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2: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그런 자를 비난하고 있는 편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잠14:20)
물론 하나님이 과부, 고아, 장애자 같이 구조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자까지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또 우리 모두 그런 자들을 멸시하지 말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벗고 또 부도 쌓이는 법입니다. 돈 자체가 죄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될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기준으로 재물의 많고 적음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통하는 모든 종류의 기준으로 보아 남보다 덜 갖추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멸시 받는 자 모두를 가리킵니다. 세상은 재물뿐 아니라 지성, 건강, 미모, 학벌, 가문, 지위, 명예, 권력 등에서 뛰어나면 부한 자로 존경하고 갈채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이면 아예 멸시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자들을 가난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들이 평균보다 적게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적게 가져서 사람들로부터 멸시 받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게 가진 것 중에는 심지어 인격, 교양, 도덕성도 포함됩니다. 말하자면 그런 부분에 가난한 자는 필연적으로 세상에서 죄를 더 많이 짓게 되고 멸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그들도 가난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죄와 죄인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단지 죄를 범했다는 한 가지 이유로 그들을 괄시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바로 그런 잘못 때문에 그들도, 정확하게는 그들이 멸시 받고 있는 것을 긍휼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인간의 인간됨을 오직 그가 소유한 것으로만 판단합니다.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인간을 가지고 판단하십니다. 요컨대 어떤 인간이든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피조물이자, 지으신 후에 심히 기뻐했었고, 타락 후에도 자신의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긍휼을 베푸시고 싶은 당신의 자녀로 대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부족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잘 믿고 기도하면 세상에서 부족했던 것을 보충해 준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선 사람이 세상에서 소유한 것이 적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소유한 것이 적다고 세상으로부터 괄시 받는 것이 가난하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괄시를 당신 안에서 즐거움과 당당함으로 바꿔주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61:2,3)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집니까? 본문에서 약속하신 나라, 즉 천국을 이 땅에서부터 유업으로 받음으로써 가능하다고 합니다. 천국이 특별히 신비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픔을 희락으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또 그 역사를 체험하면 슬픔이 없어지기에 천국인 것입니다.
그럼 울며불며 기도하여 자기 억울함과 분통함을 신원해 달라고 해야 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갚아 주십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얻은 축복과 효과는 단지 그 억울했던 사건 한 번에 해당될 뿐입니다. 영원토록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없습니다. 다시 억울한 일이 생기면, 즉 세상의 평균보다 적게 가져 멸시를 당하면 또 하나님 앞에 나와 울며불며 하소연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유업으로 받는 길은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 혹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우리의 인간됨을 판단하실 때에 절대로 세상의 소유로 기준 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 됨에서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 안에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또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업으로 안 주실 리가 있겠습니까?
요컨대 신자는 세상 가난의 기준에 매여서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요의 기준에 이미 들어와 있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세상의 것들에 평균 이하라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있습니까? 당장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아니 부요하다고 보고 계시고 있습니다.
1/3/2006