갑절의 영감을 얻게 해달라고 답했습니다.(왕하2:9) 그 소원이 이뤄진 증표로 엘리사는 스승이 불 수레로 승천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또 그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소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맞은편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의 생도들이 나와서 엘리사를 존경하며 엎드렸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행방을 계속 궁금해 하는 그들에게 그는 이미 승천했으니 찾지 말라고 말했고 엘리사의 말대로 사흘 내내 오십 명이 탐색해도 아예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성의 우물물을 깨끗하게 고쳐줌으로써 선지자로서 권능을 엘리야로부터 받았다는 증거를 드러냈습니다.(왕하2:13-22)

 

그 후에 상기 사건이 이어집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영감을 받았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가 되었고 실제로 그 권능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선지자 생도는 물론 일반 백성들도 다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젊은 무리만 엘리사를 아주 깔보고 선지자로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상기의 조롱을 쉽게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대머리(여호와의 권능도 받지 못한 자)가 선지자 행세를 하고 있는데 정말 선지자라면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이적을 보여 봐라.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선지자 행세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 엘리사는 자기를 저주하는 것은 바로 스승 엘리야는 물론 여호와를 저주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했더니 숲에서 곰이 나와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습니다.

 

하나님이 곰을 통해 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긍휼을 베푸는 대신에 당신께 끝까지 교만하고 완악하게 대적하며 특별히 당신의 사역을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주십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이 벌을 받았으니 엘리사를 조롱한 자는 훨씬 더 많았으나 그 중에서 꼭 벌을 받아야만 할 자만 죽었다는 뜻입니다.

 

민수기에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진군을 하려고 할 때에 원망한 것 때문에 또 그들 속에 같이 살던 이방 족속이 그 진군을 방해하여서 벌을 받았습니다. 그와 동일한 성격의 형벌입니다. 엘리야 대신에 엘리사가 하나님이 세운 선지자로서 막 사역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그 일을 훼방하려고 막아선 사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으로선 마땅히 엄하게 벌을 내려서 모든 사람에게 경고를 주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든 세 경우를 다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면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정하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잔인하고 비정한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십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습니다.”(출34:6,7)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한 구절만 떼서 그것도 문자적으로 해석해선 절대 안 됩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21) 성경을 정말로 깊이 공부하면 하나님의 너무나 큰 사랑과 완전한 공의 앞에 순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인간은 신자까지 포함해서 얼마나 교만 완악 치사 추악한지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9/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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