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바람님 제가 수없이 강조해왔듯이 성경은 가장 먼저 앞뒤 문맥상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책 전체의 주제와도 비교해 봐야 합니다. 절대로 19-21절까지만 따로 떼어서 해석해선 안 되며 그것만 보면 마치 행위구원처럼 여겨지는데 그런 뜻이 전혀 아닙니다.
문맥상의 의미를 찾으려면 문맥의 한 단위를 정해야 하는데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맨 앞에 작은 동그라미가 붙어 있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이 문맥(소주제를 설명하는 하나의 연결된 스토리)을 나누는 표식입니다. 따라서 19-21절도 최소한 16-24절 전체 안에서 뜻을 찾아야 하고 그 후에 갈라디아서 주제와도 비교해 봐야 합니다.
이 구절이 포함된 문맥의 뜻은 간단히 말해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을 비교한 것인데 , 구원 받아서 성령이 내주하는 신자와 성령이 없는(육체) 구원 받지 못한 자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19-21절을 행하는 자는 그것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않아 성령이 없고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자는 그런 행태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체의 일을 설명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다시 한 번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전체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의 은혜로만 구원 받을 수 없고 할례 같은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잘못을 꾸짖고(갈1:8 서두에 그렇게 선포해놓았음), 신자더러 참 복음 위에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5:1-15를 다시 잘 읽어보십시오. 유대주의자들과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 여전히 할례를 주장하며 아직도 종의 멍에를 진 자들은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데 그들의 모습이 17-21절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같이 비교적 짧은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통독하고 그런 식으로 반복하면 전체 그림이 쉽게 그려집니다.)
반면에 22-24절은 그와 대조되는 십자가 복음을 믿는 구원 받은 신자에 관한 설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5:25부터 신자라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으니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도록 노력하라는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도와 주시고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안에서 그 은혜를 바로 보도록 해주시는 도움에 감사합니다. 그 동안 열심과 행위위주로 살아오다보니 믿음안에서의 삶이 마치 제 행위와 의의 수준의 결과로 축복받는 다는 오해를 많이 하고 살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잘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앞으로 주님을 올바로 알아가는 삶에 큰 격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안에서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들꽃바람님 제가 수없이 강조해왔듯이 성경은 가장 먼저 앞뒤 문맥상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책 전체의 주제와도 비교해 봐야 합니다. 절대로 19-21절까지만 따로 떼어서 해석해선 안 되며 그것만 보면 마치 행위구원처럼 여겨지는데 그런 뜻이 전혀 아닙니다.
문맥상의 의미를 찾으려면 문맥의 한 단위를 정해야 하는데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맨 앞에 작은 동그라미가 붙어 있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이 문맥(소주제를 설명하는 하나의 연결된 스토리)을 나누는 표식입니다. 따라서 19-21절도 최소한 16-24절 전체 안에서 뜻을 찾아야 하고 그 후에 갈라디아서 주제와도 비교해 봐야 합니다.
이 구절이 포함된 문맥의 뜻은 간단히 말해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을 비교한 것인데 , 구원 받아서 성령이 내주하는 신자와 성령이 없는(육체) 구원 받지 못한 자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19-21절을 행하는 자는 그것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않아 성령이 없고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자는 그런 행태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체의 일을 설명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다시 한 번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전체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의 은혜로만 구원 받을 수 없고 할례 같은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잘못을 꾸짖고(갈1:8 서두에 그렇게 선포해놓았음), 신자더러 참 복음 위에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5:1-15를 다시 잘 읽어보십시오. 유대주의자들과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 여전히 할례를 주장하며 아직도 종의 멍에를 진 자들은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데 그들의 모습이 17-21절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같이 비교적 짧은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통독하고 그런 식으로 반복하면 전체 그림이 쉽게 그려집니다.)
반면에 22-24절은 그와 대조되는 십자가 복음을 믿는 구원 받은 신자에 관한 설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5:25부터 신자라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으니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도록 노력하라는 권면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