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8,9) 믿음도 과연 선물인가?

조회 수 718 추천 수 33 2010.12.05 18: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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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도 과연 선물인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본문은 기독교 구원의 진리를 한 마디로 쉽게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지 인간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므로 누구라도 구원을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또 믿고 있는 내용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어지간한 이단들도 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믿음마저 하나님의 선물인지, 인간이 적극적 의지적으로 믿어야만 하는지는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의견이 분분합니다.

본문은 믿음도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그 근거구절로 가장 자주 인용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류입니다. 믿음이 선물이라는 것이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이 구절이 그 사실을 완전하게 확증시켜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헬라 원어 표현으로는 “이것”이라는 대명사가 “믿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앞의 문장 전체 즉,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를 받기 때문입니다. 구원 얻은 것은, 믿음이 생긴 것과는 별개로,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인간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뜻일 뿐입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근거는 다른 구절들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2,14)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구원을 알려면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 즉,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은혜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길을 질문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도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도 진리의 영, 성령을 받으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요컨대 성령의 간섭이 없으면 구원을 얻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믿음도 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전혀 믿으려 하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도 순간적으로 “뿅”하고 믿음이 생기게 해준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복음의 내용을 전해 듣고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항복하며 엎드리는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비유컨대 어떤 분이 최신형 평면 HD TV를 선물해 주었다고 칩시다. 선물 받는 분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 TV가 벽에 설치되고 화면이 켜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반드시 본인이 택배 배달꾼에게서 수령하여 포장을 뜯고 설치해야 합니다. 설령 설치까지 해준다고 해도 최소한 켜서 보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합니다.

그럼 선물 받는 행위를 자신이 했으므로 믿음은 선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은 선물을 받을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현관 벨이 울리며 선물 배달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받아서 박스를 뜯고 설치했습니다.

바로 이 선물 받아 설치하는 행위가 믿음인데 단지 자신이 행동 했다는 한 가지 이유로 그 믿음을 선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선물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도 필요도 아예 없었지 않습니까? 선물을 받아 사용하며 즐기는 행위까지 종료가 되어야 선물이 선물로서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선물 받는 행위 즉,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물론 논란거리가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보낸 자가 누군지 모르고 받을 물품도 내게 별로 필요가 없으므로 받지 않을 수도 있으니 믿음은 도리어 인간의 주관 아래 있다고 반발하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그 선물이 폭발물인지, 마약인지 모르는데 어찌 함부로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높은 사람이 보내주었어도 이미 집에 있거나 좋지 않은 것이라면 뜯지도 않고 방치하거나 아예 버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짜로 주시는 구원과 그 선물을 받는 믿음에 관해선 그런 논리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우선 역으로 따져보십시오. 인간이 자기 의지로 거절했다고 치면 믿음 자체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또 믿음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선 믿음이 선물인지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쟁취한 것인지는 전혀 논할 필요도 의미도 없습니다.

불신자나 전도 받고도 믿지 않은 자들에게 구원과 믿음이 선물이다 아니다 이야기 해봐야 소귀에 경 읽기일 뿐입니다. 성경도 분명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을 거부한 사람은 단지 선물을 받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육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그럼 전도 받아서 믿게 된 자들에게만 이 논의가 의미를 가지는데, 전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복음은 물론 믿음도 선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습니까? 앞의 비유를 다시 들자면 선물해준 TV를 아무리 택배회사에까지 찾아가 받아 왔던, 심지어 상품권만 받아서 백화점에서 자신의 차로 실어왔어도 선물은 선물일 뿐입니다. 그 선물 받는데 자신이 기여한 점은 없고 오직 선물 준 사람의 재량에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몰라도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라는 즉, 선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두 가지 결정적 하자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선물을 안 받을 수도 있었는데 받았다는 뜻을 함의합니다. 그럼 받았다는 행위 자체가 필연적으로 받지 않고 거절한 자에 비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랑이 됩니다. 자신은 도덕적, 종교적, 영적으로 어느 정도 깨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심(信心)이 남보다 출중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앞에서 말한 대로 사실은 아주 비논리적인 주장입니다. 믿음이 안 생기면 구원조차 불가능합니다. 구원에는 그 선물을 받는 믿음의 행위까지 함께 포함됩니다. 그럼 구원이 선물이면 그 속에 포함된 믿음도 필연적으로 선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복잡한 신학적 논쟁을 하자거나, 자신이 구원 받은 체험에 비추어  어느 것이 옳은지 잘 따져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다고 십자가 앞에서 철두철미 깨어진 자라면 구원뿐 아니라 그 깨어짐 자체도 선물이었다고 저절로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 속엔 선이라곤 없기에 회개가 자기쪽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었다는 즉, 자기는 전혀 회개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오히려 자기는 최고 의롭다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구원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선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로만 온다는 것을 갈수록 더 확신하게 됩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온전한 인도를 받고 있는 신자라면 자신의 실체가 아직도 여전히 추하고 부끄러운 것을 깨닫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진리의 영의 첫째 임무가 죄에 대해 깨닫게 해주는 것이지 않습니까? 신자로 하나님 자녀답게 바꿔주는 일말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물론 전도 받을 때에 적극적으로 믿어야 하고 주님의 자녀답게 살겠다는 결단도 해야 합니다. 믿은 후에도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성숙된 믿음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도 사실 하나님의 선물인지, 자신의 노력에만 의존된 것인지 지나고 보면 자연히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남들 앞에선 몰라도 진짜 솔직하게 자문해보면 그 답은 선물이라고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무가치 하거나 당장 없어져야 할 쓰레기라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선 이미 이 세상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분에겐 당신의 독생자 생명만큼이나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은 추하고 더러운 것뿐임을 토설할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보혈로 우리를 깨끗케 해서 당신의 뜻에 걸맞게 그분께서 높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믿음을 인간 세상에서 현실적 선물을 받는 행위에 비유하다 보니까, 비유가 갖는 절대적 한계이긴 하지만, 여전히 인간 쪽의 공로가 비록 크지 않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이 착각할 수 있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성령으로라야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알 수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성령이 인간의 영에 작용하는 과정도 예수님이 바람에 비유한 것처럼 인간의 지정의로 감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구원이라는 선물 보따리의 배달과 수령 행위는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에 따라 인간의 내면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의지로 믿기 이전에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영에 속한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구원이 선물이라는 점은 인정하겠는데 믿음은 내가 의지로 내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것 같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전혀 구원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까? 그럼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단지 전도자를 붙여 준 것뿐입니까?

또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분입니까? 그것도 영원한 생명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당신의 얄팍한 신심(信心)에만 좌우되도록 맡겨 두셨다는 뜻입니까? 그것도 어리석음과 탐욕과 죄악으로 찌들은 그 지정의 능력에만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너무 무책임, 아니 오히려 무자비한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나아가 혹시라도 믿음을 갖게 된 바로 지금도 십자가보다 나의 공로, 자격, 능력을 앞세우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그분의 나에 대한 보응이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럼 예수님의 생명만큼이나 이미 우리를 고귀하게 여기시고 대우해주시는 하나님 앞에 무엇이 되었든 내 쪽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십자가 구원의 선물마저 내가 만들어서 스스로 내게 선물하고는 있지 않습니까?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이자 끝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십자가 은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 쪽 공로라곤 단 하나도 개입되지 않은 전적 은혜일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원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벗어나려는, 당연히 믿음마저도 자기 마음껏 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갖게 되었고, 믿음으로 살고 있고, 믿음으로 걸어가야 할 일 전부가 십자가 은혜 안에만 속해야 구원은 유효하며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분이 우리를 빛 가운데로 벌써 옮겨주신 것입니다. 이미 빛 가운데 있기에 절대로 어둠이 우리를 다시는 빼앗지 못합니다. 이런 믿음이 어찌 선물이 아니겠으며 우리 노력으로 가능하겠습니까?

12/5/2010

김광찬

2010.12.06 00:39:36
*.169.140.51

아멘 †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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